‘금등지사(金縢之事)’. 영조가 자신의 아들이자 정조의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죽음에 관하여 남긴 글인데, 정조는 이를 찾아 아버지의 죽음의 비밀을 밝히고 노론 벽파는 이를 결사적으로 막으려고 노력합니다. 정조 시대를 엮은 드라마 또는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설정인데요. 최근 끝난 KBS 성균관 스캔들에도 잘금 4인방 이선준(박유천), 김윤식(박민영), 문재신(유아인), 구용하(송중기))이 정조의 밀명을 받고 이 문서를 찾기 위해 본격적인 조사를 시작합니다.
물론 중앙일보 송원섭 선임기자는 6일 <분수대 : 금등지사>에서 "소설이나 드라마와는 달리 정조는 이 금등지사로 피바람을 일으키지 않았다. 대신 ‘지나간 일을 다시 거론할 생각이 없으니 국정에 협조하라’며 반대파를 설득하는 데 이용했다“고 밝히고는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금등지사’를 둘러싼 정치세력간의 갈등입니다. 자신의 치부를 감추려는 자와 본질을 찾고자 하는 자들 간에 치열한 두뇌싸움을 통해 ‘숨겨진 진실’을 밝힌다는 설정은 꽤나 매력적인데요.
연평도 사태로 인해 한국사회 모든 이슈가 블랙홀에 빠지고는 있지만, 눈 뜨기가 무섭게 새로운 일이 터지는 이 즈음에, 대구경북권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현안이 있습니다. 다수의 지역민심도, 언론도 이명박 정부를 이 지역출신 정권으로 생각하고 있다보니, ‘4대강’과 민간인을 비롯한 전방위 사찰 정국에 대해 가급적이면 침묵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지역뿐만 아니라 현 정부와 ‘프렌들리~’한 메이저 언론 또한 마찬가지겠죠.
청목회와 대포폰 보도를 비교했던 지난 26일 KBS <미디어비평>에서도 “‘대포론 논란’의 핵심은 불법사찰과 범죄은폐”이며 “민주주의 근간을 흔드는 매우 중요한 사안임에도 언론은 사실 검증이라는 기본에도 충실하지 못하다”라며 지적하고 있습니다.
사찰정국 | <한겨레>, <경향> ‘불법 사찰 의혹 체계도’
감춰야 할 사실이 있다면, 사회정의를 위해 이를 밝히고자 하는 측도 있어야 할텐데요. '연평도 사태‘로 잠시 잊혀진 ’사찰 정국‘, <경향신문>, <한겨레신문> 등의 노력이 돋보이긴 하나 ’진상규명‘에 대한 여론을 높이기 위해서는 ’잘금 4인방‘으로 빙의를 원하시는 분들이 좀 더 힘을 보태면 좋을 듯 합니다.
그런데, 지난 6월부터 제기된 민간인 사찰 논란, 11월 2일 불거진 청와대가 제공한 대포폰, 17일 청와대의 민간사찰을 검찰이 은폐했고, 여권 관계자까지 전방위적 사찰 의혹, 그리고 23일 서울시장을 비롯한 YTN 등 정·관·노동·언론계 전반을 사찰의 증거가 될 수 있는 국무총리실 ‘원충현씨 수첩’까지.
그리고 지난 15일, 민간인 불법사찰을 저지른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직원 3인 (이인규, 김충곤, 원충연)에 대한 선거공판까지.
이 문제를 차근차근 접근하고자 하지만, 등장인물이 너무도 많고 복잡하게 얽인 인맥관계로 인해 누가 누군지 많이 혼란스러운데요.
최근 <한겨레신문>과 <경향신문>에서 각각 <영포라인 불법사찰흐름>(11월 19일 3면)과 <불법사찰 의혹 체계도>(11월 20일 3면)를 통해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또한 지금까지 상황을 잘 정리해 둔 <경향신문> 16일 이중근 논설위원의 칼럼 <문제는 ‘왕차관’과 영포라인>도 있습니다.
이 세가지 자료를 잘 활용하면, ‘전방위적인 사찰 정국’에 대한 전체적인 흐름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흐름이 ‘영포라인’과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의원에게로 향하고 있는 정황도 발견할 수 있는데요.
<경향신문> 이중근 논설위원의 칼럼과 위 그림을 함께 보면서 이 사태에 대한 큰 그림을 그려야합니다. 그전에 우선적으로 지난 15일 민간인 불법사찰을 저지른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직원에 대한 선고공판에서 유죄를 인정받은 이들은 3인이었고, 그림에 표를 해두었습니다.
이 논설위원은 이날 공판에 대해 “사찰 배후와 이를 증명하는 대포폰을 비켜간 대충 수사의 결과라지만, 제기된 숱한 의혹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단죄”라고 제시하고 있는데요. ‘의혹체계도’나 ‘불법사찰 흐름도’에서 이들을 표시해봤더니, 정말 ‘꼬리만 살짝 건드린’수사결과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일단 이 논설위원 칼럼에서 드러난 인물 등을 언급해보면 (그림표와 맞춰보세요) 박영준 당시 총리실 국무차관-이인규 전 공직윤리지원관(징역 1년 6월) -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비서관(면직), 대포폰 논란으로 다시 불거진 3인방 (이인규 전 지원관, 최종석 청와대 고용노동비서관실 행정관(대포폰 제작자), 진경락 전 지원관실 기획총괄과장)과 15일 유죄로 인정받은 원충연 사무관 등은 영포라인이며, 노동부에서 한솥밥을 먹은 사이라고 하네요.
최근 검찰이 입수한 ‘서울시장, 언론사 등 전방위 사찰 의혹을 일으키고 있는 수첩’의 주인공이 원충연 사무관입니다. 또한 지원관실 한 쪽에 김충곤 전팀장, 최 행정관 직속상관은 영포라인인 이영호 전 비서관, 그는 박영준 차관과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의 외곽조직인 선진국민연대에서 함께 활동했던 등등.
결국 이 논설위원은 “불법사찰과 대포폰의 핵심은 영포라인이며, 이 진실을 밝히려면 이영호 전 비서관과 ‘왕차관’으로 불리는 박영준 차관‘을 조사해야 한다”며 “검찰이 저토록 재수사를 거부하는 것은 영포라인이 살아있다는 증거로 밖에 볼 수 없고, 영포라인을 건드리면 박차관이 나오고, 다시 이상득 의원 등 정권의 심장부로 칼을 드밀 수 밖에 없다는 것은 검찰은 아는 것이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일정 정도 인내심을 가지고, 각 인물과 관련된 연관관계를 꼼꼼하게 파악해야만 ‘사찰정국’에 대한 전체적인 흐름도를 그릴 수 있습니다.
‘사찰정국’ 언론 보도량 : 조중동 - 한겨레, 경향 차이 크다.
외로운 <동아일보>, 홀로 ‘영포라인’으로 향하는 시선 돌리기 안간힘
이렇게 복잡하게 얽힌 ‘사찰 정국’을 보는 언론의 모습은 상반되게 나타나는데요. KBS 미디어비평이 26일 방송한 <대포폰, 청목회…엇갈린 언론>에서 5가지 전국일간지(조선, 중앙, 동아, 경향, 한겨레)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10월 28일~11월 23일까지 대포폰과 관련된 1면 보도 건수로 보면 조선,중앙,동아 각 1건씩, 경향, 한겨레가 각 6, 7건 등이었습니다.
감추려고 하는 자와 밝히려고 하는 언론 간에 색깔이 분명하게 드러나는데요. 그 와중에 자신의 색깔을 너무도 분명히 드러낸 언론사가 있었습니다.
<미디어오늘> 19일 <외로운 동아이로, ‘청와대 대포폰’ 방어 안간힘>에서 류정민 기자는 "<한겨레신문>과 <경향신문>을 비롯해 <조선일보>와 <중앙일보>까지 19일 청와대 대포폰 사태에 특검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는데 반해 <동아일보>는 같은날 청목회 사건을 1면으로 편집"했다며 “<동아일보>가 연일 청목회 이슈를 쟁점화하고 있지만, 민주당이 청목회 수사에 당당히 임하겠다고 밝히면서 상황은 달라졌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아마 <동아일보>는 청목회와 관련된 국회의원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을 적극 부각하며 ‘사찰 정국’에 대한 여론을 애써 다른 곳으로 돌리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편 류기자는 “외로운 동아일보의 여론돌리기 행보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주목해야 한다”는 말도 덧붙이고 있는데요. 비슷한 지적은 26일 방송된 KBS 미디어비평에서도 제기하고 있습니다.
'청목회'에 목소리 높인 <영남>...동아일보 냄새?
비슷한 흐름에서 이 지역 <매일신문>과 <영남일보>를 찾아봤는데요. ‘사찰정국’과 관련 <매일신문>은 5일 사설 <대포폰, 덮고 넘어갈 사안이 아니다>를 통해 “논란의 확산을 피하기 위해 불법적 사안을 덮고 넘어가려 한다면 검찰은 부실 축소 수사의 오명을 살 수 있다”며 청와대도 마찬가지다“고 지적하고 ”비정상적인 대포폰으로 온 나라가 시끄러워서야 검찰이나 청와대의 신뢰와 체면이 서겠는가“라고 따끔하게 지적하고 있는데요.
문제는 <영남일보>입니다. 왠지 <영남일보>에서는 <동아일보> 냄새가 납니다. <영남일보>는 11월 10일 <자유성 : 맞불작전>을 통해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은 검찰의 청목회 입법로비 의혹 수사에 대한 공동대응책으로 국무총리실 민간인 사찰, 대포폰 지급, 검찰 비리 의혹 등에 대한 국정조사를 요구했다”고 제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8일 사설 <‘검찰 할 일 한 것 아니냐’는 여론 강하다>를 통해 “청목회 입법로비를 밝히기 위해 현역 국회의원 11명의 후원회 사무실 등을 전격 압수수색한 것에 대해 시민들 사이에는 ‘검찰이 제 할 일을 한 것 아니냐’라는 여론이 강하다”며 “죄가 없다면 검찰의 수사를 당당하게 받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오히려 결백함이 드러나면 다음 총선에서 유권자 앞에 떳떳하게 설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권력형 비리, 민주주의 근간을 해치는 각종 사안의 경중에 대한 판단은 언론사의 몫입니다. 하지만 청와대-동아일보의 묘한 관계처럼, <영남일보>가 전 국민적 관심사인 ‘사찰 정국’에 대해선 이리도 침묵한데 반해 ‘청목회’사건에만 목소리를 높이는 모습에서 웬지 자꾸만 <동아일보> 모습이 투영되는 것은 저 만의 생각은 아니겠죠?
참언론대구시민연대 모니터팀에서는 ‘잘금 4인방’으로 빙의한 몇몇 회원들과 함께 ‘사찰 정국’에 대한 언론, 특히 지역언론 모습을 꼼꼼히 따져보고자 합니다. 성균관 스캔들에서 김윤식의 아버지가 남긴 서찰을 통해 ‘금등지사’가 숨겨진 위치를 찾아내는 이들처럼, 이 지역출신 관계자들의 ‘몰상식한 행위’를 감추려는 지역언론의 모습을 하나둘 찾아내려고 합니다.
[평화뉴스 미디어창 110]
허미옥 / 참언론대구시민연대 사무국장 pressange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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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한겨레 '불법사찰 의혹.체계' / "외로운 동아, 대포폰 방어" / 매일.영남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