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궁딩이는 과장 서이 낳은 궁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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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꾼 시인' 류근삼① / 감옥 쇠창살과 분단의 세월이 녹슬었을 뿐...


류근삼 시집 '글마가 절마가'
류근삼 시집 '글마가 절마가'
시골 버스 삼백리 길/ 덜커덩거리며/
과장으로 승진한 아들네 집에/ 쌀 한 가마/ 입석버스에 실었겄다.
읍내 근처만 와도/ 사람 북적거린다
뚱뚱한 할매/ 커다란 엉덩이 쌀가마 위에/ 자리 삼아 앉았것다
‘이놈우 할미 좀 보소/
울 아들 과장님 먹을 쌀가마이 우에/ 여자 엉덩이 얹노? 더럽구로!’
하며 펄쩍 하였것다.
‘아따 별난 할망구 보소/ 좀 앉으면 어떠노/ 차도 비잡은데……
내 궁딩이는/ 과장 서이 낳은 궁딩이다.’
버스 안이 와그르르/ 한바탕 하 하 하……
사람 사는 재미가/ 이런 것이렸다.


‘글마가 절마가’에 나오는 ‘과장님 먹을 쌀’이라는 시입니다.
시골버스에서 할머니들의 입을 통해 세상사는 맛을 느끼게 해줍니다.

하지만 그 재미는 민초의 삶을 바닥에서 쳐다보는 고달픈 즐거움입니다. 그는 시인입니다. 통일을 노래하고, 겨레의 꿈을 노래합니다. 통일 일꾼의 삶이 고스란히 전해져 옵니다. 그는 류근삼 님 입니다.

류근삼(71)님
류근삼(71)님

평생 통일운동을 하던 그가 시와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92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배창환 시인의 ‘시 쓰는 창작교실’에 발을 디디면서 부터입니다. 아마도 그는 애초부터 시를 통해 자주적통일과 민족적 민중운동을 드러내기로 작정한 모양입니다. 시를 배워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그는 이미 쉰이 넘었지만 3년 만에 ‘개불란’ 이라는 처녀 시집을 냅니다.

“문학적인 소질이 좀 있었든지 학교 다닐 때 백일장에 나가 상을 받기도 했지. 그러고는 이런저런 세상 풍파를 겪느라 문학적인 꿈을 가질 겨를이 없었는 기라.”

청년시절 그는 고향인 달성에서 4H운동을 하면서 직접 대본을 써 몇 달 동안 마을 극을 한 경험이 있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자신 스스로 일찍부터 문학에 대한 소질을 별로 의심하지 않았던 듯합니다. 그런 그였기에 쉰 넷에 등단해 16년 동안 시집 다섯 편에 열망과 분한(憤恨), 위트와 함성을 쉬지 않고 담아냈습니다.

그는 청년시절에 민족민주청년동맹(민민청)에 이어 민족자주통일연합(민자통) 같은 단체서 민족운동을 하면서 분단극복, 자주통일이란 묵직한 화두를 놓고 치열한 삶을 살아 왔습니다. 더구나 통일을 염원하며 들락거렸던 감옥의 쇠창살과 분단의 세월이 녹슬었을 뿐, 시인의 열정은 일흔이 넘도록 그를 늙지 않게 했습니다.

그에겐 피가 통하는 민족, 조국산하의 막힘없는 모습, 이웃의 자유로운 삶을 희구하는 마음이 그대로 시어가 됩니다. 열병 걸린 사람처럼 쏟아내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듯합니다. 그런 그의 말대로 허명(虛名-자신을 낮추는 겸손의 말)의 중견이 됐지만 자신이 쓴 시도 외우기가 힘들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대번에 외우는 시가 있습니다. 바로 통일시 ‘단풍’입니다.

시계를 거꾸로 돌리듯 남북한은 몇 해 전보다 더 색 바랜 단풍으로 시들고 있습니다. 연평도서 벌어진 앳된 젊음의 주검 앞에 핏빛으로 물들어 나뒹구는 헐고 너절한 단풍마저 보게 됩니다. 노고단과 개마고원의 독소를 머금은 나뭇잎이 애꿎은 어린 나무의 삶을 짓밟는 일. 그가 소망하는 ‘반도의 꿈’은 이런 나뭇잎을 치워 삼천리강산에 곱디고운 단풍이 물들도록 하는 것이 아닐런지요? 

개마고원에 단풍 물들면/ 노고단에서도 함께 물든다
분계선 철조망 녹슬거나 말거나/ 삼천리강산에 가을 물든다




[박창원의 인(人) 35]
여덟 번째 연재 '통일꾼 시인' 류근삼①
글.사진 / 평화뉴스 박창원 객원기자



▷'곡주사 이모' 정옥순 ▷'하회마을 뱃사공' 이창학 ▷'노동운동가' 장명숙 세실리아 ▷'장승쟁이' 김종흥,
▷'고서 일생' 박창호' ▷'사주쟁이 기자' 우호성 ▷'농사꾼 철학자' 천규석, 그리고 ▷'통일꾼 시인' 류근삼.
<박창원의 인(人)> 여덟 번째 연재는 민족.자주통일에 힘써 온 '통일꾼 시인' 류근삼(71)님의 이야기 입니다.
류근삼 시인은 민족자주평화통일대구경북회의 의장과 (사)4.9인혁열사계승사업회 이사장을 맡고 있습니다.
'통일꾼 시인' 류근삼 님과 사연 있으신 독자들의 글도 함께 싣고자 합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 사연 보내실 곳 : 평화뉴스 pnnews@pn.or.kr / 053-292-6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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