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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이 자장면 먹은 죄 '감옥살이 2년'
'통일꾼 시인' 류근삼④ / "유신시대, 악법 반대하다 악법에 걸리다"
2010년 12월 22일 (수) 09:40:12 평화뉴스 pnnews@pn.or.kr

"감옥에서 같은 방에 있던 감방동지 2명과 연락해 자장면을 먹었지요. 그랬더니 며칠 뒤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를 구성했다며 잡으러 왔어요. 그리고 구속됐습니다. 3명이 모여 자장면을 먹었으니 반국가 조직을 만든 죄가 성립한다나요. 황당하기 이를 데 없지만 어떡합니까?"

그 때가 1976년으로 이른바 비전향장기수 ‘김인서 사건’입니다. 김인서는 북한군으로 1950년 8월 전선에 투입됐다 이듬해 12월 체포돼 36년 동안 장기수로 수감생활을 했습니다. 그런 뒤 지난 2000년 북송된 비전향 장기수 63명에 포함됐습니다. 그와 자장면을 먹을 당시는 갱생보호소에 있었고 감시 대상이었습니다. 감방동지와 먹은 자장면 한 그릇 때문에 2년 동안의 억울한 감옥살이를 하게 된 것입니다.

유신시대, 길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도 인사하지 말라던 경구를 새삼 실감하게 된 것입니다. 이는 서로 아는 체 하다가 조직사건으로 엮일 수 있다는 우려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당시의 억압적이고 살벌한 사회 분위기를 잘 나타내 줍니다. 한편으로 그는 이런 사건이 터진 배후에는 당시 판문점 도끼 만행사건이 터지면서 악화된 남북 정세에 영향을 받은 탓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 류근삼(71)님

그는 어떻게 김인서를 알게 된 것일까요? 1969년에 터진 일명 ‘김태우 사건’으로 거슬러 갑니다. 김태우의 집은 경남 통영에서 어장을 하며 활어수출을 하는 집이었습니다. 그는 일본에 들를 때면 책을 사오곤 했는데 이것이 빌미가 되어 전국적으로 70여명이 체제전복혐의로 조사를 받게 됩니다. 그 또한 대구 무태에 있는 토목회사의 현장감독으로 일하고 있었지만 이를 피해가지 못했습니다.

조사받은 사람 가운데 16명이 기소되고 김태우가 3년, 그와 나머지 3명이 2년의 실형을 선고받습니다. 항소 끝에 최종적으로 대법원에서 무죄취지로 파기 환송되어 석방됩니다. 하지만 이미 그는 1년 4개월이나 옥살이를 한 뒤였습니다. 김인서도 그때 감옥에 있을 때 만났고 그것이 나중에 반국가단체 혐의의 감옥살이로까지 이어졌던 것입니다.

"아마 대구에서는 반공법 1, 2호쯤 됐을 것 같아요. 2대 악법 반대 투쟁을 하다 그 법에 걸린 거지요. 학교는 못 갔지만 3년 동안 감옥 공부를 한 셈이죠. 책도 읽고 공부를 하다 보니 지식을 넓히게 된 것입니다."

그가 처음으로 감옥에 가게된 것은 갓 스물이 넘었을 때입니다. 민족민주청년동맹(민민청)에 가입해 통일운동과 2대 악법 반대운동 등을 활발히 펼칠 즈음 5.16쿠데타를 맞습니다. 권력의 맛을 본 군인들은 4․19 공간을 ‘혼란’으로 치부하면서 사회민주화나 통일운동을 하던 사람을 제압하려 합니다. 청년들도 예외일 수 없었습니다.

그는 구속을 피해보려고 3~4개월을 숨어 지내다 군위군 소보면 법주사에 갔고 거기서 군위경찰서에 체포되고 맙니다. 쿠데타 세력들은 처음에는 사회안전법으로 진보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가두다 국가보안법을 적용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난생 처음 군법회의(5관구 보통군법회의)에서 징역3년을 선고받고 삼덕동 대구형무소에 수감됩니다.

"소설 태백산맥의 주인공들도 만났지요.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이 뒤에 발표돼 읽어보니 형무소에서 본 사람들이 그들이더군요. 또 교원노동조합사건의 김문심 선생, 피학살자유족회 사건의 이복녕, 이원식 선생도 교도소 안에서 만났습니다."

1964년 8월 15일. 만기출소 몇 십 일을 앞두고 가석방됩니다. 그렇다고 그의 인생이 석방 된 것은 아닙니다. 말 그대로 가석방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박창원의 인(人) 38]
여덟 번째 연재 '통일꾼 시인' 류근삼④
글.사진 / 평화뉴스 박창원 객원기자


▷'곡주사 이모' 정옥순 ▷'하회마을 뱃사공' 이창학 ▷'노동운동가' 장명숙 세실리아 ▷'장승쟁이' 김종흥,
▷'고서 일생' 박창호' ▷'사주쟁이 기자' 우호성 ▷'농사꾼 철학자' 천규석, 그리고 ▷'통일꾼 시인' 류근삼.
<박창원의 인(人)> 여덟 번째 연재는 민족.자주통일에 힘써 온 '통일꾼 시인' 류근삼(71)님의 이야기 입니다.
류근삼 시인은 민족자주평화통일대구경북회의 의장과 (사)4.9인혁열사계승사업회 이사장을 맡고 있습니다.
'통일꾼 시인' 류근삼 님과 사연 있으신 독자들의 글도 함께 싣고자 합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 사연 보내실 곳 : 평화뉴스 pnnews@pn.or.kr / 053-292-6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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