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의 걸음, 예술마당 솔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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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손병열 / "질곡을 딛고 새 마음으로, 산을 만드는 바람이기를 소망한다"



2010년, 돌아보면 어떠신지요? 한 해를 보내며 대구의 8명에게 '소회'를 물었습니다. 조금은 특별한, 그리고 참 바쁘게 보냈을 '현장'의 사람들입니다. 헌 책방을 연 변홍철 '물레책방' 인문학연구실장, 새내기 기자로 첫 발을 내디딘 영남일보 김일우 기자, 창립 20년을 맞은 '예술마당 솔' 손병열 대표, 생존의 현장을 뛰어다닌 인권운동연대 서창호 상임활동가, 20년 주민운동에서 풀뿌리의회에 들어간 유병철 북구의원, 논란 속에 6.2지방선거 연대판에 선 대구시민단체연대회의 김동렬 운영위원장, 4대강 사업 현장의 절절한 목소리를 전해 온 '낙동대구' 정수근 카페지기, 포화 속 한반도에서 여전히 '통일'의 꿈을 찾아가는 6.15대경본부 오택진 사무처장입니다. 이 글은 '예술마당 솔' 손병열 공동대표의 2010년 소회입니다.


  예로부터 산의 형세를 만드는 힘의 칠할은 바람이 차지한다고 했다. 아주 들어맞는 말일 것이다.오랜 바람을 견디지 못한 나무는 도퇴되고 바람을 타며 견딘 나무는 살아 남아 속깊은 숲을 형성하여 그 속에 내를 만들고 물을 흘려 보내 흙을 깎고 땅속 바위를 드러내어 단단한 지세를 만들어 내니 어찌 바람이 산세를 만들어 내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장구한 세월을 이겨내고 버텨 온 그러한 산을 쑹덩 잘라내어 만든 길을 한번 달려보라. 길을 잃은 바람의 성난 분노가 느닷없이 달려 와 차의 앞길을 가로 막고 윙윙 울어 댈 것이다.

  이런 생각을 떠올린 데는 필자가 공동대표로 있는 예술마당 솔의 20주년을 즈음하면서 부터이다. 20년 활동을 정리하며 새로운 활동을 계획하고 준비하며 그간의 대구지역의 문화예술 활동과 예술가들의 형편들을 돌아 보는 과정에서 든 생각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생계활동과 예술활동이라는 두 가지 경계를 요리조리 넘나들며 어정쩡하게 버텨 온 개인적 활동의 반성과 전망이라는 문제에 천착하면서 든 생각이란 편이 이 더 맞을 것이다.

 20년, 변화의 바람을 타지 못하고...

  알다시피 예술마당 솔은 마음대로 놀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을 꿈꾸면서 대구시민들의 열의와 정성을 모아 1990년 10월에 문을 연 문화예술단체이다. 당시는 공연 대본심사라는 게 있어서 공연불허 결정이 나오기 일쑤였고 노골적인 대본삭제를 요구받던 시절이기도 하였다. 그런 열악한 환경을 우리 손으로 걷어내고 문화공동체의 새로운 희망과 질서를 만들자고 결의하고 창립초기부터 왕성한 활동을 했다. 각 장르의 예술가들이 예술마당 솔을 중심으로 모여서 의논하고 활동을 펼쳤으며 대구시민들과 함께 하는 대중적인 예술활동을 했다. 활동의 결과들은 조금씩 대구지역으로 확산되기 시작했으며 수천명의 회원과 함께하는 문화예술 조직으로 성장하여 왔다.

  그러나 사회는 시시각각 다양한 생각과 흐름을 반영하면서 변해 갔다. 그렇지만 예술마당 솔은 그런한 변화의 바람을 타지 못하고 대내외적인 어려움에 봉착하면서 그 활동이 점점 하향곡선을 그리게 된다. 다른 많은 요인들이야 있었겠지만 사회적 변화의 바람을 적극적으로 해석하여 자기 변신를 꾀하지 못하고 안이한 활동에 머물러 있었던 데 원인이 있었다. 어쩌면 2005년 일부 사람들에 의한 솔 해체파동은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대구시 중구 남산동에 있는 '예술마당 솔' 사무실...창립 20주년을 맞아 12월 4일 '장사익 소리판' 공연을 했다. "민족예술을 보듬는 대구의 열린마당" 부제와 간판이 눈에 띈다. '예술마당 솔' 글씨는 신영복씨, 그림은 정하수씨 작품이라고 한다 / 사진. 평화뉴스 유지웅 기자
대구시 중구 남산동에 있는 '예술마당 솔' 사무실...창립 20주년을 맞아 12월 4일 '장사익 소리판' 공연을 했다. "민족예술을 보듬는 대구의 열린마당" 부제와 간판이 눈에 띈다. '예술마당 솔' 글씨는 신영복씨, 그림은 정하수씨 작품이라고 한다 / 사진. 평화뉴스 유지웅 기자

 상업적 상품의 파상적 공세...한 예술가의 삶과 '솔'

  그 후 예술마당 솔은 열악한 형편과 조건속에서 다시 5년이라는 시간을 고민하고 준비하면서 보냈다. 여전히 사회는 더욱 더 빠르게 분화되면서 풍부해지고 있으며 문화예술 부문에서도 더욱 다양하고 세밀한 활동을 요구하고 있다. 예술계 내부에서도 기존의 예술가 그룹들과는 활동방식이 다르고 연배가 훨씬 젊은 예술가 그룹들이 자립예술, 독립예술을 선언하며 성장하고 있고  대구지역 내에서 다양하고 주목받는 활동들을 전개하고 있다.

또한 소규모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시민모임들이 성장을 하면서 문화예술을 매개로 한 활동을 많이 시도하므로써 문화적 수요가 세밀해지고 더 넓어졌다. 또 거대한 문화자본이 만들어 내는 대규모 상업적 문화상품들의 파상적 공세는 문화소비에 대한 개인의 선택권마저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집요하고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으며, 지역에서 생산되는 소규모 문화상품들은 살펴주고 쓰다듬어 주는 이 없이 홀대받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광역 단위의 지역축제는 많은 예산을 삼키면서도 소비적인 이벤트 축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마을 단위의 동네축제는 지방정부의 냉대속에 꿈도 꿔 보지 못할 지경으로 지역문화의 판도가 기형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이러한 전반적인 지형변화를 보면서 필자가 속한 예술마당 솔이 과연 어떠한 활동들을 만들어 낼 수 있으며 또 지역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과 어떤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나아가 어떻게 하면 그들의 활동을 고양시키고 대구지역의 진보적인 큰 문화 흐름을 만들어 내는 데 일조할 수 있을까. 예술마당 솔이 늘 가져야 할 활동의 출발점이기도 하지만 필자가 최근 진지하게 고민하는 부분들이기도 하다.

  대구지역에서 긴 세월동안 한결같이 예술이라는 화두를 붙들고 그 진폭을 넓히고자 애써 온 한 예술가가 있다. 그러나 정작 그의 삶을 들여다 보면 초라하기 짝이 없다. 활동으로 벌어 들이는 수입은 기본생활비에도 미치지 못한다. 아둥바둥 생계를 꾸리면서 주류예술의 변방에서 몸을 바쳐 오랜 시간 애써 왔지만 예술가의 살림살이는 나아진 게 별반 없다. 가끔 그에게서 휘몰아치는 바람을 이겨내고 바람과 함께 세상을 견디어 온 큰 산과 닮아 있다는 감동을 받는다. 숱한 격변의 바람을 이겨 낸 그의 마음속에는 내가 흐르고 있을 것이며 이름모를 풀과 나무들을 품고 있을 것이다. 그도 그런 간당간당한 삶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왜 없었을 것이며 지금보다 더 힘들더라도 다른 삶을 꿈꾸며 가슴 설레는 시간이 왜 없었을까. 주위 예술가들의 삶이란 게 다 이런 식이다. 새롭게 시작한 젊은 예술가들이라고 해서 크게 다를 것 없다. 다 이런 형편이다.

 스무살 청년 '솔'...산을 만드는 바람이기를


 예술마당 솔은 이런 예술가들이 모여서 일을 도모하고 꿈을 꾸는 곳이어야 한다. 예술은 근본적으로 모두의 것이지만 한편으로 예술가의 역할과 몫이 아주 크다고 생각한다. 예술가들의 앞 선 고민과 열정이 시민들의 갈증과 수요가 만나 어우러져야 제 모양을 갖출 수 있다.

   소규모 지역을 중심으로 삶의 질을 높이고 건강한 일상을 회복하기 위해 애쓰는 시민모임과 주민단체들이 많이 생겨나 활동을 하고 있다. 또 민간 기반의 주민도서관 운동도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들은 단체 고유한 활동과 더불어 활동의 영역과 기반을 넓혀 나가는 데 문화예술 프로그램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일상적 예술체험활동, 강좌 프로그램, 공동체캠프, 주민잔치 등이 그것이다. 예술전문단체를 초청하여 예술생산물에 대한 적극적인 문화소비 활동을 하기도 하며 그들과 지속적인 관계를 형성한다. 이전 예술마당 솔의 기반적 활동이 시민사회 속으로 깊숙이 스며들어 확산된 결과이기도 하다. 하지만 문화소비에 대한 준비와 계획성, 문화예술 컨텐츠 개발의 전문인력 부족 등으로 주민요구를 현실적으로 다 담아내기에는 역부족이어서 내내 숙제로 안고 있다. 예술마당 솔이 앞으로 같이 고민하고 함께 해야 할 부분이다.

  주민사업과 어우러질 수 있는 문화예술 콘텐츠를 개발하여 공급하고 전문예술단체들의 작품이 효과적으로 소비될 수 있도록 계획을 수립하고 나누는 일, 주민들이 문화예술을 만날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확대해 가는 일 또한 주요한 역할이다. 문화예술단체와 주민단체 간의 협력과 공유가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다. 광범위한 예술가들의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일 또한 앞에서 열거한 일을 해내는 데 예술마당 솔이 해내야 할 중요한 사항이다.
 
예술마당 솔의 활동이 벌써 20년을 넘겼다. 처음 공간을 만들기 위해 낡은 지하공간에 페인트 칠을 하고 조명기를 달면서 이어진 필자와 예술마당 솔과의 인연도 벌써 20년이 넘었다. 초기에 가장 애썼던 한 사람을 보내는 아픔이 있기도 했고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지만 예술마당 솔은 이제 스물살 청년으로 성장했다. 질곡을 딛고 이제 새로운 마음으로 예술마당 솔은 산을 만드는 바람이기를 소망한다. 문화예술이 즐겁게 자라고 예술가들이 행복할 수 있는 산을 꿈꾸어 본다. 더불어 경계를 넘나들며 얕게 버텨 온 필자의 열정도 산에서 재미있게 부빌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기를 기대한다






[2010 송년]
손병열 / '예술마당 솔'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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