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활동가의 부끄러움을 넘어서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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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서창호 / "목소리는 높은데 그 목소리만큼 제대로 책임졌는지..."

 


2010년, 돌아보면 어떠신지요? 한 해를 보내며 대구의 8명에게 '소회'를 물었습니다. 조금은 특별한, 그리고 참 바쁘게 보냈을 '현장'의 사람들입니다. ▷헌 책방을 연 변홍철 '물레책방' 인문학연구실장 ▷새내기 기자로 첫 발을 내디딘 영남일보 김일우 기자 ▷창립 20년을 맞은 '예술마당 솔' 손병열 대표 ▷생존의 현장을 뛰어다닌 인권운동연대 서창호 상임활동가 ▷20년 주민운동에서 풀뿌리의회에 들어간 유병철 북구의원 ▷논란 속에 6.2지방선거 연대판에 선 대구시민단체연대회의 김동렬 운영위원장 ▷4대강 사업 현장의 절절한 목소리를 전해 온 '낙동대구' 정수근 카페지기 ▷포화 속 한반도에서 여전히 '통일'의 꿈을 찾아가는 6.15대경본부 오택진 사무처장입니다. 이 글은 인권운동연대 서창호 상임활동가의 2010년 소회입니다.


20여 년 전의 각오와 2010년의 부끄러움이 마주하다


90년대 초, 운동을 본격적으로 고민하면서 읽었던 책 중에서 한 글귀를 음미하면서 활동가의 태도와 자세를 가다듬었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싸움꾼’의 자세와 ‘구도자’의 자세- 당시 20대 초반, 세상을 이해하고 세상을 바꾸려는 싸움꾼의 자세만큼 자신을 벼려야 한다는 생각, 그리고 세상을 이해하는 만큼 구도자의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이 구도자의 자세가 다시 싸움꾼의 자세로서 동인이 되는 것이 필요하다는 어렴풋한 생각은 20여년이 지난 지금, 인권활동가로서 여전히 무거운 과제이자 현재진행형이다.

우리 사회에서 인권은 상식이 되어가고 있으며 이제 누구도 나서서 인권을 부정하지 않는다. 최소한 인권활동가들이 주장하는 급진적인 주장들에 대한 반론을 펴더라도 인권 그 자체를 부정하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누구나 자신들의 논리로 인권을 주장한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인권이 상식이 된 우리 사회에서 왜 아직도 인권은 해결되었거나 곧 해결될 것이라는 희망을 볼 수 없는 것인가? 과거처럼 혹독한 정치탄압도 없으며, 고문도 사라졌고, 유엔인권이사회의 이사국이 된 나라이기도 한 한국에서 2010년은 인권활동가에게 무엇이었나?

쫓겨나거나 빼앗기거나

2011년 예산편성에 있어 4대강 사업으로 복지예산을 전면 삭감해도, 국가인권위를 정권의 노리개로 변절시키는 이명박 정부마저 인권, 녹색성장 혹은 서민정책이란 꼬리표를 달고 정책들을 실행한다. 그러나 당장 대한민국 헌법이나 세계인권선언에도 2010년 인권현실은 슬프다 못해 희극적으로 드러내주고 있다.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며 대한민국은 사상과 양심의 자유, 표현의 자유, 집회와 결사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말은 오늘날의 현실에서는 죄다 새빨간 거짓말이 되어 버렸다.

대구지역 인권.노동.사회단체들이 구미 KEC 사태와 관련해 국가인권위에 '긴급구제'를 요청했다. 이들 단체는 "용역의 노동자 폭력과 경찰의 방조", "사측의 음식물 공급 거절에 대한 경찰의 역할 부족", "의료진 방문 거부"를 '인권침해' 이유로 꼽고했다. 한 노동자의 아내는 "제발 작은 초코파이라도 넣게 해달라"고 호소했다(2010.10.28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사무소 앞) / 사진. 평화뉴스 유지웅 기자
대구지역 인권.노동.사회단체들이 구미 KEC 사태와 관련해 국가인권위에 '긴급구제'를 요청했다. 이들 단체는 "용역의 노동자 폭력과 경찰의 방조", "사측의 음식물 공급 거절에 대한 경찰의 역할 부족", "의료진 방문 거부"를 '인권침해' 이유로 꼽고했다. 한 노동자의 아내는 "제발 작은 초코파이라도 넣게 해달라"고 호소했다(2010.10.28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사무소 앞) / 사진. 평화뉴스 유지웅 기자

모든 인간은 존엄하고 평등하다는 말, 모든 사람은 의료와 주거, 노동과 교육의 권리를 가진다는 말도 거기에 담긴 염원과 열망, 지향과는 달리 이 사회에서는 모두 터무니없는 소리일 뿐이다. 시민들이 획득해야 할 노동권, 주거권, 사회권 등의 ‘권리’를 낮은 수준의 서비스로 대치시킴으로써 국가의 재정은 지불능력 있는 개인들의 부의 축적을 용이하게 하는데 쓰이고 있다. 낮은 수준의 ‘서민용’ 서비스는 ‘퇴출의 공포와 추락’에 시달리는 불완전고용이나 반실업 상태에 있는 사람들을 구제하지 못한다.

서민들이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 정치적 표현을 하는 순간에 이들은 곧 ‘서민’이 아닌 불순하고 불법적인 대상으로 간주되어 버린다. 오히려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를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국가의 주인은커녕 잠재적 범죄자, 불순분자, 테러리스트가 되어 권력기관의 사찰 대상이 되기 십상이다. 인간이기를 선언하고 인간답게 살기로 작정하는 순간 그나마 아등바등 하던 일터와 삶터에서 내쫓기는 것을 각오해야 하고 갖은 모멸과 냉대, 그리고 법을 빙자한 폭력과 마주해야 한다. 그러니 인권이라는 것은 법조문과 선언문에 적힌 글 나부랭이가 온통 거짓임을 폭로하고 그 거짓이 진실이 되게끔 만들어가는 지점에서 ‘인권’의 제기가 비로소 가능한 것이 아닌가 한다.

신자유주의의 망령 앞에 위기에 선 사회적 인권

이명박 정부의 개방과 자유화, 탈규제화, 유연화, 사적 책임, 경쟁과 효율성 옹호 등으로 대변되는 신자유주의는 사회적 관계의 총체를 시장관계로 재편과 종속을 시키려고 하며, 또 이를 통해 자본운동의 자유를 극대화하고자 한다. 신자유주의 정책은 ‘사적인 것’이 ‘공적인 것’보다 우위에 있다. 그래서 궁극적으로‘국가나 사회, 타자로부터 강제나 간섭이 없는 상태’에 대한 자본의 열망을 반영한다.

이 가운데 노동권을 비롯한 사회권은 ‘집단적’이며 ‘공동적’으로 확보될 권리이므로 사회적 타협과 연대라는 방법론을 기반으로 구축되는 권리이다. 그래서 2010년의 사회권은 인정되지 못하였다. 사회권은 그야말로 슬프고 침통한 현실에 근거하지 못하는 종이조각이 되는 것이다. 혹독한 정치탄압도 없으며, 드러난 고문도 사라졌으되 사회적으로 가시화되지 않는 노동자서민의 삶은 온전히 부정되었다. 그래서 노동자서민의 인권은커녕 여전히 전태일은 21세기에도 부끄럽게도 새롭게 쓰이고 있다.

  인권침해 현장은 인권활동가를 재촉한다


계명대 동산의료원 환자식당 해고 노동자들이 '복직'을 요구하고 있다(2010.11.17 계명대 대명동캠퍼스 앞)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계명대 동산의료원 환자식당 해고 노동자들이 '복직'을 요구하고 있다(2010.11.17 계명대 대명동캠퍼스 앞)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대한민국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대구경북의 인권현실 특히 노동자, 사회경제적 소수자의 권리는 그 어떤 수사도 허락하지 않았다. 2010년 지난 6월부터 지금까지 여성비정규직노동자들의 삶과 인권을 서글픈 현실을 웅변하고 있는 동산병원 비정규 여성노동자 집단해고, 작업장에서 자본의 감시시스템의 추악함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세왕교통 정비노동자 감시용 CCTV 설치 운용, 자본의 직장폐쇄를 통한 노동자의 해고의 위협과 45일간 반인권적 강제근로에서 드러난 상신브레이크 노동자 탄압과 집단감금, 자본의 노동자탄압의 전형이 되고 있는 구미KEC 노동자 탄압 및 음식물 반입금지 그리고 이에 저항하는 노동자의 분신 등에서 보듯이 구래의 노사합의사항마저 자본은 언제든지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고 있다.

기업이나 개인 등 사적 주체에 의한 인권침해가 증가하고 인권침해의 양태와 수위도 심각해졌다. 2010년 한해 인권침해 현장을 뛰어나기에 바쁜 한해였지만 인권증진 혹은 사회권 개선과는 너무도 먼, 그래서 인권활동가로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다시 20년 전 어렴풋이 생각을 다듬었던 내가, 2010년을 인권활동가로서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 스스로에게 되물어본다. 인권활동가로서 인권침해 현장 혹은 투쟁의 현장에서 제대로 된 싸움꾼다운 싸움을 벌였는지? 성찰과 통찰의 구도자로서 제대로 살았는지 부끄럽고 부끄럽다. 목소리는 높은데 그 목소리만큼 제대로 책임졌는지? 적어도 작년보다 진전시킬만한 지역 인권활동을 펼쳤는지...그 어느 것 하나 녹녹치 않지만 2011년에도 여전히 인권침해 현장에서 이끄는 데로 달려가야겠다. 다만 싸움꾼과 구도자의 인권활동가로서 좀 더 충만해져야겠다. 그래서 2011년 이맘때는 조금만 부끄러워지기 위해서라도..






[2010 송년]
서창호
/ '빈곤과 차별에 저항하는 인권운동연대'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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