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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갑 세 겹에도 시린 손, 쉴 틈 없는 새벽 세차
<새벽을 여는 사람들⑤> 새벽세차원 / "깨끗해진 차 보면 뿌듯, 일한만큼 버는 직업"
2011년 02월 10일 (목) 20:57:15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pnnews@pn.or.kr

 

새벽 3시 동구 방촌동 A아파트 지하주차장. 흐릿한 형광등 불빛 아래 누군가 걸레를 두 손에 들고 빨간 닷지 픽업트럭을 닦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4년째 매일 새벽세차 일을 해온 안모(48)씨다. 9일 새벽, 어둠과 추위 속에서 아파트주차장을 돌며 차를 닦는 새벽세차원을 만났다.

"이번 겨울은 날씨가 유독 추운데다 요즘 구제역소독약 때문에 차들이 워낙 더러워져 일이 더 힘드네요."

세차원 안씨는 이 같이 말하며 "그래도 자식 같은 가축을 땅에 뭍은 농민들에 비하면 힘든 축에도 못 든다"고 했다. 구제역 소독약으로 지저분해진 차들을 닦느라 애를 먹지만, 정작 자신의 어려움보다 농민들의 아픔을 더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 2월9일 새벽 3시, 세차원 안씨가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빨간 닷지 픽업트럭을 닦고 있다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안씨는 아파트 두 군데서 새벽 2시부터 8시까지 30여대의 차를 물 세차 방식으로 닦는다. 주차장에서 물을 많이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분무기로 적은 양의 물을 뿌려 세차한다. 보통 차 1대당 한 달에 4만원에서 6만원가량 받는다.

3시30분까지 닦은 차는 모두 다섯 대. 구제역소독약인 생석회를 뒤집어 쓴 차들이다. 아직 25대가 더 남았다. 출근시간 전까지 세차를 모두 끝내야 하기 때문에 시계를 확인한 안씨의 손놀림이 더욱 바빠졌다. 안씨는 "생석회가루를 닦아내지 않고 그대로 놔두면 차량 표면이 손상될 수 있다"며 "그때그때 닦아내야 손상 없이 오래 탈 수 있다"고 귀띔했다.

안씨는 조금 전 닦던 차의 세차를 끝내자마자 다음 차가 있는 곳으로 작업차량을 몰고 쏜살같이 달려갔다. 안씨의 작업차량 트렁크는 광택기와 여러 종류의 왁스, 걸레를 비롯해 각종 세차용품들로 가득했다. 다음 차 앞에 도착한 안씨가 트렁크에서 먼지털이개를 꺼내 차에 뭍은 먼지를 재빠르게 털어냈다. 그 다음 분무기로 물을 뿌리고 고체왁스를 바른 뒤 촉촉한 걸레를 들고 능숙한 솜씨로 차를 닦았다. 생석회가루로 뒤 덥혀 회색빛깔을 냈던 차가 금세 반짝반짝 윤이 났다. 

   
▲ 세차원 안씨의 작업차량 트렁크. 용도가 다른 걸레들과 분무기, 왁스제품을 비롯해 각종 세차용품들로 가득하다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안씨는 "처음 시작할 때는 자신 있었는데 점점 나이가 들다 보니 체력도 떨어지는 것 같다"며 "게다가 요즘 어깨와 무릎이 아픈데다 잠까지 부족해 기억력도 떨어지는 것 같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안씨는 차를 닦는 동안 먼지 털기, 왁스칠, 걸레질을 하며 쉴 틈 없이 팔을 움직였다. 또 차량 구석구석을 닦기 위해 수차례 앉았다 서기를 반복했다. 어께와 무릎에 무리가 갈 수 밖에 없어 보였다.

어려운 점은 이 뿐만이 아니다.
올 겨울 유난히 추운 날씨와 대구지역에 내린 눈으로 세차하는데 무척 애를 먹었다. 안씨는 "지하주차장은 그나마 사정이 났다"며 "야외주차장에서 일을 할 때면 장갑을 세 겹이나 껴도 손이 시려 작업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또 "눈 온 뒤 차 외부에 얼음이 얼면 세차할 수 없는데도 가끔 몇몇 차주들에게 '왜 세차를 하지 않았냐'는 항의를 받을 때면 속상하다"고 말했다.

세차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도 반겨주는 가족이 없다. 맞벌이하는 아내와 학생인 아이 모두 아침 일찍 집을 나서기 때문에 퇴근 뒤 홀로 텅 빈 집을 쓸쓸히 지켜야 한다. 안씨는 "집에 돌아온 뒤 혼자 밥 먹을 때가 제일 서글프다"고 말했다.

그러나 안씨는 "자신이 일한 만큼 돈 벌 수 있는 정직한 직업"이라며 "힘들어도 평생 할 수 있는 일이다 보니 정년 걱정이 없어 마음은 편하다"고 말했다. 또 "매일 아침 차주들이 깨끗해진 차를 타고 출근하는 모습을 볼 때면 이루 말할 수 없이 뿌듯하다"며 웃음을 지었다.

   
▲ 안씨가 분무기로 차에 물을 뿌리는 모습. 세차에 물을 많이 쓸 수 없기 때문에 분무기를 사용해 적은 양의 물을 사용한다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새벽세차 일을 하기 전 안씨는 영천에서 횟집을 운영했다. 98년도 IMF 경제위기 때 개업했지만, 안씨의 횟집은 불황을 모를 정도로 제법 장사가 잘 됐다. 그러나 지난 2001년 영천 콜레라 파동이 있은 뒤 매출이 계속 줄어 결국 문을 닫고 말았다. "장사를 접고 여기저기서 잠깐씩 일 하던 중 생활정보지에서 새벽세차 구인광고를 봤죠. 그전에는 이런 일이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뭐라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에 일을 시작하게 됐죠."

생활정보지를 보고 새벽세차를 시작하게 된 안씨는 한 달간 일을 배운 뒤 독립했다. 원래 이 아파트단지에서 새벽세차를 하던 업자에게 권리금 1천여만원을 주고 아파트 세차권을 넘겨받았다. 보통 관리사무소에 허락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한 아파트마다 새벽세차 업주는 대부분 한 명씩이다. 안씨는 "신규 아파트단지가 들어설 때마다 업자들 사이에서 세차권을 따내기 위한 전쟁이 벌어진다"고 말했다.

새벽세차 업주들은 대부분 사업자등록을 하지 않는다. 세차업의 특성 상 비과세업종인데다 수입이 비정기적이기 때문이다. 안씨는 "몇몇 업자들이 사업자등록을 시도했는데, 관할구청에서 등록하지 않아도 된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말했다. 안씨를 비롯해 대부분의 새벽세차 업주들은 변변한 사무실도 없다. 자신이 맡은 아파트 지하주차장 한 구석을 창고처럼 쓰기도 한다. 

   
▲ 아르바이트생 김씨와 함께 세차를 하는 모습. 세차원 안씨는 아르바이트생에게 작업을 지시한 뒤 새벽 5시쯤 다른 아파트로 자리를 옮겼다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새벽 4시30분쯤, 안씨와 함께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이 자전거를 타고 지하주차장에 나타났다. 안씨가 손수 제작한 작업용 자전거다. 자전거 뒷 자석에는 우유박스를 사용해 만든 세차도구함이 실려 있었고, 그 안에는 각종 세차용품이 가지런히 담겨있었다. 대학 4학년인 김모(25)씨가 자전거에서 내려 안씨와 함께 세차를 시작했다. 방학을 맞아 용돈을 벌기 위해 한 달 전부터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김씨는 "새벽에 한 두 시간정도 일하기 때문에 부담이 없어 세차 아르바이트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안씨가 하루 밤 사이 아파트 두 군데를 돌며 세차해야 하기 때문에 최근 아르바이트생을 두 명 고용했다. 이들의 월급은 각각 40만원.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할 정도면 돈 벌이가 꽤 될 것 같지만 안씨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주 5회 세차기준으로 하면 세차비가 하루 2~3천원 정도인데 각종 재료비에 인건비, 기름 값을 빼면 얼마 남지도 않는다"며 "밥은 먹고 살 수 있는 정도"라고 말했다. 

새벽 5시쯤, 안씨는 아르바이트생 김씨에게 닦아야 할 차량 10대의 위치를 알려준 뒤 서둘러 시지에 있는 다른 아파트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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