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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에 목마른 사회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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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태 칼럼] "불법 전력, 공직에 연연하지 않는 최소한의 양심은 있어야"


이명박 정부가 집권 하반기의 통치철학으로 ‘공정한 사회’를 내 세웠다. 얼마 전 ‘친 서민’을 말했을 때처럼 어딘지 궁합이 잘 맞지 않다고 느끼는 국민들이 많은 것 같다. ‘공정’이나 ‘서민’이 마음에서 나온 소리가 아니라, 이러다간 정권을 빼앗기겠구나하는 계산심리에서 나왔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얼마 전 있었던 총리후보자와 장관후보자의 국회청문회를 보라. 청와대의 인사검증을 통과한 후보자들의 면면에서 공정한 사회를 실현하려는 최고 통치자의 의지나  노블리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정신은 아예 찾을 수가 없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천민자본주의의 현장을 확인할 수 있었을 뿐이다.

 “뭘 그 정도를 갖고 그토록 따져. 기회가 닿았다면 그렇게 안할 사람 어디에 있었겠는가?”하고 관대한 잣대를 들이 대는 사람들이 없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풍요 속의 빈곤에 허덕이는 서민들에게 그런 관대한 잣대는 이제 더 이상 통할 수 없다. 아니, 통해서도 안 된다. 상대적인 박탈감에 허덕이는 사회적 약자의 숫자가 줄기는커녕 오히려 늘어나기 때문이다.

 노블리스 오블리주는 높은 사회적 신분을 가진 사람들의 도덕적 책무를 말한다.  귀족 같은 고위층이 전쟁에 참여하는 전통은 고대 로마시대부터 확고했다. 그 한 예로 카르타고와 벌인 16년간의 제2차 포에니전쟁 중 로마의 최고 지도자인 집정관의 전사자 수가 13명에 이르렀다는 기록이 있다. 근대와 현대에 이르러서도 이러한 도덕의식은 계층 간 대립을 해결할 수 있는 최고의 수단으로 여겨져 왔다.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영국의 고위층 자제가 다니던 이튼칼리지 출신 중 2,000여 명이 전사했고, 포클랜드전쟁 때는 영국 여왕의 둘째아들 앤드루가 전투헬기 조종사로 참전했다. 6·25전쟁 때도 미군 장성의 아들이 142명이나 참전해 35명이 목숨을 잃거나 부상을 입었다.

 ‘잘살아보세’만을 구호로 외치며, 오직 돈과 출세만을 최선의 가치로 인식하고 달려온 우리에게 노블리스 오블리주 정신은 아직 제대로 싹도 트지 않았다. 국민들의 인식도 그런 수준이다. 여당의 대표가 병역 기피자이었다거나, 자녀를 좋은 학교에 입학시키려 했다는 핑계로 위장전입을 상습적으로 해온 장관 후보자가 청문회장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도 제대로 분노 할 줄 모르는 현실이 그렇다.

 설사 모든 국민이 어느 정도의 불법을 하고 살아온 것이 현실이라 치자. 그렇다고 법을 통해 나라를 다스려야 하고, 많은 사람 앞에서 모범을 보여야 하는 입장에 있는 사람이 불법을 예사로 한 전력이 있다면, 장관 또는 그이상의 큰 공직에 연연하지 않는 최소한의 양심은 있어야 할 것이다.

 미국 하바드 대학교의 마이클 샌들이라는 교수가 쓴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철학책이 요즘 우리나라 서점가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아무래도 좀 이상한 일이다. 아기자기한 재미도 별로 없는 내용인데도, 우리나라 젊은이들은 가치관의 혼란에서 오는 정서적 배고픔을 이 책을 통해 풀어보려고 작정이라도 한 모양이다. 

 얼마 전 내한한 저자는 말했다. “나의 책에 관심이 높은 것은 도덕적·윤리적 가치에 대한 갈증 때문이다. 경제논리가 정치를 지배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도덕적·윤리적 가치에 대한 갈증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국회에서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한나라당은 하루빨리 주민등록법과 부동산 투기, 공소시효, 학군제 같은 ‘시시한’ 법과 제도들을 소급해서 폐기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래야 이 나라에 법치가 살아나고, 가난하고 힘없는 서민들도 살맛을 찾을 것 아닌가. 국무총리 후보자를 비롯한 몇 명의 장관후보자가 사퇴한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이미 그전 정부에서도 주민등록법 위반 같은 ‘사소한’ 낙제점 때문에 낙마한 후보자는 많았다. 그런 법치주의가 이 정부에 들어와서 많이 무디어지고, 거꾸로 갔을 뿐이다. 위쪽 단추가 잘못 끼인 이런 사회에서 ‘공정’을 이야기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어색한 일인가. 






[김상태 칼럼 7]
김상태 / 전 영남일보 사장.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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