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4월 20일이 다가오면 장애인들의 집회와 요구가 이어진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장애인의 날'이라며 기념행사를 열지만, 적지 않은 장애인단체들은 이 날을 '장애인 차별 철폐의 날'이라 부르며 기념행사를 거부한 채 별도의 집회를 갖는다. 올해도 대구지역 42개 단체는 '420장애인차별철폐대구투쟁연대'를 꾸려 국가인권위원회에 '장애인 차별 진정'(4.11)을 낸 것을 비롯해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장애인의 날'을 이틀 앞둔 18일 오전, 경북도청 앞에서 경산장애인자립생활센터를 비롯한 10여개 단체 회원 50여명이 '경북 420 장애인차별철폐 투쟁선포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 단체는 △이동권 △활동보조서비스 △탈시설 △발달장애인권리보장 등을 포함해 '장애인 생존권 확보를 위한 9대 요구안'을 경상북도에 제시하며 "전면 수용하라"고 촉구했다.
"4.20, 경쟁하듯 '행사' 급급...언론도 왜곡된 이미지 덧씌워"
이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매년 4월 20일 장애인의 날만 되면 마치 장애인이 이 사회에서 한 구성원으로 차별 없이 살아온 것 마냥 정부와 지자체, 관변단체, 기업들은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앞서서 행사를 치르기에 급급하다"며 "장애인들을 모아 야유회를 가고, 대회를 열고, 공연을 치르며, 체육관에서 '불쌍한 이'들을 모아 동정어린 시선으로 밥을 먹인다"고 비판했다.
또, "언론 또한 이런 행사를 쫓아 정작 장애인을 대상화시키고 억압하고 있는 이들이 벌이는 잔치에 '아름다운 사회'라는 왜곡된 이미지를 덧씌운다"며 "그러나 결국 그 단 하루가 끝이 나고 나면 장애인들은 다시 이 땅에서 철저하게 버려진 존재로 취급되며 장애인이 겪고 있는 현실의 문제는 다시금 수면 밑으로 가라앉고 만다"고 성토했다.
저상버스.활동보조..."유독 경북만"
경북장애인부모회 김형중 회장은 "경북에 장애인을 위한 복지가 있느냐"며 "보여주는 정책이 아니라 장애인에게 실제로 도움되는 정책을 만들어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경북장애인교육권연대 최외철 집행위원장도 "유독 경북만 하지 않는 장애인 정책이 많다"며 "장애인의 날 하루가 아니라 1년 365일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경북도청이 9대 요구안을 정책으로 수용하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유독 경북만 하지 않는 정책'으로 장애인을 위한 '저상버스'와 '활동보조서비스'를 꼽았다.
'저상버스'는 바닥이 낮고 출입구에 계단이 없는 버스로 노약자나 장애인이 쉽게 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지자체마다 수 십에서 수 백대를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경북에는 지난 2004년부터 도입된 저상버스가 22대 뿐이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경기도(878대)를 제외하더라도, 가까운 경남(335대)이나 대구(152대)와 비교도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충남(25대), 전북(26대)보다 적은 '전국 최소'의 불명예를 쓰고 있다.
중증장애인에게 지원하는 '활동보조서비스' 역시 '전국 최하' 수준이다. 그것도 '1원도 예산 없는' 아주 드문 지자체로 꼽힌다. '활동보조서비스'는 국가사업으로 한 달에 최대 180시간까지 지원하고 있고, 지방자치단체는 여기에 자체 예산을 더해 지원 폭을 넓히고 있다. 울산시는 국가지원 180시간에 자체 예산으로 120시간을 더해 최대 300시간까지 지원하고 있다. 대구시도 180시간에다 60시간을 더해 월 최대 240시간까지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경북은 이 같은 자체 지원 예산이 1원도 없다. 때문에, 경북지역의 중증장애인은 국가사업으로 지원된 서비스 180시간 외에는 1시간도 도움을 더 받을 수 없다.
저상버스? "그건 교통과로"...활동보조? "확인하고"
이 같은 '유독 경북만' 꼽힌 두 가지에 대해 경북도청의 입장은 어떨까? 어이 없게도, 담당 공무원조차 제대로 알 지 못하고 별 의지도 보이지 않았다. 사회복지과 A씨는 '22대 뿐'이라는 저상버스 현황에 대해 "장애인단체가 준 자료를 봤는데, 그건 교통과 소관이라 그 수치가 맞는지는 그 쪽(교통과)에 물어봐야 한다"고 말했다. 또, "활동보조서비스는 복지과 소관 아니냐"고 묻자 "자세한 내용은 확인해 연락주겠다"고 했다.
20분쯤 지나 연락 온 복지과 B씨는 "우리 경북은 100시간까지 지원하고 있다"고 했다. "국가 지원이 180시간인데 왜 그것 밖에 안되냐"고 되묻자 "확인하고 다시 연락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잠시 뒤 "180시간이 맞다"며 "그 외에는 자체적으로 추가 지원하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추가 지원 '계획'에 대해서는 "내년 쯤 예산을 올릴까 검토하겠다"고 했다.
"경북의 장애인정책이 왜 다른 지자체보다 못한가"라고 묻자, "이런 것 말고는 경북이 다른 지자체보다 장애인 복지에 더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고 했다. "더 좋은 건 뭔가"라는 물음에 "00단체를 비롯해 장애인 단체 활성화에 지원을 많이 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 뿐이었다.
한편, 이들 장애인단체와 경상북도는 '9대 요구안'에 대해 5월 13일 전까지 만나 논의하기로 했다.
|
저작권자 © 평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