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기지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아직도 주한미군이 이 땅의 ‘평화’와 ‘안전보장’을 위해 주둔하고 있다고 믿는 시민들이 적지 않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그랬듯이 전쟁이 없는 곳에서 오히려 전쟁을 일으키는 것이 미군이 하는 일이라는 분명한 사실을 직시하지 않는 이들을 우리는 주변에서 흔히 만난다. 그런 이들은 대부분 정치권력과 언론을 장악하고 있는 기득권 세력이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공허한 논리, 즉 북한의 군사적 위협으로부터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을 지키는 데 주한미군의 존재는 불가피한 것이라는 논리를 들먹인다.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라는 것이 사실은 지배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기득권 세력이 그동안 가공하고 유포시켜온 하나의 ‘판타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이들은 좀처럼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또 주한미군의 존재가 오히려 한반도뿐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의 ‘군사적 긴장’을 높일 뿐만 아니라, 한반도와 동아시아 평화 실현의 가장 큰 장애물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반미(反美) 세력’의 불온한 선동쯤으로 치부해 버리곤 한다.
물론 풀뿌리의 삶에 ‘평화’와 ‘안보’만큼 중요한 가치는 없다. 오늘의 삶이 내일도 모레도 안정적으로 지속될 것이라는 믿음 없이 한 사회는 정상적으로 유지될 수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것이 누구의 ‘평화’이고 어떤 ‘안전’인가 하는 것이다. 이번에 전역 미군들에 의해 폭로된 왜관의 캠프 캐럴 기지 고엽제 매립 사건은 바로 이러한 근본적인 질문을 우리 사회에 던지는 중대한 계기가 되고 있다.
일본의 환경학자이자 평화운동가인 토다 키요시(戶田 淸)는 『환경학과 평화학』에서 ‘군사적 안전보장’이 ‘민중의 안전보장’, ‘환경의 안전보장’에 적대적이라고 역설한 바 있다. 백번을 양보해서 미군이 이 땅의 ‘군사적 안전보장’에 조금이라도 기여한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그 진상을 파악할 수조차 없는 규모로 고엽제라는 끔찍하기 짝이 없는 독성화합물질(전쟁용 살상무기)을 이 땅의 어딘가에 함부로 뿌리고, 파묻고, 은폐해온 것이 사실이라면,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주한미군이 이 땅 풀뿌리 민중의 ‘안전보장’을 뿌리로부터 파괴하는 ‘적대적 존재’라는 것은 길게 말할 필요조차 없는 것이 된다. 더구나 고엽제에 의한 지하수와 토양의 오염은 일차적이고 단기적인 위해(危害)뿐만이 아니라, 몇 세대에 걸쳐 우리의 후손들에게까지 피해를 끼치는 중대한 ‘적대 행위’이다. 이러한 적대 행위를 용인해 가면서까지 우리가 미군으로부터 보장받아야 할 ‘안전’과 ‘평화’란 도대체 무엇인가.
'팍스 이코노미카'가 감추고 있는 폭력
우리 사회 소수 기득권 세력과 지배 엘리트들이 그토록 바라마지 않는 ‘평화’와 ‘안전’은 실은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생활조건, 즉 권력과 경제적 영향력의 유지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보장받기를 염원하는 ‘평화’와 ‘안전’이 마치 국민 전체의 이해와 관련된 것인 양 국민들을 속이고 부추긴다. 이때 그들이 오랫동안 상투적으로 사용해온 이데올로기적 수사(修辭)가 바로 ‘경제성장’이다. 문제는 이러한 기득권 세력과 지배 엘리트들의 ‘평화’와 ‘안전’ 이데올로기가 상당수 사회 구성원들에게 여전히 막강한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군의 주둔이 평화와 안보를 위해 불가피하다는 우리 사회 상당수 구성원들의 맹목적인 믿음은 사실상 이러한 지배 이데올로기(를 수용한 결과)의 반영에 지나지 않는다.
평화 연구에서 중요한 과제는 … 경제성장에 대한 이의(異議) 제기여야 한다고 제안하고 싶습니다. … “더 성장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반드시 생활조건을 유지하겠다는 ‘폭력’이 내포되어 있다는 사실, ‘팍스 이코노미카(Pax Economica)’가 감추고 있는 이 폭력을 만천하에 공개하는 것입니다. (이반 일리치, 더글러스 러미스 외 지음 『에콜로지와 평화의 교차점』에서 재인용)
미군에 의한 고엽제 매립뿐만이 아니다. 지금 연일 터져 나오고 있는, 일일이 열거하기에도 참담한 여러 환경문제들이 결국은 이러한 구조적 폭력(‘팍스 이코노미카’가 감추고 있는 폭력)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을 우리는 상기할 필요가 있다. 구제역 발생에 따른 가축의 대량 매장과 그로 인한 토양 및 지하수의 오염, 4대강 토건사업으로 인한 강과 주변 생태계의 광범위한 파괴 및 살인적 노동에 의한 노동자들의 잇따른 죽음, 핵발전소로 인한 거대사고의 위험과 방사능 오염 등 최근 일련의 사태들만을 놓고 보더라도, 지금 우리 사회의 환경문제들은 이미 그 ‘폭력’의 수위가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환경에 대한 폭력은 단순히 ‘인간 외부’의 ‘자연’에 대한 악영향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토양과 대기, 하천과 지하수 등에 대한 폭력은 그것에 의존해 살아갈 수밖에 없는 풀뿌리 민중의 삶에 대한 공격에 다름 아니다. 농업과 어업 등에 의존해 생계를 이어가는 민초들은 말할 것도 없지만, 당장 우리 눈앞에 식수난과 먹을거리 안전성에 대한 불안, 곡물을 비롯한 식품가격 폭등 등이 전면으로 나타나듯이 환경재앙은 곧 대다수 민중의 삶의 위기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특히 이러한 불안과 삶의 위기는 사회적․경제적 약자들에게 더욱 큰 부담으로 전가되는 심각한 ‘환경 불평등’을 초래한다.
"미국한테 빌면서까지 미국 군대를 우리 땅에 붙잡아 둬서야 되겠나"
환경문제만이 아니다. 지금 ‘노동의 소모품화’라 할 수 있는 비정규직의 양산으로 대다수 민중의 생존과 인간존엄이 뿌리째 흔들리고, 가난한 대학생들이 연일 촛불을 들고 ‘반값 등록금’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서야 하는 사회적 ․ 경제적 위기는 ‘팍스 이코노미카’가 감추고 있는 폭력이 우리 사회 어느 한 구석도 평화로운 ‘공유지(共有地)’로 남겨 두지 않고, 모조리 기업과 자본의 이익만을 위한 엔클로저(울타리치기)의 가시철조망으로 사유화․독점화하고 있음을 생생하게 보여 주고 있다. 물론 사유화와 독점화의 대상은 ‘평화’와 ‘안보’ 같은 가치에까지 확장된다. 즉 자신들만의 ‘평화’, 자신들만의 ‘안보’를 마치 사회 전체의 것인 양 포장하고, 그러한 독점적 이미지를 확대․재생산한다.
이러한 우리 사회의 최근 사태들이 가리키고 있는 ‘본질’을 우리가 직시한다면, 기득권 세력과 지배 엘리트들이 주한미군을 주둔시켜가며(그것도 불평등하기 짝이 없는 SOFA로써 ‘식민지에 준하는 치외법권적 특권’을 보장해 주면서까지)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우리 사회의 ‘평화’와 ‘안전’ 상태라는 것이, 사실은 풀뿌리 민중과 환경에 대한 끊임없는 폭력 상태에 다름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물론 여기에서, 제국으로서 미국의 세계지배 전략이라는 측면까지 다룰 여유는 없겠지만.) 다시 한번 이반 일리치의 말을 빌린다면, “팍스 이코노미카는 민중의 평화를 근원적으로 위협하는 것”이다. 그리고 미군(미국)에 의해 유지되는 평화, 즉 ‘팍스 아메리카나’는 결국 ‘팍스 이코노미카’의 다른 표현에 불과하다.
캠프 캐럴의 고엽제 매립 의혹 진상은 명백히 밝혀져야 한다. 아울러 불평등한 SOFA 개정 및 주한미군의 단계적 철수 등, 그동안 오랫동안 한반도 평화를 위해 진보운동 진영이 요구해 왔던 의제들이 다시 한번 진지하게 다루어지고, 당장의 정치적 의제로서 채택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번 일이 우리 사회에서 기득권 세력과 지배 엘리트들에게 독점된 ‘평화’와 ‘안보’에 대해 근원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그것에 도전하는 ‘민중의 평화’가 무엇인지를 깊이 성찰하는 계기가 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몇 년 전 돌아가신 권정생 선생의 다음과 같은 이야기들은 ‘팍스 이코노미카’가 감추고 있는 폭력을 가장 날카롭게 드러내면서, ‘민중의 평화’를 위해 풀뿌리 스스로가 먼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말해주는, 이 땅의 가장 양심적인 목소리가 아닐 수 없다.
나는 고속도로로 씽씽 달리는 자동차들이 바그다드를 향해 폭격을 하는 전투기와 하나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내가 지나치게 민감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수많은 생명이 죽었고 또 죽어가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골프장 건설 반대 깃발이 내려지던 날」)
승용차를 버려야 한다. 그리고 아파트에서 달아나야 한다. 30평짜리 아파트에서 달아나 이전에 우리가 버려두고 떠나왔던 시골로 다시 돌아가서 15평짜리 작은 집을 짓고 살아야 한다. … 텃밭을 가꾸고 묵혀 둔 논에 쌀농사 지어 자기 먹을 것은 자기 손으로 농사 짓고 … 한국사람 절반만이라도 이렇게 살면 자연환경은 더 이상 파괴되지 않고 쓰레기도 사라진다. … 패권주의 미국한테 발목 잡혀 계속 끌려가다 보면 통일도 점점 멀어지고 우리들 자유민주주의도 위태로워진다. 전쟁의 불안은 계속될 것이고, 미국한테 엎드려 빌면서까지 미국 군대를 우리 땅에 붙잡아 둬야 할 것이다. (「승용차를 버려야 파병도 안 할 수 있다」)
[변홍철 칼럼 5]
변홍철 / <물레책방> 인문학연구실장. 전 <녹색평론> 편집주간
저작권자 © 평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