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4,320원으로 살아 본 적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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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③ 정병기 / "노동부장관, 하루라도 최저임금 노동자 체험 해보라"



오는 6월 말로 예정된 2012년도 최저임금 결정을 앞두고 '최저임금'과 관련한 릴레이 기고를 3회에 걸쳐 싣습니다.
이 기고는 대구지역 68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최저임금인상 생활임금쟁취 대구연대회의' 제안에 따라, 안숙영(부산대 여성연구소 SSK 전임연구원), 김용주(공인노무사), 정병기(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순으로 이어집니다. 지난 5월 결성된 대구연대회의는 6월 15일부터 28일까지 "최저임금 5,410원 인상, 생활임금 보장, 비정규철폐 대행진"을 합니다 - 평화뉴스


생활임금에 기반한 최저임금제도의 정착은 노동자들의 기본적 요구:
노동고용부장관과 최저임금심의위원회 공익위원들에게 일일 최저임금 노동자 체험을

하루 4,320원으로 살아 본 적이 있는가? 현재 우리나라 최저임금 시급에 해당하는 액수다. 성실하게 일해 한 달에 쥐는 돈이 90만원 남짓이다. 이 돈에서 집세와 옷가지 및 병원비와 교육비를 어렵사리 감당하면 하루 쓸 돈은 만 원밖에 남지 않는다. 이것을 세 식구가 쓴다면 가장에게 교통비를 포함해 잘해야 사천 원 정도 돌아갈 것이다. 시급이 곧 하루 생활비가 되는 셈이다. 왕복 교통비를 빼면 햄버거 하나도 제대로 사먹을 수 없는 돈이다.

3인 가정에 맞벌이를 한다고 해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실제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하위 20%는 가구당 월평균 119만원을 벌어 136만원을 지출하고 매달 17만원의 적자를 쌓아간다. 이것은 ‘만원의 행복’ 같은 TV 쇼가 아니다. 우리 주변에서 210만 명이나 되는 최저임금 이하 노동자들이 열심히 일하면서도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 심지어 이 비율은 점차 높아져 2002년 4.9%에서 2010년 11.5%로 상승했다.

문화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 정도의 임금을 생활임금이라 하고, 가까스로 생존 가능한 수준의 임금을 생존임금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시급 4,320원이 정부와 자본이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최저임금이다. 과연 최저임금은 생존임금 수준이라도 되는가? 최근 최저임금제 도입을 두고 논란이 거세게 일고 있는 독일에서는 현재 부문별로 적용되고 있는 최저임금이 적어도 시급 8유로로 우리 돈 약 12,000원이 넘는다. 게다가 독일은 사회보장제도가 정착되어 있어 의료비와 교육비 등이 거의 들지 않는 나라다.

6월 말 최저임금 결정을 앞두고 수많은 노동자들이 최저임금 현실화를 외치며 평균임금의 50%인 5,410원으로 인상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평균적 삶의 절반에 만족하겠다는 지극히 겸손한 주장이다. 그럼에도 경영계는 2012년 최저임금도 올해 수준인 4,320원을 고수하겠다고 한다. 물가가 두 배로 상승하고 등록금이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는 현실에서 말이다.

임금은 원래 노사간 근로계약이나 단체협약에 의해 자주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원칙이다. 노조 조직률이 높은 북유럽 국가들의 경우에는 사실상 최저임금제가 필요치 않다. 그러나 노조 조직률이 낮고 특히 조직률이 취약한 비정규직의 비율이 높은 우리나라 같은 경우에는 최저임금제가 주는 효과가 적지 않다. 노조가 없는 상황에서는 노동자들이 사용자에 대항해 협상을 진행할 수 없어 각종 임금착취에 무방비로 노출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도 어디까지나 적정 최저임금이 결정되고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최저임금 준수를 보장해야 의미가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최저임금 자체가 생존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임에도 정부는 최저임금이 지나치게 높다는 말을 반복할 뿐만 아니라 2010년만 보더라도 최저임금 점검 사업장의 절반 이상이 최저임금법을 위반했다. 210만 명의 노동자들에게 최저임금은 오히려 최고임금으로 작용하고 있는 현실이다.

시장경제 논리에 따르면 최저임금이 노동력의 수요 공급 원칙에 따른 균형임금 이상으로 높아질 때 실업이 균형임금과 최저임금의 차이보다 훨씬 많아진다. 때문에 자유주의자들은 최저임금 논쟁에서 언제나 실업 문제를 거론한다. 사실 실업자가 양산되고 있는 신자유주의 시기에 실업은 전가의 보도와 같다. 그러나 실업도 문제지만 열심히 일해도 생존임금을 위해 허덕여야 하는 데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실업은 일자리 창출로 해결할 문제이지 최저임금을 낮춰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실업 문제를 최저임금과 연계하는 것은 실업을 최저임금 노동자들의 비용으로 해결하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생존임금을 넘어 생활임금에 대한 요구는 노동자들의 기본적 요구이자 권리다. 최저임금은 생활임금을 토대로 결정되어야 하며, 이는 제도화를 통해 장기적으로 보장돼야 한다. 유럽 선진국에서는 높은 임금 수준임에도 물가상승에 따라 임금이 자동적으로 인상되는 물가임금연동제를 적용하기도 한다. 하물며 최저임금조차 동결하려는 우리나라는 과연 어느 행성에 존재하는 나라인가? 5,410원의 최저임금이 높다고 하는 정부 관계자와 사용자들에게 일일 최저임금 노동자 체험을 하게 해보자. 무엇보다 최저임금을 심의하고 결정하는 노동고용부장관과 최저임금심의위원회 공익위원들에게 적극 권유한다.






[기고] - 최저임금③
정병기 / 영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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