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분의 오랜 꿈을 들었다. 운영하는 병원이 안정되면 장학사업을 할 계획이었다는 것. 그런데 그분께서 나에게 이런 제안을 한다. “전에부터 생각했는데, 시민운동을 하는 분들을 위해 뭔가 하고 싶어요. 그 사람들도 가정을 꾸리고 살아갈 거니까, 요즘 자식 키우기가 만만찮으니까, 시민활동가 자녀 장학기금, 뭐 이런 것을 진행하고 싶은데, 가능하겠습니까?”라 말씀하신다. ‘아니,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실 수 있으실까?’ 생각해 본다. 큰 금액은 아니지만 매년 일정금액을 지인들과 함께 출연하겠다며 방법을 물으신다. 그래서 다듬어지고 있는 기금이 ‘시민활동가 자녀 장학기금’. 지금 세부적인 계획을 다듬고 있다. 조만간 조그마하지만 따뜻한, 사람을 생각하는 투자가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요즘 시민단체나 풀뿌리단체의 상근활동가 채용공고가 기간을 넘기고도 한참이나 게시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렇게 기간을 경과하고도 상근활동가를 채용하면 주위의 단체들은 신기해 한다. “아니, 그런 인재가 어디에 숨어있었어요?”라며. 내가 처음 시민운동을 시작할 90년대 중반에 상근자 채용공고를 내면 너댓명은 넘게 응모하였다. 아니 채용공고를 낼 필요도 없이 주위에 있는 분들에게 막걸리 한잔 마시면서 진지하게 제안하면 거의 대부분 시민운동을 선택하던 시기가 있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무엇이 문제인가?"
이에 대한 답으로 학생운동과 시민운동의 관계에서 찾는 것은 너무 무책임한 태도이다. 학생운동 출신에서 시민운동이 충원되던 시기도 분명 있었다. 또 시민운동가 대부분이 학생운동 출신이 담당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현재 시민운동을 하고자 하는 사람이 없는 것을 학생운동에 원인을 돌릴 수는 없다는 것이다.
우선, 시민운동이 후배세대들에게 더 이상 ‘멋’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배고픔을 선택할 만큼, 안정을 포기하고 불안정을 선택할 만큼 시민운동이 그들에게 멋있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부터라도 시민운동은 멋있게 보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새로운 시도, 정부나 기업이 하지 않는 발상, 열정 하나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자세, 혁신가로서의 자세가 멋있는 자세가 아닐런지.
이런 후배님이 있다. 사람도서관을 운영하니 도서관 관장인가, 하여튼 아울러라고 이름붙인 사람도서관을 운영한다. 30대 초중반인데(아, 나도 언제부터인가 사람을 보지않고 나이를 보는 구나), 본인이 하고싶어하는 일을 하면서도 그 활동속에서 가치가 생산되고 교류되며 공감대가 만들어지는 활동. 사람에 대한 고려라니 얼마나 멋있는가!
사람을 강조하는 사람이 있다. 지역에서 마을학교를 운영하는 활동가들을 지원, 격려하고 마을학교 운영메뉴얼 제작, 마을학교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는 마을교육연구소를 만든 사람이 있다. 활동 방식이 독특하다. 가령 마을학교 활동가지원 기금을 만들고자 한다면 대부분은 ‘왜 기금을 만들어야 하는가’를 설명할 것인데, 이 분은 ‘왜 사람에게 투자해야하는가’를 설명하여 목표에 달성한다. 다른 방법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혁신이 어려운 것은 익숙한 작은 것을 바꾸기 힘들기 때문이다. 익숙한 것들을 바꾸는 힘이 그에게 있다.
지역에서 사람에 대한 투자를 제대로 한 적이 있는가? 대구시든, 대학이든, 시민운동이든. 눈앞의 성과에 목맨 나머지 길게 보고 사람을 길러내는 일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똑똑한 빌 게이츠가 수만명을 먹여살린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혁신적인 사람인 빌 게이츠가 수만명을 먹여살리는 것이다. 대구에 필요하면서도 시급한 일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람을 키우는 것이며 그 중에서도 혁신적인 사람을 키우는 일이다. 누구에게 맡길 것인가? 난 단언코 시민운동의 몫이자 역할이라고 말한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지금과 같아라’라고 생각하고 있는 지역리더들이 사람을 키우겠는가? 그렇지 않다. 변화를 갈망하는 곳에서 사람을 준비해야 한다. 각 단체가 가진 것, 조금만 내어놓자. 시간이든, 노력이든, 지혜든 그것이 무엇이든. 사람을 키우는 학교를 만들어보자.
[윤종화 칼럼 8]
윤종화 / 대구시민센터 상임이사. yoonjj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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