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에 대흥동이라는 동네가 있습니다. 과거에는 대전의 중심지로서 주위에 충남도청, 대전광역시, 경찰서, 세무서 등이 있으며 젊음과 소비가 함께하는 곳이었다는 군요. 세월이 가면 새로운 중심이 생기고 과거의 그곳이 과거의 것으로 잊혀지고 있는 곳입니다. 어느 도시에서나 볼 수 있는 가게들, 건물들, 골목들. 이런 공간을 원도심이라고 부르더군요. 구도심, 역전의 화려했던 동네, 문화거리,
간혹 대전에 일이 있어서 들르게 되면 대전의 시민운동가 입에서 한번씩 ‘대흥동’ 얘기가 나오더군요. 올해 초에 한번 들러보았습니다. 워낙 밤 늦은 시간에 둘러본 이유도 있지만 몸도 피곤하여 쉽게 그 무엇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냥 까페, 그냥 잡지(잡지의 내용은 읽지도 않고), 그냥 활동가. 그들이 친절하다는 것과 무엇이든 물으면 참으로 성의껏 설명해 주더라는 기억 뿐.
얼마전에 대전에서 3일 동안 워크샵을 하면서 밤 낮을 대흥동 일대에서 보낸 적이 있습니다. 그 전에는 눈에 보이지 않던 여러 모습을 보았습니다.
처음에는 대흥독립 만세인 줄 알았습니다. 아, 마을운동가들이 뭔가 ‘자치’와 ‘공동체’를 추구하기 위해 ‘독립’이라는 말을 사용했구나 생각했습니다. 지방정부나 지역개발 유혹으로부터의 독립? 동네가 쇠퇴하면 누군가는 그 땅을 사들여서 개발하고 싶어하고 그러면 그 이전의 것들은 사라지기에 이를 지키기 위해 독립이라는 말을 사용했구나 싶었던 거죠. 다시 보니 대흥동립이더군요. 마을을 세우겠다 혹은 마을을 만들겠다는 희망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더군요.
오늘은 이 대흥동립만세를 비롯하여 대흥동에서 벌어지는 신명에 대해 얘기해 볼 까 합니다. 쇠락하는 동네에서 문화까페거리로, 10대부터 60대까지(70대로 즐길 수 있습니다.) 찾아오는 거리를 만들고 있는 현장으로 안내합니다. 현재 대흥동일대에는 게스트하우스인 ‘산호여인숙’, 월간잡지 ‘토마토’, 까페 ‘이데’, ‘공감여행’, ‘커피굽는 그 남자’ 그리고 대흥동립만세가 활동하고 있습니다.
산호여인숙(필자도 이틀동안 여기에서 숙박했습니다.)은 과거의 ‘진짜’ 여인숙을 조금 손봐서 여인숙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모텔, 호텔이라는 말보다 정감이 느껴지지 않나요? 이 여인숙 주인장은 문화운동가로써 팔자에도 없던 여인숙을 경영한다며 너스레를 떨지만 열정이 대단합니다. 문을 연 지 얼마되지 않았지만 거의 매일 만원이라고 합니다.
월간잡지 토마토는 어떨까요? 대전지역의 문화와 관련된 모든 소식을 다루면서도 도시를 어떻게 만들어가야하는가에 대해 정책까지 싣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살아가는 이야기가 문화가 되는 순간입니다. 토마토에서 ‘봐’라는 공간을 만들어서 모임장소로 대관합니다.
까페 이데는 까페입니다. 작은 공간에 그림과 음악이 함께합니다. 필자가 갔을 때는 강허달림이라는 가수의 공연이 있더군요. 그리고 대흥동립만세! 문화운동단체이자 문화프로그램을 뜻한다고 합니다. 스스로 진화하는 마을 축제, 대흥동 일대에서 벌어지는 연극, 미술, 음악이 어우러지는 마을 축제를 주민들과 함께 추진하고 있습니다. 예술단과 상가번영회가 함께 상설무대와 공간을 운영하고, 예술품을 거래하는 아트프리마켓, 예술과 시민의 만남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이 곳 대흥동 일대에서 진행되는 시도와 실험, 성과를 보면서 이런 특징을 읽어낼 수 있었습니다.
우선 가장 눈에 띄는 장면! 활동가들이 그곳에 있다는 것입니다. 주민들과 다른 사람이 아니라 주민의 일부가 되어 그 시도와 실험의 동력이 되고 있는 것이죠. 다음으로, 혼자서 맨 땅에 헤딩하는 것이 아니라 여럿이 꿈을 꾸고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같이 의논하고 같이 추진하면서 성과를 나누고 실패도 나누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두려움이 없어지는 거죠. 상상을 기획으로, 다시 실천으로 옮길 수 있는 힘이 여기에 있는 듯합니다.
또한 이들은 각자 하고픈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저를 안내한 분께서 “저 친구는 000단체에서 일할 때는 얼굴이 말이 아니었는데, 지금은 참 보기가 좋다”고 하더군요. 까페를 하고프면 까페, 잡지를 만들고 싶으면 잡지, 공연을 추진하고프면 공연...
자, 어떻습니까? 이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는 대전 대흥동 사람들! 참 재미있어 보입니다.
대구지역에도 이와 비슷한 실험들이 있죠. 또 이런 모델을 만들어보고자 하는 꿈들이 있죠. 대전 대흥동 사람들이 주는 교훈을 보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윤종화 칼럼 6]
윤종화 / 대구시민센터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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