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을 고민하는 '대구 언론'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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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숨진 중학생...'피우지 못한 꽃' 만드는 환경과 해법


독자와 시청자들에게 대구의 매체는 대구사람, 국민, 민족, 지구촌의 일원으로서 살아갈 정체성의 틀을 끊임없이 제공합니다. 메시지 전달을 통해서 말입니다. 대구의 매체들이 전파하는 메시지의 논리와 속성을 주마간산 격으로라도 살피는 것(‘언론 비판적 읽기’)은 독자와 시청자인 우리들이 매체의 소비자로서 매체에 길들여져 수동적으로만 살아가지 않으려는, 그리고 희망이 있는 사회공동체를 만들어나가는 작은 노력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매일신문> 2011년 12월 26일자 3면(종합)
<매일신문> 2011년 12월 26일자 3면(종합)
책임 면하기 '몸부림'

복잡한 사건들을 따라가다 보면 왜 그런 사건들이 꼬리를 무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넘어갈 때가 적지 않습니다. 전국적으로 충격을 준 대구 D중학교 A군의 투신자살 사건도 그렇습니다. 사건 발생 보도(인터뷰)에 등장한 해당학교 관계자, 그리고 대구시교육청관계자의 언설(말)은 책임을 면하고픈, 책임을 면하려는 면피성이었습니다.

대구 교육 수장의 언설(기고)도 ‘학부모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고, 사건의 진실을 철저히 규명하고, 책임을 묻고, 재발방지에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한다고 했습니다.(매일신문, 2011년 12월 26일, 3면)

사건 터지자 해법 '만발'

매일신문(다른 신문이나 방송도 마찬가지 정도로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은 한 면을 ‘중학생 투신자살 파문’이라고 붙여 관심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주려고 했습니다.

<매일신문> 2011년 12월 26일자 3면(종합)
<매일신문> 2011년 12월 26일자 3면(종합)

그래서 「‘학교폭력’ 해법은 없나」란 의제를 설정하고 ‘<상> 가정교육이 첫 단추’(26일 3면), ‘<하> 예방시스템 작동 않는 이유’ 두 측면에서 집중적으로 다뤘습니다. ‘학교폭력의 원인은 가정’이라면서 가정에서 ‘마음 담은 눈높이 대화’를 하도록 처방하기도 했고, ‘시스템도 허술, 실효성도 제로’라면서 대구지역에는 폭력방지를 위한 상담인력도 턱없이 부족하고, 폭력방지 제도도 허울뿐이라고도 했습니다. 그래서 교사들의 인식개선과 함께 인성심리상담이 활성화돼야 한다고 해법으로 제시했습니다. 틀린 말이 아닙니다. 학생투신자살사건이 밥상머리 교육이 안 됐기 때문이고, 왕따를 외면하는 학교 시스템이 잘못된 것은 사실입니다.

<매일신문> 2011년 12월 27일자 3면(종합)
<매일신문> 2011년 12월 27일자 3면(종합)

'피지 못하는 꽃' 만드는 환경 외면

그런데 말이지요, 대구시교육감이 말한 ‘꽃도 피우지 못한 어린 학생들’이 어쩔 수 없이 몸을 던져야 하는 환경을 그들 스스로가 만든 것이 아니라면 그런 환경을 만든 책임이 가정과 학교에만 있겠습니까. ‘수월성/경쟁력 있는’ 교육을 강조하면서 막강한 권력을 바탕으로 ‘경쟁교육’ 정책을 수립해 집행하는 정부는 언론의 집중 보도에서 비껴나 있지 않습니까? 대입 철이 되면 서울대학교 합격자의 증감을 주요 메시지로 보도하고 있는 언론의 책임은 면제되는 것입니까?

‘교권회복이 대책’ 주장

<영남일보> 사설 / 2011년 12월 31일자 23면(오피니언)
<영남일보> 사설 / 2011년 12월 31일자 23면(오피니언)
영남일보의 사설을 한 번 보실까요?
이 신문 사설(‘학교현장의 비극은 우리사회의 책임’, 2011년 12월 31일 23면, ‘오피니언’)은 ‘폭력을 견디다 못해 이달 초 극단적 방법을 택한 대구의 중학생 자살 사건’의 근본원인을 ‘교사가 스승으로 대접받지 못하는 우리사회 풍토’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교사가 월급쟁이로 전락한지 오래고’,  또 ‘교원노조가 출범하면서 교원 스스로가 노동자란 인식도 더 강해졌다’고 했습니다. ‘교권회복’이 돼야 한다고 했습니다.

'교원노조' 없는 게 해법?

교사가 스승으로 대접받지 못하는 풍토가 고쳐지면(‘월급장이 교사’와 ‘교원노조’가 없어져서 교원 스스로가 노동자라는 인식을 가지지 않으면) 중학생 투신자살 사건 같은 비극은 발생하지 않는다는 논리인 것 같습니다. 교사가 스승으로 대접받는 풍토-교권회복은 누가 만들어주는 것입니까?

정부, '학교폭력'에 초점

이 사설은 이번 사건의 심각성을 의식한 듯 ‘전국 시.도교육감협의회가 29일 대구에서 열렸다. 학교폭력근절책마련을 주요사안으로 다루는 데 있어 현장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이다. 이주호 교과부장관과 박범훈 청와대 교육문화수석비서관을 비롯해 경찰청, 법무부, 보건복지부, 여성가족부 등 정부 부처 관계자들이 이례적으로 참석했다.’고 했습니다. 아무쪼록 ‘전국 시.도교육감협의회’를 계기로 학교폭력근절책이 마련되기를. 그리고 이 사설이 ‘근본원인’이라고 지적한 교사가 스승으로 대접받는 풍토가 조성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교사가 스승으로 대접받는 풍토는 누가 만들어주는 것입니까? 만들어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부하 입시부정 책임지려 '온 몸 던진' 교육감 

한 가지 교훈을 말씀드릴까요? 지난 1974년 2월 5일 김주만 경상북도 제3대 교육감이 음독자살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당시 대학졸업반이던 필자는 그 때 김 교육감의 자살사건이 미친 충격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부하직원들이 저지른 고교입시부정(그해 1월 28일)에 책임을 지고 ‘극단적인 방법'으로 택한 것입니다. 김 교육감은 당시 노모를 모시고 있었습니다. 김주만 교육감의 ‘자살’은 교육공무원의 길을 지키기 위한, 그리고 교육공무원의 길은 어떤 것인지 보여주기 위해 ‘자신을 던진’ 것이었다고 믿고 싶습니다. 

'월급쟁이' 전락시키는 교육계 고민하는 교사들

그런 점에서 영남일보는 ‘스승으로 존경받는 길’(영남일보는 ‘교권회복’으로 강조했습니다)을 걷기 위해 몸부림치는 교사들의 그 몸부림현장을 보도로 주목해줄 수 없었을까요? ‘월급쟁이’로 전락시키는 구조를 개탄하는 한편으로 사명감을 위해 고민하는 교사들의 몸부림, 교실에서, 정책으로 학생들과 거리를 없애려는 교원노동조합원들의 참교육 몸부림…말입니다.

학생들은 '평범' 

영남일보의 다른 기사를 보실까요? 제목이 엄청 길군요. 하지만 이 신문 사설의 다소 2분법적인 접근과는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가해 동급생들은 평범했다 / 숨막히는 우리 교육현실이 / 그들을 두 얼굴로 만들었다
<영남일보> 2011년 12월 24일자 1면
<영남일보> 2011년 12월 24일자 1면

이 기사는 ‘부모는 돈 벌기 위해 바쁘고, 학교는 경쟁시키고, 친구들과는 경쟁해야 하는’ 교육구조에서는 ‘이런 일이 결국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경쟁구도(조건)를 만드는 정부나, 일방적인 메시지로 그런 환경을 굳히는, 기득권에 편향된 언론의 부작용을 지적하지는 않았지만 교실 현장에 차분히 접근하고 있는 점은 돋보였습니다. 가해자도, 피해자도 평범한, 그래서 가해자가 피해자가 될 수 있는 ‘교실’을 ‘교육적으로’ 접근해 고민하게 한 점에서 그랬습니다. 교육이 먹힐 수 있는 ‘어린 싹들임’을 주목한 것입니다.

조선, '2분법적' 보도

가해학생들의 ‘범행’을 자극적으로 다룬(가해자도 피해자도 될 수 있는 평범한 학생들을 2분법적으로 갈라서 돌팔매질 하는) 보도와도 차별화됐습니다. ‘왕따 폭력의 온상, 중학교’(조선일보, 2011년 12월 30일 1면 머리기사)라고 (중학교) ‘교실’을 거두절미 ‘왕따의 온상'으로 규정해 여론몰이(2분법적 여론 형성(흑백논리)과 함께 상업성을 지향하게 마련인)한 보도와는 큰 차이를 보였습니다.

<조선일보> 2011년 12월 30일자 1면
<조선일보> 2011년 12월 30일자 1면

대안 없는 우리사회 좌표 제시

<영남일보> 사설 / 2011년 11월 29일자 23면(오피니언)
<영남일보> 사설 / 2011년 11월 29일자 23면(오피니언)
2011년 11월 29일 영남일보의 사설(‘공무원 시험 외에 대안이 없는 사회’, 27면 ‘오피니언’)은 대학생들과 대학졸업생들이 겪고 있는 취업난을 다뤄 관심을 모았습니다.

 ‘괜찮은 대학을 나와도 취업이 안 되니, 고교생들이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형편’인 우리사회 취업난의 심각성을 이 사설은 공론장에 사회 의제로 띄웠습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대출받은 학자금 상환압박을 받는 청년층, 취업난에 시달리는 풀 죽은 형․언니를 지켜봐야 하는 고교생들…. 이 사설은 공무원 말고는 대체일자리가 별로 없는 우리 사회를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대안이 없는 사회’라고 지적했습니다. 우리 사회의 현재 좌표를 적절히 규정한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민하는 '2012년 대구언론' 기대   

대구 언론의 정체성을 목숨을 던지는 어린생명의 비극에서 살피고 고민하지 않아도 될, 대안 없는 사회의 좌표를 바꾸기 위해 언론이 구체적인 대안 찾기에 노력하는 2012년을 기대합니다.






[평화뉴스 - 미디어 창 167]
여은경 / 대구경북민주언론시민협의회 사무처장. 전 대구일보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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