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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를 바꾸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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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철 칼럼] "철옹성 같은 지역경제 프레임과 새로운 전략의 부재"


선거철임에는 틀림없나보다. 벌써 온갖 말과 레토릭이 저자거리에 난무하고 있다. 그 가운데 단연 눈에 뛰는 압권은 ‘대구를 바꾸자’라는 구호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이 말에 기대어 선거 운동을 하고 있다. TK 기득권 세력을 등에 업고 있든 혹은 그것을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하든, 선거판에 뛰어든 사람이면 누구나 대구를 바꾸어야 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명함을 돌리고 있다.    

대구를 바꾸자는 구호가 본격적인 선거철에 접어들면서 바야흐로 개나 소조차도 입에 올리는 상투어로 전락하고 있지만, 그 의미의 절절함을 반추해보면 그건 그렇게 만만한 말이 아니다. 이 지역에서 견뎌 살아 온, 그야말로 수많은 야심찬 정치인과 헌신적인 공무원, 그리고 뜨거운 가슴을 지닌 지식인들이 그 말로 말미암아 좌절하고, 배신당하고, 또한 눈물을 쏟았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한에 있어서는. 

지금껏 대구를 바꾸자는 구호는 선거철 마다 다양한 변주를 거치면서 반복되어 왔고, 그것을 현실적으로 실천하기 위한 로드맵이 무시로 만들어지고 폐기되어 왔지만, 실상은 그 모든 전략은 크게 볼 경우 두 가지 범주로 정리될 수 있다.  

첫 번째는 지역 정치를 개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한나라당 일당 독점의 정치판 때문에 대구가 유력한 정치인을 배출하지 못하여 지역의 목소리를 중앙 정치에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성에서 출발하고 있다. 이에 대해 여당의 경우 참신한 젊은 피를 뽑아 중앙 정치 무대에 보내어 든든한 지역의 일꾼으로 만드는 것을 전략으로 내세우고 있고, 야당의 경우 다양한 정치 세력을 지역에 뿌리내리게 하여 지역 이해를 대변하는 데 있어 정치적 교섭력을 키우게 되면 대구 발전의 교두보가 마련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두 번째는 지역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것이다. 빠른 속도로 활기를 잃어가고 있는 경제를 그대로 두게 되면 대구는 망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변화에 대한 욕구를 추동하고 있다.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한 전략의 중심에는 외부의 자원을 역내로 최대한 끌어들이는 대책이 자리 잡고 있다. 이를 위해 지방 경제계는 합심하여 중앙 정부에 메가(mega) 프로젝트를 제안하여 천문학적인 액수의 정부 예산을 따내려고 목숨을 걸고 있고, 한편으로는 민간 기업의 투자를 역내로 유치하기 위하여 온갖 당근을 준비하여 기업인을 설득하는 데 진력을 다하고 있다. 

언뜻 보면 이 두 가지 범주는 매우 다른 종류로 여겨진다. 하나는 정치적인 기획이고, 다른 하나는 경제 정책이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선거판에서는 실제로 이 두 가지는 미묘하게 상호 연결되면서 작동하고 있다. 우선 TK 주류 세력은 두 번째 범주, 즉 경제적 영역에서의 대구 바꾸기 전략의 적실성을 강조하고, 이를 중심에 놓고 첫 번째 범주의 정치적 전략을 설정한다. 이렇게 되면 대구를 바꾸자는 정치적 전략의 핵심은 이 지역의 정치권이 중앙 정부에 대해서 최고의 정치적 발언권을 획득하는 것이고 그 최종 목표는 이 지역 출신을 앞세워 정권을 잡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TK 비주류 세력은 항상 그래왔듯이 이번 선거판에서도 첫 번째 범주의 정치적 변화의 당위성을 강조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정치를 바꾸면 대구 경제도 잘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전파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은 두 번째 범주의 경제적 영역에서 대구 바꾸기의 전략에 대해서 입을 다물거나 모호하게 한 발 뒤로 물러나 있다. 이들은 TK 주류 세력이 그동안 산업화 과정에서 선택해 온 두 번째 범주의 전략의 유효성을 인정하는지, 혹은 그러한 전략이 실패하였다고 과감하게 선언해야 하는지 어떠한 선택도 하지 않고 있다.

나는 TK 비주류 세력이 선거 때만 되면 나타나 새로운 정치 세력의 등장의 당위성에 대해 목청을 높여왔지만, 그것이 예외 없이 실패하였고, 그 실패의 경험이 긍정적인 정치적 자산으로 축적되지 못한 이유는 두 번째 범주의 대구 바꾸기 전략의 부재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TK 주류 세력이 만들어 놓은 지역 경제 정책의 ‘프레임’에 갇혀 있는 한 TK 비주류 세력에 의한 정치적 변혁을 통한 대구 바꾸기의 실험은 영원히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은 가히 숙명적이다. TK 주류 세력이 철옹성처럼 쌓아 놓은 기존의 지역 경제 정책의 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 ‘대구 바꾸기’의 구호는 한갓 통속적 레토릭으로 전락해버리고 만다.  

얼마 전 김정일 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대하여 북한 주민이 땅이 꺼지는 듯 한 슬픔으로 땅에 쓰러져 울부짖는 광경을 기억하면서, 북한의 가난과 영도자의 죽음과 주민의 슬픔 사이의 그 아득한 간극에 대해서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아직도 잘 이해하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통계 발표 이후 최저 수준을 한 번도 벗어나지 못한 대구 경제 지표, 실패를 거듭함에도 불구하고 바뀌지 않는 지역 경제 정책의 프레임, 그리고 주민의 흔들리지 않는 TK 주류 세력에 대한 정치적 지지 사이의 기묘한 간극을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

나는 바로 이 ‘기묘한 간극’에 대한 성찰과 극복이 대구를 바꾸자는 논의의 핵심 과제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런 점에서 이번 선거판의 쟁점은 앞에서 언급한 두 번째 범주의 지역 경제 정책의 프레임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명백한 사실이다. 새로운 인물에 관한 논의와 정치적 세력 교체는 오히려 부차적이다.  

지역 경제 정책의 프레임에 관한 지역 사회의 건설적인 논의를 위해 간략하나마 키워드 중심으로 정리하자면, 기존의 지역 경제 정책의 프레임은 산업정책 중심, 외부자원 동원 방식, 토건주의에 입각한 산업입지 확보 전략, TK 기득권 세력 보호가 그 기본 틀을 이루고 있다. 이에 반해, 새로운 경제 프레임은 인적자원 중심, 공동체 중심의 내발적 발전 방식, 생태주의에 입각한 지식 기반 사회 구축, 청년 기업가 양성 등이 그 핵심 내용으로 구성되어야 할 것이다. 이 두 개의 경제 프레임을 두고 지역 사회가 이번 선거 과정에서 치열한 전면적인 전쟁을 벌일 때 대구는 이 땅에서 오랫동안 살아갈 지역의 보통 사람이 원하는 방식으로 비로소 바뀔 수 있을 것이다.  





[김영철 칼럼] 28
김영철 / 계명대 경제금융학과 교수.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kimyc@km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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