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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30대 반란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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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철 칼럼] "97년 체제의 유복자, 고향 떠나는 젊은이들의 희망은?"


지난 주 서울 시장 선거에서 가장 주목할 포인트는 뭐니 뭐니 해도 30대의 반란이다. 30대의 76%가 박원순 시장을 찍은 것으로 나타났다. 몰표다. 분명한 것은, 우리 사회가 그 몰표의 의미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는 사실이다. 그들의 분노에 대해서 우리사회가 겸허하게 가슴으로 받아들이고 실질적인 해결방안을 내놓아야 하는 것은 거역할 수 없는 시대적 과제가 되고 있다.
 
한 때 우리 사회에서는 386세대가 제기한 문제의식을 주목한 바 있었다. 386세대는 87년 체제의 아이들이다. 민주화 시대를 온 몸으로 이끈 세대이다. 이번 서울 시장 선거 과정에서 전면에 드러난 30대 반란의 주역은 이전의 386세대와는 다른 몸짓과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97년 체제의 유복자이다. 386세대는 민주화의 성취라는 성공을 맛보았지만, 97년체제의 유복자는 태생부터 버림받았다. IMF 위기를 거치면서 그들의 부모는 직장으로부터 쫓겨났고, 그들 자신은 어렵게 대학을 졸업하고도 곧장 비정규직으로 내몰리는 슬픔을 속으로 삭였다. 결혼을 하여도 집을 장만하는 희망을 가지기 힘들고 아이를 낳아도 제대로 키우는 것이 벅차다. 그들 가운데 상당수는 결혼도 망설이고 있다.   

<경향신문> 2011년 10월 28일자 2면(종합)
<경향신문> 2011년 10월 28일자 2면(종합)

지금 우리 사회의 30대가 욕망하는 것은 일상적 생활이다. 그들에게는 이념도 중요하지 않고 민주주의도 딴 나라 이야기이다. 그들에게는 이 땅에서 괜찮은 일자리를 찾아서, 결혼하고, 새근새근 잠자는 아이의 미소를 바라보는 것이 당장의 꿈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이러한 지극히 소박한 꿈을 배신하고 있다. IMF 위기 이후 극단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의 회오리 속에서 영문도 모르고 내몰리다가 어느덧 30대가 되어버린 그들은 이번 선거에서 조용히 종이 돌멩이를 들었다. 짱돌처럼 과격하지 않고 폭력적이지 않지만 그들은 단호하게 우리사회에 요구하고 있다. 바꾸자!

우리 사회의 바깥에도 젊은 세대가 반란의 대오를 형성하고 있다. 소수만을 위한 특권적 리그로 전락한 탐욕적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에 대해서 변화와 개혁의 요구는 이제 전 세계 젊은 세대의 화두가 되고 있다. 세계 어디에서나 젊은 세대들의 좌절된 욕망이 분출구를 찾아 꿈틀거리고 있다. 지난 서울 시장 선거에서 나타난 30대의 반란은 이러한 전지구적 흐름에 공명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좌절한 세대의 목소리를 새로운 경제 및 정치적 질서의 여명을 알리는 역사적 징후로 파악하지 않고, 단순히 세대 간의 갈등이라고 치부하면서 다음 선거를 대비한 표 계산이나 하고 있는 정치인을 보게 되면 부아가 치민다. 

그런데 혹시 이런 생각을 해 보셨는지? 서울 시장 선거에 참여한 30대 가운데 대구경북 출신도 많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라는 사실. 자기가 태어난 땅에서 안착하지 못하고 서울로 직장을 찾아 혹은 희망을 쫓아 떠나간 대구경북의 젊은이들이 서울 시장 선거의 30대 반란에 동참하고 있을 가능성은 쉽게 짐작하고도 남는다. 대구경북의 2-30대 청년들이 언제부터인가 기회만 생기면 지역을 떠나버리는 것이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들 가운데 일부가 이번 서울 시장 선거 과정에서 분노의 행렬에 참여하고 있지만, 순서로 따지면 그들은 자신들이 태어난 이 땅에서 그들의 미래를 걸 희망을 발견하지 못하고 1차적으로 이탈을 감행한 청년이라는 현실.

나는 서울의 30대의 반란이 부럽다. 자기가 발을 딛고 선 땅 위에서 반란하는 자의 가슴은, 그곳을 등지고 떠나는 자의 가슴보다는 뜨거울진저. 젊은이의 분노야말로 세상을 바꾸는 힘이다. 때로는 젊은 세대의 좌절과 분노가 역설적으로 희망을 잉태한다. 그러나 대구경북의 젊은이들은 자신이 태어난 땅에서 뜨거운 가슴으로 분노하기보다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땅과 냉정한 이별을 하고 안녕을 고하는데 익숙하다. 시련에 직면하여 젊은 세대가 자기가 서 있는 자리에서 반란을 도모하는 대신, 절망하고 돌아서서 떠나는 곳에서 희망의 노래를 기대하기는 힘든 법이다.   

최근 일각에서 ‘체인지 대구’의 움직임이 나타나 내심 희망을 걸어본다. 그러나 그들의 목소리에 30대가 생활 속에서 경험한 분노와 그에 따른 결기가 느껴지지 않아 공허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정작 불안한 것은 정치적 셈법에 익숙한 사람들이 대구경북이 직면하고 있는 30대의 이별과 부재에 대해서 속으로 쾌재를 부르는 모습을 상상하는 일이다. 이들이야말로 지역의 젊은이들을 외지로 내모는 음모의 배후 인물이다. 이들은 겉으로는 생활정치를 내세우지만 젊은 세대의 욕망을 진영 논리로 재단하여 그들의 외침을 외면하고 무시한다. 대구경북에 젊은이를 안착시키는 일이야말로 지역이 해결해야 할 가장 시급한 과제라는 사실이 더욱 명백해지고 있다.





[김영철 칼럼 27]
김영철 / 계명대 경제금융학과 교수.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kimyc@km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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