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내기 기자의 '대구' 총선 민심 취재기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입력 2012.04.13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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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현장에서 만난 400여명..."힘들다, 잘 살고 싶다"


2012년 19대 총선이 끝났다. 지난 3월 22일 후보자 등록과 함께 본격적인 선거 레이스가 시작됐다. 투표 당일인 4월 11일까지 22일 동안 모든 언론이 총선에 귀를 기울였다. 각 정당의 '공천 잡음'과 쏟아지는 '공약', '민간인불법사찰'과 '막말' 파문. 하루가 다르게 이슈가 바뀌고 논쟁거리가 생겼다. 거물정치인과 유명 인사들의 대구 방문, 후보자들의 선거운동도 뉴스를 달궜다. 그러나 대구 '민심'의 향방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새내기 기자로 처음 총선을 취재하게 됐다. 화두는 '민심'이였다. 처음에는 쉽게 생각했다. 기자라고 밝히면 누구나 쉽게 내 질문에 대답을 해줄 것이라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의외로 정치에 대해 의견을 밝히는 것을 꺼려했다. 그래서 내 이야기를 먼저 했다. 그제야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신평리시장 상인들이 모여 4.11 총선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2012.4.10)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신평리시장 상인들이 모여 4.11 총선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2012.4.10)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총선민심르포'

평화뉴스는 '총선민심르포'를 통해 대구 민심을 들어보기로 했다. 3월 20일부터 4월 10일까지 22일간 대구 12개 선거구의 재래시장과 아파트촌, 상가, 길거리, 지하철역에서 유권자들을 만났다. '투표 여부'와 '지지하는 정당', '지지하는 후보', '이유', '이명박 정권의 4년', '대구 정치'에 대해 물었다.

이 가운데 중.남구와 달서구 갑은 이제상 편집위원, 달성군은 이은정 객원기자가 다녀왔다. 나는 나머지 9곳, 수성구 갑, 수성구 을, 북구 을, 동구 갑, 동구 을, 북구 갑, 달서구 을, 달서구 병, 서구에서 취재를 했다. 각 선거구에서 사는 동네와 나이, 이름, 성씨를 확인한 것만 50여명이다. 모두 합하면 400여명이 조금 넘는 숫자의 시민들을 만났다.

처음 르포는 수성구 갑 선거구에서 시작했다. 시민들은 정치얘기를 하는 것도, 듣는 것도 반가워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이름과 나이, 성까지 물어보니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그래서 작전을 바꿨다. 날씨, 물가 얘기부터 시작하기로. 그때부터 취재에 속도가 붙었다.

점심 시간, 범어시장에 있는 한 식당을 찾은 시민들(2012.3.20)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점심 시간, 범어시장에 있는 한 식당을 찾은 시민들(2012.3.20)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다사다난(多事多難)...추격전, 사진 부탁, 꼼수


20여일 동안 대구 곳곳을 누비며 많은 곳에서 다양한 경험을 했다. 마지막 서구 민심을 취재했을 때는 길을 잃어 4개동을 가로질러 걷기도 했고, 선거벽보를 찾느라 같은 동네를 반복해서 돌기도 했다. 또, "그런 걸 왜 묻고 다니냐"며 카메라를 뺏으려는 사람이 있었는가 하면, 자전거로 목적지까지 태워다준 고마운 사람도 있었다. 총선 얘기는 하지도 못하고 사는 이야기만 주고받다 헤어진 이도 있었다. 

한 번은 지하철역에서 만난 30대 여성의 의견을 듣기 위해 감삼역부터 두류역까지 '추격전'을 벌이기도 했다. 보통 투표를 할 수 있는 연령 가운데 한 연령대에 평균 5명을 목표로 삼고 취재를 간다. 그러나 20-30대는 쫓아가서 팔을 붙잡고 얘기를 해달라고 늘어져야 할 만큼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그래서 그 여성에게 "왜 그렇게 도망을 가냐"고 물으니 "화장을 안해 사진이 이상하게 나올까봐"라고 답해 허탈하게 하기도 했다. 바쁜 발걸음을 붙잡아 방해가 된 건 아닌지 죄송스러웠다.

손님을 기다리는 동안 4.11 총선에 대해 얘기하는 택시기사들(2012.3.26 큰고개역)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손님을 기다리는 동안 4.11 총선에 대해 얘기하는 택시기사들(2012.3.26 큰고개역)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또, 취재도중 표밭을 다지던 후보자를 만나기도 했다. 그들은 대체로 시장이나 길거리에서 유권자들에게 악수를 청하며 명함을 돌린다. 그 가운데 일부는 "사진을 찍어주면 안되냐"고 부탁을 하며 포즈를 취하기도 했다. 차마 앞에서 거절하지 못했지만 속으로 투덜거렸다.

선거 막바지로 접어들었을 때, 힘이 부치기 시작했다. 걸어 다니며 50명을 붙잡고 정치 얘기를 한다는 게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그래서 가끔 동네 슈퍼 평상에 앉아 주민을 기다렸다 취재를 하는 꼼수(?)를 부리기도 했다.

중리동 일대에서 막바지 선거운동을 하고 있는 한 후보와 선거운동원들(2012.4.10)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중리동 일대에서 막바지 선거운동을 하고 있는 한 후보와 선거운동원들(2012.4.10)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대구 '보수성'..."하루아침에 바뀌는게 어디 쉽냐"

후보들이 자주 찾는 재래시장과 발길이 뜸한 골목 구석구석까지, 대부분의 대구 시민들은 "아직은 박정희, 박근혜, 새누리"라며 보수정당에 대한 지지를 나타냈다. 그러나 하나같이 "어렵다, 힘들다, 밉다"며 '투표'에 나타나지 않는 '속마음'을 드러냈다. 특히, 20-40대는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동참해 새누리당을 지지하던 50대 이상 유권자들과는 상반된 모습을 나타냈다. 20대는 대학생, 30대는 자녀를 키우며 맞벌이를 하는 부부, 40대는 택시운전사, 노점상인, 일용직에 종사하는 이들을 중심으로 대구의 '보수성'이 "답답하다"며 "이제는 좀 변해야 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 "누구를 찍으면 좋을까"라고 물어보던 김금분(77.내당동)씨.
- "공직에서 물러나 이제 정치인 욕을 맘껏 할 수 있다"던 전직 경찰 간부 김모(71.범어동)씨.
- "장사도 안되는데 때마다 와서 민심이니 뭐니 묻기만 한다"던 전미순(49.신평리)씨.
- "밥은 먹고 다니냐"며 쑥떡을 입에 넣어주던 나모(50.신평리)씨.
- "그것들이 흙이나 만져 봤을라고, 서민을 어떻게 이해하겠냐"며 막걸리를 한잔 마시고 정치인 욕을 하던 공사장 인부 이형규(52.상인동)씨.

모두 다른 삶을 살고 있었지만 정치권을 향한 염원은 같았다. "좀 잘살게 해달라"는 것이다. 이들은 대구의 '보수성'을 비판하는 여론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했으나 "하루아침에 바뀌는 게 어디 쉽냐"며 "유권자들만 탓하지 말고 야권이 좀 더 노력해야 한다"고 꾸짖기도 했다.

19대 총선 대구 '수성구 갑' 개표장...7시 풍경(2012.4.11.경북고등학교)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19대 총선 대구 '수성구 갑' 개표장...7시 풍경(2012.4.11.경북고등학교)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대구 최대 격전지 '수성구 갑'...자정까지 개표

그리고 4.11 총선 당일, 아침부터 비가 내려 전국적으로 투표율이 저조했다. 18대 총선 46.1%보다 낮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그러나 오전 11시부터 비가 그치면서 18대 총선의 같은 시간 투표율을 넘겼다.

오후 6시 모든 투표가 끝나고 6시 30분부터 개표가 진행됐다. 접전이 예상됐던 신정치 1번지 '수성구 갑' 개표장 경북고등학교로 달려갔다. 이 선거구는 '4선'에 도전하는 새누리당 이한구(66)의원에 맞서 경기도 군포에서 '3선'을 지낸 민주통합당 김부겸(54)후보가 맞불을 놓아 전국적인 관심을 모았다. 진보신당 이연재(49), 무소속 김경동(52), 무소속 정재웅(52) 후보도 표밭을 누볐다.

'제1 투표지분류기 운영부'...선관위 직원과 개표사무원이 투표지를 다시 확인하는 모습(2012.4.1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제1 투표지분류기 운영부'...선관위 직원과 개표사무원이 투표지를 다시 확인하는 모습(2012.4.1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첫 투표함이 열리고 개표사무원들이 분주하게 표를 정리했다. 개함부에서 3분의 1정도 투표함이 열리자 개표된 표들은 투표지분류기 운영부로 이동됐다. 곧 각 정당 후보 캠프의 참관인들과 선관위 직원들이 첫 투표지분류기로 몰려들었다. 각자 휴대전화와 수첩을 들고 후보자 사무실에 개표 상황을 전했다. 이외에도 많은 언론사와 선관위 관계자들이 '수성구 갑'에 귀를 기울였다.

7시 15분, 첫 투표함 윤곽이 드러났다. 범어 4동 제 3투표소에서는 이한구 후보가 960표, 김부겸 후보가 589표, 이연재 후보가 48표, 김경동 42표, 무소속 정재웅 후보가 14표를 기록했다. 첫 개표결과는 이한구 후보의 승리로 끝났다. 이어 범어 2동 제 4투표소 투표함이 열렸다. 범어 4동과는 달리 이한구 후보와 김부겸 후보가 100표 차로 박빙을 벌였다. 결과는 834표를 얻은 이한구 후보가 738표를 얻은 김부겸 후보를 앞질렀다. 이후에도 계속 엎치락뒤치락하며 이한구, 김부겸 후보의 양강구도로 개표가 진행됐다.

그러나 새누리당 참관인들과 민주통합당 참관인들의 표정은 미묘하게 엇갈렸다. 새누리당 참관인들은 "이대로 승부가 계속될 것"이라고 했고, 민주통합당 참관인들은 "아직 야권성향이 강한 신매, 고산, 황금동을 열어봐야 안다"고 했다.

8시가 되자 10% 정도 개표가 진행됐다. 이한구 후보가 1500표차로 김부겸 후보를 앞지르며 접전을 벌였다. 반면 진보신당 이연재, 무소속 김경동, 정재웅 후보 측 참관인들은 암담한 표정으로 자리를 비우기 시작했다.

시간이 흘러 9시 20분, 51개 투표소 가운데 18개 투표소 결과가 나왔다. 이한구 후보가 5193표차로 김부겸 후보에 앞섰다. 이한구 후보측 참관인들은 "더 볼 것도 없다"며 "이대로 당선이 확실하다"고 했다. 이어 10시까지 28개 투표소 결과도 접전 끝에 이한구 후보가 김부겸 후보를 앞지르며 판세를 이어갔다.

오후 8시께...민주통합당, 새누리당 측 참관인들이 초조해하며 개표상황을 지켜보고 있다(2012.4.1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오후 8시께...민주통합당, 새누리당 측 참관인들이 초조해하며 개표상황을 지켜보고 있다(2012.4.1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자정이 다가올수록 민주통합당 참관인들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76%의 개표결과가 나올 때까지 김부겸 후보가 우위를 점한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한구 후보와 김부겸 후보의 표차는 1만468표까지 벌어졌다. 민주통합당 김부겸 후보의 사무장은 "선전을 하고 있지만 결과가 생각보다 좋지 않다"며 "밖에서 얘기할 때는 이길 줄 알았다"고 말했다. 반면 이 후보측은 "이제는 끝났다"며 "'4선'에 성공했다"고 단언했다.

11시 50분, 고산 3동 1투표소의 마지막 개표가 시작됐다. 이곳에서도 이한구 후보가 1204표를 얻어 921표를 얻은 김부겸 후보를 따돌렸다. 수성구 갑 51개 투표소 가운데 3개 투표소에서만 김부겸 후보가 이한구 후보를 앞질러, 새누리당 이한구 후보의 당선이 확정됐다. 19만8232명의 선거인수 가운데 11만4813명이 투표에 참여했고, 이한구 후보가 52.77%, 김부겸 후보가 40.42%, 이연재 후보가 3.34%, 김경동 후보가 2.28%, 정재웅 후보가 1.17%의 표를 가져갔다.

새누리당 참관인들은 "막판에 3곳에서 져서 불안했다"며 "그래도 야당이 이정도 나온게 얼마만이냐"고 했다. 또, "김부겸 후보가 이 정도면 아주 선방을 한 것"이라며 "무서울 정도였다"고 했다. 그러나 민주통합당 참관인들은 "석패, 선전을 하러 온게 아니라 이기러 온 것이었는데..."라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결국 '수성구 갑'에는 '변화의 바람'이 불지 않았다.

오전 9시, '수성구 갑' 선거구 만촌 3동 주민센터에서 투표를 하는 유권자(2012.4.1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오전 9시, '수성구 갑' 선거구 만촌 3동 주민센터에서 투표를 하는 유권자(2012.4.1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삶의 터전의 '민심'"

대구 12석, 경북 15석 모두 27석을 새누리당 후보가 차지했다. 언론과 정치권은 대구.경북의 '보수성'에 대해 해석하거나 비판했다. 그러나 '투표' 결과에도 나타나지 않는, 삶의 터전의 '민심'을 알아보려 했는지 묻고 싶다. 늦은 밤 버스 안, 비오는 날 뒷골목, 흙먼지 날리는 공사장. 정치인들의 발길이 뜸한 곳에도 민심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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