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 페티시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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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홍철 칼럼]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이 불쾌한 까닭


또다시 불거진 독도 문제

광복절을 며칠 앞두고 이명박 대통령이 갑작스레 독도를 다녀온 뒤로, 나라 안팎이 또 한 번 독도 문제로 시끄럽다. 일본 정부는 이 일을 빌미로 독도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겠다고 공포했다. 야당 등 정치권에서는 이 대통령의 그간의 독도 관련 발언과 대일 외교 행보 등을 보았을 때 그 진정성을 믿기 어렵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한마디로 국면전환용의 ‘정치적 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특히 공연히 독도를 분쟁지역화하는 데 일조했다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예전에 독도 문제 관련해 일본 정부에다가 ‘지금은 곤란하다, 기다려 달라’고 하더니 이제 바야흐로 그 때가 되었나 보다”는 쓴소리까지 나돌고 있다. ‘실효적 지배’가 유지되고 있는 독도를 국제적인 분쟁지역으로 ‘공식화’하는 것이 ‘국익’에 도움 될 것 없다는 시민들의 상식에서 비롯된 비판 여론일 것이다.

어쨌거나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한국의 권력자든 일본 정부의 권력자든, 걸핏하면 독도를 정치적으로 활용하기 좋아하는 것은, 이 작은 섬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 때문일 것이다. 물론 단순한 상징의 차원을 넘어, 국토와 자원의 범위, 나아가 역사해석이라는 더욱 복잡하고 또 실제적인 의미와 맥락이 독도에 얽혀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일종의 ‘페티시즘(물신숭배)’에 양국 정부와 국민들이 독도를 ‘동원’하고 있다는 서글픈 측면도 분명히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4대강 살리기' 대통령의 '국토수호' 의지?

나는 다른 무엇보다도 이명박 대통령이 ‘한국령’이라고 새겨진 독도의 바위를 손으로 어루만지는 장면을 뉴스에서 보고, 솔직히 불쾌감과 함께 불길한 기분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그 장면은 대한민국의 국가원수가 ‘영토’를 수호할 의지를 분명히 가지고 있고 또 그렇게 할 정치적·외교적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신뢰감을 주기보다는, 온 산하를 거대자본의 이익을 뽑아내기 위한 ‘개발대상’으로 삼아버리는 탐욕스런 ‘마이더스의 손’이 드디어 이 작은 바위섬까지도 ‘이익’이 된다면 어떻게든 개발하거나 처분하겠다는 선언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동아일보> 2012년 8월 11일자 3면(정치)
<동아일보> 2012년 8월 11일자 3면(정치)

4대강 토건개발사업으로 온 나라의 강이 녹조를 뒤집어쓰고 죽어 가는 것을 보면서, 그것을 ‘4대강 살리기’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우악스럽게 밀어붙여 온 정부와 그 대통령이 말하는 ‘국토수호’가 과연 앞으로 어떤 참담한 드라마를 만들어갈지 조금만 진지하게 생각해 본다면, 이런 불길하고 불쾌한 기분이 전혀 근거 없는 것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일례로 전략기동부대인 해병대가 9월 초 독도 상륙훈련을 실시할 것이라는 기사가 광복절 아침 주요 일간지 1면에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이번 훈련에는 해병대 외에도 3200톤급 한국형 구축함과 호위함, 잠수함, P-3C 해상초계기, 해경 경비함과 공군 F-15K 전투기 등이 참여할 예정이란다. 그뿐이 아니다. 방위산업청은 때를 맞춰 “일본에 비해 열세인 해군력을 대폭 증강해야 한다”는 연구용역 결과를 지난 주말 국회 예결위에 중간보고했다고 한다. 그 보고서는 현재 3척인 이지스함(7700톤급)을 8척으로 늘리고 해상작전 헬기 25대도 갖춰야 한다고 제안했다.

4대강 토건개발사업에 이어 동해안 원자력 클러스터를 포함한 ‘원자력 르네상스’ 사업 등 향후 수년 동안 거대자본들에게 어마어마한 돈다발을 확실히 떠안겨다 줄 토건사업들을 임기 내에 돌이킬 수 없는 수준으로 못박아 두려는 수순을 착착 진행하고 있는 것도 모자라, 이제 독도를 중심으로 한 안보 위기를 의도적으로 조성하여 이를 빌미로 군비를 확장하고 또 그것을 통해 기득권 세력의 이권을 제대로 챙겨 두겠다는 ‘비즈니스 마인드’가 아니고서야 대통령의 이러한 행보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뿐만이 아니다. 일본 정부는 이번 일을 제로성장 국면과 후쿠시마 사고 이후 사실상 무너져 가는 국가권력을 재건할 절호의 기회로 삼으려 들 것이다. 중국과의 영토분쟁과 아울러 이명박 대통령이 참으로 고맙게도 불을 지펴준 독도 분쟁화는 자위대의 군비 확장과 위상 제고에 더없는 호기로 작용할 것이다. 일본이든 한국이든, 자본과 국가권력의 입장에서 자신들의 기득권과 체제 유지를 위해서는 동아시아의 평화쯤 언제든 제물로 삼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지나간 역사를 통해 잘 알고 있다. 이들에게 안보 위기와 전쟁은 언제나 ‘비즈니스’의 연장에 불과한 것이다. (국가와 국가, 군대와 군대의 무력충돌만이 아니라, 풀뿌리 민중과 자연에 대한 일상적 폭력과 전쟁 역시 마찬가지다.)   

'국토'인가 '자연'인가     

그러나 내가 지금 말하고 싶은 서글픈 ‘독도 페티시즘’은 이명박 대통령이나 정부의 행태와 관련된 것만은 아니다. 한국의 일반 국민들은 독도 문제가 불거지면 반일감정과 함께 갑자기 ‘국토’에 대한 ‘사랑’에 대부분 마음이 뜨거워지는 듯하다. 그러한 감정과 분위기를 이해 못할 것도 없고 탓할 까닭도 없다. 아니 ‘과거사’를 생각한다면 그러한 반응은 지극히 정당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정작 온 나라의 산과 강이 마치 전쟁과도 같은 토건개발사업으로 신음하고 죽어가는 것을 평소에는 전혀 관심도 없이 나 몰라라 하다가, 어째서 독도 얘기만 불거지면 너도 나도 ‘국토수호론자’가 되어 이렇게 흥분하는지, 나는 그것이 서글프고 안타깝다.

낙동강, 영산강, 금강, 한강 등 전국의 강들이 지금 더 이상 흐르지 못하고 댐에 갇혀 썩어가고 있는데, 내성천을 비롯한 전국의 강모래와 습지들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온갖 물고기와 철새들의 보금자리가 불과 몇 개월 사이에 송두리째 사라져 버렸는데, 핵발전소에서 나온 전기를 대구와 수도권으로 끌어가기 위한 고압송전탑 건설에 맞서 밀양과 청도를 비롯한 이웃 고을들의 나이든 농민들이 삼복더위와 뙤약볕 아래에서 참혹한 전쟁을 치르고 있는데, 제주 강정 구럼비바위와 아름다운 바다가 건설업체의 바지선과 중장비, 폭약에 의해 날마다 깨져나가고 더럽혀지고 있는데, 국토 전체를 죽음의 땅으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는 시한폭탄 같은 노후원전 고리1호기가 기어이 수명연장 재가동에 들어갔는데……

다들 에어컨 켜놓고, 맥주에 치킨 다리 뜯으면서 한가하게 올림픽 중계나 보다가, 갑자기 독도 문제가 불거지자 너도나도 ‘국토수호’에 열을 올리는 이런 아이러니한 상황을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독도는 하나의 페티시즘에 불과한 것이다. 이런 식의 관심과 애정은 진정한 ‘국토애’나 ‘영토주권’ 의지와는 거리가 멀다. 

물론 독도는 우리에게 소중한 땅의 일부이다. 그러나 그것은 대한민국의 ‘국토’이기 전에 우리가 앞으로 대대손손 깃들어 살아야 할 ‘자연’의 일부로서 더욱 소중한 것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독도를 사랑하고 존중한다면, 서글픈 페티시즘에서 벗어나 고통받고 신음하는 우리의 산하를 탐욕스런 자본과 권력, 오만하고 부도덕한 토건세력과 팽창주의세력으로부터 지켜내기 위한 ‘민중과 자연의 평화수호’에 먼저 나서야 할 것이다. 그러한 논리와 실천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바다제비와 괭이갈매기, 그리고 파도의 섬인 독도는 언제라도 민중의 평화와 자연에 대한 공격의 희생제물이 되거나, 비참한 군비경쟁과 전쟁의 도화선으로 동원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변홍철 칼럼 15]
변홍철 / <하이하버연구소> 소장, 전《녹색평론》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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