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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홍철 칼럼] 교육문제? 부모들이 먼저 자유롭고 가치있는 삶을 위해 '공부'해야


학교

“선생님, 저 농사일 배우고 싶어요. 농사짓는 선생님 소개 좀 해 주세요.”

지난 4월 말, 수업을 마치고 나서 J가 불쑥 말했다. 나하고 함께 공부하고 있는 ‘청소년 인문학 모임 강냉이’ 학생인 J는 고등학교 2학년 나이의 ‘탈학교 청소년’이다. 2학년이 되자마자 “학교가 너무 답답하고 재미가 없어서” 그만둔 뒤로, 청소년 인권단체 회원으로, 그리고 녹색당 청소년 당원으로 활동하면서, 일주일에 한 번씩 나하고 만나 인문학 공부를 해오던 터였다.

J는 글 쓰는 것을 좋아하고, 그림도 잘 그리고, 무엇보다 자연과 교감하는 ‘생명 감수성’이 뛰어난 친구다. 어릴 적부터 곤충과 나무와 풀을 관찰하며 동네 뒷산을 하루종일 누비고 다니길 좋아했다. 한번은 J가 직접 채집해서 만든 곤충 표본을 들고 와서 나와 다른 친구들에게 보여준 적이 있는데, 곤충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꼼꼼한 솜씨에 모두들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수업 시작 전, 일주일 동안의 생활을 서로 이야기하는 ‘생활나눔’ 시간에도 J는 주로, 지난 주에는 무슨 나무 싹이 새로 나왔고, 무슨 꽃이 피었고, 무슨 곤충들이 활동을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그런 그에게 학교가 얼마나 숨막히는 곳이었을지는 길게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더구나 J는 학생들의 ‘인권’을 존중하지 않는 학교현실에 눈을 뜨고, 그런 현실에 누구보다 마음 아파했다. 그렇다고 ‘왕따’는 아니었다. 오히려 친구들에게 학교현실을 바꾸려면 학생들 스스로 자신의 권리에 눈을 떠야 하고, 적극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호소하고 설득하기 위해 나름대로 애쓰기도 했다.

하지만 J는 결국 학교를 그만두었다. 오직 ‘입시’와 ‘경쟁’을 위해서만 빽빽하게 짜여진 학교라는 틀 속에서 자신의 생명력을 고갈시키기에는 열여덟 살의 ‘자유’가 너무나도 소중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리라.

그런데 학교를 그만둔 것에 그치지 않고 J는 ‘독립’을 꿈꾸면서 ‘집’에서도 나올 생각을 한다. 자신과 같은 처지의 ‘탈학교 청소년’들과 방을 얻어 자취생활(일종의 공동체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걱정스런 마음으로, 그런 생각까지 하게 된 까닭을 조심스레 물어보았더니 “사회 현실과 직접 부딪쳐 보고 싶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도 부모님과는 자주 만나 계속 의논을 하고 있다고 하길래 조금은 안심을 했지만, 여러 모로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열여덟 살의 소년에게 현실이 어찌 녹록하기만 한 것이겠나. 다음은 J가 친구들과 함께 지내는 동안, 수업시간에 쓴 글의 일부이다.

난 학교를 나와서도 충분히 자유롭지 못한 것 같다. 처음엔 학교를 나오면 아주 많은 자유가 주어질 거라 생각했다. 물론 어떤 구속과 억압 하나를 덜어냈고, 학교에 묶여 있을 때에 비해 더 자유롭다. 최근엔 두 명의 친구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는데, 둘 다 나처럼 탈학교 청소년이고 그 둘은 알바를 해 돈을 벌어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나 혼자 놀고 있을 수 없으니, 빨리 일자리를 얻어서 돈을 벌어야 한다. 하지만 알바를 가는 친구들을 보면 마치 내가 학교를 다녔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 든다. 여유시간은 언제나 부족하고, 시키는 대로 일해야 하고, 스스로를 ‘자본의 노예’라고 하면서 짜증내기도 한다. 또 학교같이 답답할 때가 많지만 우리들의 생계와 관련된 상황이라 무턱대고 안 갈 수도 없다고 한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알바를 구하기가 겁이 났다.

그래서 J는 드디어 ‘농사일’을 배워 보기로 결심하고, 나에게 ‘농사짓는 선생님’을 소개해 달라고 한 것이다.

공부

상황이 이렇게까지 되니, J의 어머니와 의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연락을 드리고 J의 생각을 전했다. J의 어머니는, 내가 J를 비롯한 학생들과 ‘청소년 인문학 모임’을 시작한 초기부터, 여기서 공부하는 다른 학생들의 어머니 몇 분과 함께 ‘독서모임’을 따로 만들어, 매주 한 번씩 인문학 공부를 해 오신 분이다. (놀랍게도 그 모임은 지난 1년 동안 단 한 주도 쉬지 않고 이어져 왔다.)

전직 교사인 J 어머니의 반응은 오히려 아주 담담했다. “J의 뜻이 그렇다면 선생님께서 좀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아들이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도, 친구들과 ‘독립생활’을 해보겠다고 했을 때도, ‘아들의 뜻’을 존중해 준 어머니였다. 어찌 걱정스럽지 않고 불안하지 않겠나. 무엇보다 아들이 “아직은 한창 공부할 나이인데, 너무 세상을 좁게만 보게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없지는 않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면서도 “아들의 인생을 억지로 어른들 판단과 틀 속에 가둘 수는 없다”는 소신을 가지고 계셨다.

며칠 뒤 조금 더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에서 J의 어머니는 “그동안 다른 어머니들과 함께 꾸준히 책을 읽고 이야기 나누면서, ‘공부’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 자신을 많이 내려놓게 되었다. 한참 뒤에나 J를 보살펴 주는 일에서 벗어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그 시간이 빨리 다가온 것 같아 좀 당혹스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자유로운 마음도 든다. 이제 나도 내 자신의 인생을 좀더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는 취지의 얘기를 들려주셨다.

지금 대부분의 부모들이 자식들 ‘교육문제’를 근심하면서, 사실은 자신들의 ‘불안’과 ‘욕망’을 자식들에게 그대로 ‘투사’하고 있는 데 견주어, 이런 J 어머니의 태도는 얼마나 자유롭고 의연한 것인가. 우리가 지금 눈만 뜨면 입에 달고 사는 ‘교육문제’의 근본 해법은 결국 자식들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어른들 스스로 좀더 자유롭고 가치있는 삶을 살기 위해 이웃(다른 부모들)과 함께 공부하고 토론하는 데서 그 실마리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스승

아무튼 J와 어머니의 뜻을 확인한 다음에, 나는 영덕 산골에 귀농하여 10년 넘게 농사를 지으며 작은 규모로 벌을 치는 친구에게 J의 일을 상의했다. 고맙게도 온 가족이 환영해 주었다. 비록 작지만 방을 한 칸 내주고 밥은 먹여 줄 테니, 와서 농사일과 벌치는 일을 조금씩 거들면서 시골생활을 마음껏 경험해 보라는 것이었다. 누구보다 훌륭한 선생님이 되어줄 거라고 믿는 친구이기에 든든했다. 처음부터 너무 무리한 계획은 세우지 말고, 우선 한두 달 지내 본 다음 이후 계획을 다시 의논하자고 J에게 제안했더니 좋다고 했다. 며칠 뒤, 혼자 영덕에 가서 선생님을 만나 잘 부탁드린다는 인사도 하고 왔단다.

지난 주 수업에 나온 J는 한동안 만나지 못할 친구들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나는 J에게 ‘하이하버연구소’의 ‘연구원’ 자격을 주고(드디어 ‘연구원’까지 생겼다!), 학교를 그만둔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앞으로 영덕 산골마을에서 일하면서 보고 듣고 겪을 일들을 꼼꼼히 기록하는 것을 ‘연구과제’로 내주었다. 모두들 농촌으로 ‘유학’을 떠나는 J를 부러워하며 배웅했다.

“여기, 아카시아꽃이 한창이라 벌들이 부지런히 일하고 있어요. 그 벌들 보살피고 관찰하는 게 아주 재밌어요. 모판에 모도 잘 자라고 있고요. 이 집 아이들하고 놀아주는 것도 제 일인데, 네 살짜리 둘째는 낯을 좀 가려서 아직은 좀 덜 친해졌어요.”

한 주 동안 밥도 잘 먹고, 아침 일찍부터 일하고 움직이느라 잠도 달게 잘 잔다는 J의 목소리는 여느 때보다 훨씬 밝았다. 오늘 저녁에는 영덕(영덕은 삼척과 함께 작년 말 ‘신규원전부지’로 선정되었다)에서 열리는 ‘동해안 탈핵연대’ 대책회의에, 선생님과 함께 가 볼 거라고 했다. 전화기 너머에서 주왕산 자락 아카시아꽃 향기가 얼핏 코끝을 스치는 것 같기도 했다.

인도 출신의 생태철학자이자 교육자인 사티쉬 쿠마르는 <心性敎育과 작은학교>에서 이렇게 쓴 적이 있다.

꿀벌은 얼마나 좋은 스승입니까? 꿀벌은 꽃에서 꽃으로, 한 꽃에서 꽃 꿀을 조금씩만 따면서 날아다닙니다. 어떤 꽃도 “꿀벌이 와서 내 꿀을 가져가버렸어” 하고 불평한 일이 없습니다. 꿀벌은 꽃에 해를 끼친 일이 없고 꽃과 꿀벌 사이에는 완전한 비폭력적인 관계, 해를 끼치지 않는 관계가 이루어져 있습니다. … 인간사회가 땅에서 무엇을 캐어내거나 얻어내려고 할 때 우리는 계속해서 빼앗고 빼앗고 해서 결국 그것은 소진되고 고갈되고 그 자원이 끝장이 날 때까지 갑니다. 우리는 꿀벌에게서 조금만 얻어오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만, 그 이상은 아니고요. … 공기가 오염되어 있고 물이 오염되었고 흙이 오염되었습니다. 우리는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자연은 우리의 스승입니다. 꿀벌은 우리의 스승입니다. 우리는 조금만 취하고 그것을 변화시키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취하든 간에 변화시키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그것을 (자연을 오염시키는 것들로 변화시키지 말고) 꿀처럼 신성하고 맛있고 달콤한 것으로 변화시키세요.






[변홍철 칼럼 13]
변홍철 / <하이하버연구소> 소장, 전《녹색평론》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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