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발전소에 포위된 대구, 어떻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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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홍철 칼럼] "영덕.삼척 신규 핵발전소 부지 선정, 정부와 핵산업계의 역주행 막아야"


암울한 일본의 상황

앞으로 60여일 후면, 후쿠시마 핵발전소 대참사가 일어난 지도 1년이 된다. 그러나 해가 바뀌었음에도 일본의 상황은 암울하기 짝이 없다. 바로 며칠 전인 1월 5일자 보도에 따르면, 새해 첫날인 1월 1일 일본에 또다시 규모 7.0의 지진이 발생했고, 후쿠시마 일대에도 빈발 여진의 강도가 더 세지면 핵발전소 4호기가 심각한 타격을 받아 더 이상 손 쓸 수 없는 사태가 될 것이라는 충격적인 분석이 일본 학계에서 나왔다고 한다.

그동안 후쿠시마 핵발전소 1~3호기 수습에 가려져 관심 밖에 있었던 4호기의 상황이 공개되었는데, 원자로(핵반응로) 내 핵연료봉을 꺼내 별도로 보관중이던 ‘사용후 연료 저장수조’의 하부구조가 지진 충격으로 심각한 손상을 입은 것이 드러났다. (고준위 핵폐기물인 ‘사용후 핵연료’는 이것을 처리할 수 있는 기술이 아직 전세계 어디에도 없기 때문에, 원자로 내부 또는 핵발전소 부지 안의 수조에 보관할 수밖에 없다.)

4호기의 저장수조가 무너질 경우 1~3호기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충격적인 결과를 가져 올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경고하고 있다. 막대한 방사능 유출로 이어질 것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핵과학자이자 반핵운동가인 고이데 히로아키 씨는 “4호기의 ‘사용후 연료 저장수조’가 붕괴되면 그걸로 끝이라고 생각한다. 원전사고가 수습된다는 건 전혀 생각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YTN 화면 캡처(2012-1-5)
YTN 화면 캡처(2012-1-5)

일본 내각의 원자력위원회에서는 작년 3월, 4호기에 추가 수소폭발이 일어난다면, 반경 170킬로미터 이내에 강제이주, 250킬로미터 이내에 피난이 필요하다고 보고서를 만들었으나 국민들이 혼란에 빠질까봐 언론에 발표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반경 250킬로미터 거리면 도쿄도의 대부분이 포함된다.

우리나라 언론에는 거의 소개되지 않고 있지만, 방사능 오염으로 인해 일본 시민들이 일상에서 겪고 있는 다양한 피폭증상들은 수시로 보고되고 있다. 급성 출혈성 결막염이 급속하게 퍼지고 있으며, 어린이들은 자주 코피를 흘리고 있다. 도쿄 시민에 이어 요코하마 시민들에게서도 손톱의 이상이 발견되었고, 이바라키현에서는 훈련을 받던 경주마가 코피를 쏟기도 했다. 무시무시한 모양의 기형 토마토가 발견되었으며, 일본 삼나무 잎에서 시간당 26마이크로 시버트의 방사선이 검출되었다. 특히 이 나무들은 봄이 되면 꽃가루를 사방에 날릴 것이므로 호흡기를 통한 내부피폭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http://fukushima-diary.com 참고)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면 외신에 실린 후쿠시마 지역의 풍경들을 직접 보기를 권한다.
(http://www.boston.com/bigpicture/2011/12/japans_nuclear_exclusion_zone.html) ‘폐허’라는 말로는 다 형용할 수 없는 ‘지옥도’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사태가 수습되고 있다는 식의 이야기는 새빨간 거짓말에 불과하다. 핵발전소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바로 이처럼 단 한번의 사고로도 인근 지역뿐 아니라, 온 나라를 회복 불가능한 지경에 빠뜨릴 수 있는 위험성을 항상 안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정부와 핵산업계, 역주행에 과속까지

그런데도 한국정부와 핵산업계는 후쿠시마 사태 이후 미루어 오던 신규 핵발전소 부지 선정 발표를 지난 12월 22일 감행했다. (미루고 미루던 발표를 하필이면 크리스마스를 앞둔 시점, 거기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으로 뒤숭숭하던 시점에 감행한 것은 참으로 절묘한 ‘꼼수’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경북 영덕과 강원도 삼척에 각 4기씩의 핵발전소를 추가로 짓겠다는 것이다. 현재 가동중인 21기에, 건설중인 7기, 이미 계획중인 6기에다가 추가로 최대 8기의 핵발전소를 더 지어, 총 42기의 핵발전소로 현재 전력생산의 34퍼센트를 감당하고 있는 핵발전의 비율을 59퍼센트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것이 이명박 정부의 계획이다. 이미 원전 개수로 세계 5위, 밀집도로는 세계 1위인 한국은, 정부의 계획대로 추진될 경우,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원전 최대국’의 반열에 오르게 될 것이다. 독일, 스위스, 벨기에, 이탈리아 같은 나라들이 후쿠시마 사태 이후 잇따라 ‘탈핵’을 선언하고 있는 마당에 한국정부는 참으로 무모하게도 역주행에 가속페달까지 밟고 있는 실정인 것이다.

<한국일보> 2011년 12월 24일자 2면(종합)
<한국일보> 2011년 12월 24일자 2면(종합)

많은 사람들이 누누이 지적해 왔지만, 스리마일(미국, 1979년), 체르노빌(구 소련, 1986년), 후쿠시마(일본, 2011년) 같은 대형사고는 정확히 핵발전소 개수가 많은 나라들 순서대로 일어났다. 그리고 그러한 대형사고의 원인은 모두 제각각이다. 이러한 원인의 다양성과 확률법칙을 따져 보았을 때, 다음 사고가 어디에서 일어날 것인가를 추측하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단언컨대, 다음 핵발전소 대참사가 일어날 확률이 가장 높은 지역은 바로 한국의 동해안 지역이다. 게다가 울진, 경주(월성), 부산(고리)에 이어, 이제 영덕과 삼척에까지 핵발전소가 들어서게 되고, 경북도지사가 추진하고 있는 ‘경북 원자력 클러스터’(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와 고속증식로 계획이 포함된)까지 추가되면, 우리가 사는 대구는 세계 최대의 핵단지에 완전 포위되는 형국에 놓이게 될 것이다. 만에 하나, 어떠한 원인에 의해 후쿠시마 핵발전소와 같은 폭발사고 내지 방사능 유출 사고가 발생했을 때, 우리의 일상이 어떠한 지경에 이를 것인가를 예측하는 데 과연 특별한 상상력이 필요할까?

이미 레임덕에 빠진 이명박 정부는 왜 이토록 핵발전 확대에 목을 매는 것일까? 한 마디로 핵산업은 엄청난 건설비용을 챙길 수 있는 토건산업이다. (1기당 건설비용 약 4조원)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현재 핵발전소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건설사는 바로 이명박이 회장으로 있던 현대건설이라는 사실이다. (여기에 대개 삼성물산, 두산중공업 같은 재벌기업들이 컨소시엄으로 참여한다.) 게다가 핵발전소는 건설하고 나면 사후정비 및 관리 등으로 장기간 이권을 챙길 수 있는 수익사업이자, 한번 예산을 반영해 말뚝을 박아 착공을 시작해 버리면 돌이키기가 매우 어려운 ‘안정적인 사업’이다. 여기에 핵관련 교수, 연구진, 관료, 언론, 해당 지자체 등에게 골고루 떡고물이 돌아간다. 소위 ‘핵마피아’들에게는 결코 양보할 수도, 포기할 수도 없는 ‘황금시장’인 것이다. 4대강 사업으로 온 산하를 결딴 낸 것도 모자라, 정권 말기에 들어 이명박 정부가 이토록 무리한 역주행과 과속을 감행하는 까닭이 어디에 있는가를 우리는 똑똑히 알아야 한다.

2012년, 대구.경북의 선택

정부의 핵발전 확대계획의 기점인 2012년, 그리고 총선과 대선이 겹치는 해인 2012년은 앞으로 우리가 위험천만한 핵에너지의 노예로 살 것인가, 아니면 세계적 추세에 발맞추어 ‘탈핵’의 길로 나아갈 것인가를 선택하는 기로가 될 것이다. ‘2022년 탈핵’을 선언한 독일의 예를 들 것도 없이 핵산업은 결국 ‘정책 결정(선택)’에 의해 좌우되는, 철저하게 ‘정치적인 문제’이다. 우리가 만약 올해 안이하게 대처해, 이번 총선과 대선에서 ‘핵에너지’ 문제를 중요한 정치 의제로 만들어 내지 못한다면 상황은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 빠져들고 말 것이다. 그리고 앞에서도 말했지만, 그러한 기로의 최전선이 바로 대구와 경북지역이다. 특히 대구 시민들은, 핵발전의 문제가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라는 엄중한 현실에 눈을 떠야 한다.

무엇을 할 것인가. 우선은 우리가 ‘핵에너지’의 위험과 실상을 철저하게 이해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마침 오는 1월 16일 저녁 7시, 대구 대명성당에서 <녹색평론> 발행인이자 탈핵에너지 교수모임 고문인 김종철 선생의 강연회가 열린다. “핵이라는 괴물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우리 시민들이 모여 진지하게 고민하고, 실천적인 결단을 내리는 장이 될 것이다.

1월 18일 오후 2시, 경북대에서는 “영남지역 탈핵운동을 어떻게 조직해 나갈 것인가”를 의논하는 토론회가 열린다. 핵문제에서 화약고나 마찬가지인 영남지역의 지식인과 시민사회단체들, 시민들이 한 자리에 모여 대응 방안을 모색하는 중요하고 긴박한 자리가 될 것이다.

1월 26일에는 ‘탈핵, 탈토건’을 가장 중요한 정치적 임무로 내건 녹색당의 대구지역 발기인 대회가 열린다. 우리가 대구를 바꾸고 한국사회를 바꾸기 위해 총선과 대선에서 정치적으로 ‘연대’해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는 것이지만, 그러한 ‘변화를 위한 연대’ 속에서 ‘탈핵, 탈토건’이라는 의제를 꿋꿋이 관철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가장 중요한 정치적 임무로 삼는 풀뿌리 정치세력이 한 편에서 뚜렷한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힘을 실어 줄 필요가 있다는 것 역시 분명한 사실이다.

이처럼 우리 지역에서도 ‘탈핵’을 향한 실천적인 행보들이 가시화되고 있다. 더 이상 핵발전소와 방사능에 대한 두려움과 정치적 무력감에 빠져 있지 말고, 풀뿌리 시민들 스스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이러한 행보에 동참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핵발전소에 포위된 대구’에서, 우리가 아이들을 키우면서 ‘미래’를 기약할 수 있는 ‘권리’를 지키는 유일한 길임을 기억해야 한다. 






[변홍철 칼럼 10]
변홍철 / <물레책방> 인문학연구실장, 전 《녹색평론》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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