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시간 연장' 논란과 비정규직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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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참여 제약 받는 노동자, 그들이 정말 바라는 개선 방법은?


12월 19일에 치러질 대선에서 투표시간은 과연 연장될까요?
정치권에서는 ‘투표시간 연장’을 두고 이리도 뜨거운 논쟁을 벌이지만, 정작 투표시간이 연장되었을 경우 수혜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나 대학생들이 ‘투표참여에 가장 도움이 되는 방법’을 ‘투표시간 연장?’이라고 생각할까요?

추석 전부터 현재 국정감사에 이르기 까지 ‘투표시간 연장’과 관련 국회의원과 변호사 등 전문직 관계자들간에는 복잡다양한 논리와 법조항, 외국 사례까지 동원하면서 자신들의 주장을 펼치고 있는데요.

그들의 주장을 꼼꼼하게 분석해보면, 정작 시민들(특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바라는 것은 무엇인지가 빠져있습니다. 즉 사례와 근거는 풍부하나, 우리가 발딛고 있는 한국땅에 특정영역의 시민들(비정규직 노동자)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나타내는 자료는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중앙선관위가 지난 해 6월 한국정치학회에 용역의뢰한 연구보고서 '우리나라의 비정규직 근로자 투표참여 실태조사에 관한 연구'(한국정치학회, 2011.6) 결과에 따르면 ‘투표참여에 가장 도움이 되는 방안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58.1%는 ’주민등록지 구·시·군내 설치 투표소 중 어디서나 투표‘를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현재 논란이 되는 ’투표시간 연장‘에는 12.4%만 동의했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진짜로‘ 원하는 ’투표참여 방안‘에 주목하는 언론, 정치인, 법조인은 거의 없었습니다.

자료 출처 / '우리나라의 비정규직 근로자 투표참여 실태조사에 관한 연구'(한국정치학회, 2011.6)
자료 출처 / '우리나라의 비정규직 근로자 투표참여 실태조사에 관한 연구'(한국정치학회, 2011.6)

더군다나, 모든 여론이 ‘투표시간 연장’에만 올인하다 보니,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왜 투표에 참석 못하는지, 법제도를 위반하는 사업주의 문제 등은 언론에 노출되지도 않습니다. 

새누리당, 민주통합당 … 서로 다른 여론조사 근거로 주장

‘투표시간 연장’논란은 각종 어려운 화두와 담론 등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한마디로 요약하면 여. 야간 득표의 유불리라는 표계산이 바닥에 깔려있는 ‘정치인들의 정치행위’라는 점에 반대하는 분들은 없을 것 같습니다.

<매일신문> 2012년 10월 6일자 4면
<매일신문> 2012년 10월 6일자 4면

새누리당은 지난 27일 ‘투표시간 연장 반대’라는 입장을 공식 발표합니다. 이철우(경북 김천)원내대변인은 27일 현안브리핑에서 "민주당이 2002년 16대 대선 이후 투표율이 계속 떨어지고 있는 것을 투표시간에서 찾고 있지만, 지난 대선에서의 투표율 저조는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불신 등 다른 곳에 원인이 있다."고 주장하고, “대선을 코앞에 두고 룰을 바꾸면 상당한 혼란이 일어날 수 있으므로 장기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며 이를 반대하고 있습니다.

이철우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한국갤럽 여론조사를 인용하기도 하는데요.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투표시간 연행유지가 50%이며 9시까지 연장이 48%로 현행유지 의견이 더 많았다”며 “이 결과는 무조건 시간을 연장하자는 것이 만병통치약이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한다”고 주장했었습니다.

한국갤럽이 지난 9월 23~24일 이틀간 만 19세 이상 성인 609명에게 “현행 투표시간을 오후 6시에서 9시까지로 연장”하는 안에 대한 의견을 물은 결과 '투표시간을 오후 9시까지 연장해야 한다'가 48%, '오후 6시까지만 해도 충분하다'가 50%로 찬반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모름/의견없음'은 2%였습니다.

응답자 특성별로 나누어 보면 20대, 30대, 화이트칼라, 학생층에서는 '투표시간을 오후 9시까지 연장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은 반면, 40대 이상, 주부층에서는 '오후 6시까지만 해도 충분하다'는 의견이 더 많았습니다. 이 조사는 전국의 만 19세 이상 남녀, 609명을 대상, 휴대전화 RDD 조사, 95%신뢰수준에 표본오차는 ±4.0%포인트입니다.

<동아일보> 2012년 10월 3일자 5면
<동아일보> 2012년 10월 3일자 5면

반면, 민주통합당은 '우리나라의 비정규직 근로자 투표참여 실태조사에 관한 연구'(한국정치학회, 2011.6)‘에서 제시된 조사 결과를 우선시 하고 있습니다. 민주통합당 이찬열 의원(국회 행안위)은 최근 보도자료를 내고 “18대 총선에서 비정규직 중 64.1%가 투표에 불참했으며, 2010년 지방선거 때는 65.2%가 고용계약 관계나 고용주나 상사의 눈치, 임금 감액 등의 사유 때문에 투표에 참여하지 못했다”라고 밝히고, “투표 시간 연장이 투표 참여에 도움이 될 것인지에 대한 물음에는 67.7%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응답했다”고 제시했습니다.

이 결과는 중앙선관위에서 한국정치학회에 의뢰했고, 2011년 약 2개월간 비정규직 노동자 840명을 조사한 결과라고 보고서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와, 특정 영역 관계자를 중심으로 한 조사결과는 다를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어쨌든 두 여론조사 결과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투표참여에 제약을 받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노동자 투표참여 제약하는 사업주 감시감독만 잘해도…
노동자 일터 근처에 투표소만 설치되더라도…


해당 보고서에 따르면 ‘투표시간 연장하면 투표 참여에 도움이 될 것이다’라는 내용보다 더 중요한 자료들이 많습니다.

한국정치학회 설문조사는 총 3가지 영역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첫 번째는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투표참여 실태에 관한 것이며, 두 번째는 투표참여를 어렵게 하는 요인에 관한 것이며, 세 번째는 투표참여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필요한 제도적 조치에 관한 것인데요.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낮은 투표율을 보이는 이유로는 “참여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라고 답한 응답자들의 빈도수가 거의 65%에 이르고 있습니다. 또한 선거일 또는 투표에 참여하는 시간을 유급 휴무 또는 휴업으로 인정받는 노동자가 22.7%에 불과한 것은 매우 놀라운 결과라고 보고서는 밝히고 있고, 무려 77.3%의 노동자는 투표 참여에 있어 유무형의 제약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한편 노동자의 투표권 보장의 초석이 되어야 할 「공직선거법」제6조 제3항 “공무원·학생 또는 다른 사람에게 고용된 자가 선거인명부를 열람하거나 투표하기 위하여 필요한 시간은 보장되어야 하며, 이를 휴무 또는 휴업으로 보지 아니한다”.과 「근로기준법」제10조 “사용자는 근로자가 근로시간 중에 선거권, 그 밖의 공민권(公民權) 행사 또는 공(公)의 직무를 집행하기 위하여 필요한 시간을 청구하면 거부하지 못한다”에 대해서 회의적이었다는 점을 밝히고 있습니다.

즉 관련 조항의 존재 자체를 알지 못하는 노동자가 절반을 훨씬 넘을뿐 아니라(63.7%, 64%), 해당 조항이 자신들의 투표참여 보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응답자가 절반이 넘었다(52.7%)고 합니다.

한편,  「공직선거법」, 「근로기준법」이 비정규직 투표참여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이유에 대해 △ 근로자가 이를 요구하더라도 고용주가 근로자의 청구를 들어주지 않기 때문 (43.3%), 근로자가 법 내용을 잘 알고 있더라도 고용주에게 이를 요구하기 힘들어서 (41.1%)가 응답을 했는데요.

자료 출처 / '우리나라의 비정규직 근로자 투표참여 실태조사에 관한 연구'(한국정치학회, 2011.6)
자료 출처 / '우리나라의 비정규직 근로자 투표참여 실태조사에 관한 연구'(한국정치학회, 2011.6)

국민의 참정권을 보장하는 현행 법체계에 허점이 그대로 발견됨니다.

더 중요한 것은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응답자들이 내놓은 해법입니다. 응답자에게 투표율을 높이기 위한 구체적인 대안의 효용을 물은 질문에는 선거일 투표시간 연장(12.4%)이나, 사전투표를 허용하는 방안(22.9%) 보다, 주민등록지 구·시·군내 설치 투표소 중 어디서나 투표 하는 방안(58.1%)이 훨씬 높은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즉, ‘시간이 부족해서’ 투표를 못한다는 일반의 생각과는 달리, 이들은 유권자의 주민등록에 의거 투표소를 일괄 할당함으로서 발생하는 불편이 상당함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죠.

즉 비정규직 노동자 근무지와 주거지간에 상당한 거리가 있기 ㅤㄸㅒㅤ문에 퇴근 이후 집 근처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투표를 하기 보다는 주민등록지 구·시·군내 설치 투표소 중 어디서나 쉽게 투표하기를 원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를 위해 한국정치학회에서 제시한 개선책으로는 ▲ 선거구 단위 또는 구․시․군단위로 전산통합선거인 명부를 구축하도록 하고 투표소가 설치된 곳 어디에서나 선거인 자신이 투표하기 편리한 곳에서 투표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 ▲ 부재자 신고 없이 선거일 전에 일정기간동안투표소를 설치하여 먼저 투표할 수 있게 하는 사전투표제 실시 방안, ▲ 현행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에서 재․보궐 선거와 같이 오전 6시부터 오후 8시까지 연장하는 방안 등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2012년 10월 4일자 칼럼
<경향신문> 2012년 10월 4일자 칼럼

국민의 참정권 확대라는 측면에서 ‘투표시간 연장’이 논란이 되고 있지만, 정작 참정권 수혜자가 될 비정규 노동자가 원하는 투표형태와 방법과 정치권이 주장하는 논란에는 온도차가 납니다.

‘투표시간 연장’과 관련된 논쟁만큼 중요한 것이, 현행 법체계가 제대로 운용되지 않은 현실도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신다는 분들이 정작 국민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귀를 귀울여야 하는 것 아닐까요?

언론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치인의 입에만 의존해 그들의 말과 말만 전달하지 말고, 민심이 무엇인지 좀 더 세심하게 찾아주셔야 하지 않을까요?






[평화뉴스 미디어창 204]
허미옥 / 참언론대구시민연대 사무국장 pressange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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