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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정권이 뺏은 '장물' 영남대, 박근혜는 어떻게 사유화했나?
박정희 사후 29살 나이로 이사장 취임...8년 이사로 재임하며 각종 재단 비리 난무
2012년 11월 25일 (일) 16:29:48 민중의소리 정웅재 기자 jmy94@vop.co.kr

"1967년 영남대학교가 설립되고나서 올해까지 45년동안 내 나이 80이 될 때까지 그야말로 내가 죽어선 안 된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살아서 잘못된 영남학원의 비리나 박정희 정권의 악날한 일을 사회에 공개하고 바로 잡고 내가 죽는다는 일념으로 살아왔다."

영남대의 모태인 대구대학 설립자인 최준(1884~1970) 선생의 장손 최염(80)씨는 지난 13일 대구 매일신문사에서 열린 '영남학원 공공성과 정통성 회복을 위한 시민토론회'에 참석해 이같은 가슴속 한을 털어놨다. 영남대는 정수장학회와 함께 박정희 군사정권이 강탈한 '장물'로 꼽힌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전 대통령 사후에는 재산을 물려받듯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1980년 4월, 29살의 나이에 영남대 이사장에 취임했다. 학내 구성원들의 반발로 박근혜 후보는 7개월만에 이사장에서 물러났지만, 이후 1988년까지 8년동안 영남대 이사로 있으면서 사실상 영남대의 주인 노릇을 했다.

박근혜 후보가 이사로 있었던 8년동안 재단법인 영남학원에서는 불법 판공비 처리, 장학금 비리, 부정입학, 영남투자금융 비리, 재단의 부동산 처분 비리 의혹 등이 불거졌고, 결국 영남대는 사립대학 최초로 1988년 국회에서 국정감사를 받는 수모를 당한다. 이 일로 1988년 11월 2일 박근혜 이사를 포함한 이사진 전원이 퇴진하고 임시(관선)이사체제가 들어섰다. 그러나 박근혜 후보는 2009년 영남대를 다시 장악한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후인 2006년 4월 교육부가 '임시이사 파견사유 소멸통보'를 하면서, 소위 '재단정상화'가 추진되고 학내 일부에서 집권 한나라당의 유력 대선 주자라는 박근혜 후보의 정치적 위상에 기대 학교 발전을 꾀하려는 분위기가 일었다. 결국 2009년 1월 6일, 임시 이사회는 박근혜 후보에게 재단 이사직 복귀와 재단이사 4명 추천을 요청하게 된다. 박근혜 후보는 본인의 이사직 복귀는 사양하면서 4명의 이사를 추천한다. 전체 이사수가 7명인 점을 감안하면 불명예 퇴진한지 21년만에 다시 실질적인 영남대 '이사장'으로 복귀한 것이다. 12월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 후보가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의 대선후보로 선출되면서 영남대 정상화는 대구 시민사회에서 뜨거운 이슈가 되고 있다.

   
▲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는 박정희 전 대통령 사후 29살의 나이에 영남대 이사장에 취임했다.박근혜 후보가 이사로 재임한 1980년부터 1988년까지 각종 비리가 터져 사립대학 최초로 국회 국정감사까지 받았다.ⓒ양지웅 기자

박정희 최측근, 이후락이 대구대와 청구대 강탈 후 영남대 통합 주도


영남대는 1967년 대구대와 청구대를 통합해서 만들었다. 대구대 설립자 최준과 청구대 설립자 최해청(1905~1977)은 두 대학을 합병하는 것에 반대했는데, 두 대학 합병을 통한 영남대 설립은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중앙정보부장과 비서실장을 지낸 이후락(1924~2009)이 주도했다.

당시 두 대학이 통합하게 된 데는 두 대학 자체의 문제도 있었다. 1950년 야간대학으로 출발한 청구대는 지역의 대표 대학으로 자리매김했으나 박정희 정권의 '대학정비사업'으로 4년제에서 2년제로 강등된다. 학교 교사 등의 설비가 부족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설비에 투자하고 청구대학이 전국대학생 재고사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서 4년제로 복귀하긴 했지만 청구대는 군사정권의 '대학정비사업'을 거치면서 재정적 어려움을 겪게 됐다.

그 와중에 1966년 12월 재단 경리 직원의 비리 사건이 터졌고, 재단 이사회는 설립자 최해청을 학장직에서 물러나도록 했다. 엎친데 덮친겪으로 1967년 6월 본관 신축공사 현장에서 건물이 무너지는 대형 참사가 발생한다. 당시로서는 전대미문의 이 사고로 10명이 사망하고 30여 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대학 핵심관계자들이 사법처리를 당할 처지에 몰리자, 이들은 '묘안'을 떠올렸는데, 청구대학을 사죄의 뜻에서 군사정권에 바치고 처벌을 면하는 것이었다. 영남대학 교수회가 발간한 '학교법인 영남학원 정상화 백서'는 당시 상황을 아래와 같이 기술하고 있다.

"...최태해 학장과 나(심재완 청구대 교수)는 우연히 일치된 묘안을 생각해보았다. 박정희 대통령에게 맡아달라고 간청하면 맡아주지 않을까라는 안이 나왔다...이 일을 교섭할 사람은 이은상(청구대 교수)이 적임이니 부탁하자는 의견일치를 보았다. 이은상은 '대통령을 백년할 수 없는데 그만 두면 빗자루 들고 돌아설 생각은 해보았는가? 회사 사장이 될 수 없고, 외국에는 대학총장을 하는 일을 많이 보는데 가장 떳떳한 일 같은데'로 시작하여 그 능란한 말솜씨로 두 시간 동안이나 우리가 제시한 이야기를 펼치니 대통령이 수긍하더라는..."

1967년 8월 박정희 대통령의 사람들인 이동녕(공화당 의원), 김성곤(공화당 재정위원장), 이후락(중앙정보부장) 등이 청구대 이사로 추가되면서 청구대는 박정희 대통령의 영향력 아래로 들어갔다.

대구대는 1947년 9월 22일 최준과 지역 유지들이 뜻을 모아 개인 재산을 털어 설립했다. 1950년대를 거치면서 지역 명문으로 자리잡았는데 청구대와 마찬가지로 군사정권의 '대학정비사업'의 영향을 받았다. 운영난을 겪던 대구대는 삼성 이병철에게 운영권이 넘어간다. 대구대학 설립자 최준 선생의 장손자 최염 씨는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문교부에서 학교에 새로운 투자를 하라고 자꾸 강요했다. 할아버지는 이미 전 재산을 학교에 다 내놓아 뭘 더 새롭게 투자할 여력이 없었다. 그러자 문교부는 대학 정원을 감원하겠다고 압력을 가해왔다. 그 판국에 이병철이 할아버지를 방문했다. 할아버지는 인촌 김성수가 고려대학교를 맡게 된 과정을 설명하면서 '대구대는 내가 전 재산을 들여 설립한 학교지만, 자네가 재산도 있고 여력이 있으니 자네가 이 학교를 맡는다면 자네 생전에는 몰라도 후대에 잘 되면 대구대는 이병철이 만들어서 잘 됐다고 후대에서 칭송을 할거네'라고 했다. 그러니 이병철이 종이 한 장처럼 납작 엎드려서 '선생님, 제 정성을 다해서 (대구대를) 한수이남의 제일 대학으로 만들겠다, 맡겨달라'고 했다."

그렇게 1964년 12월 대구대 운영권은 삼성 이병철에게 넘어갔다. 그런데 1966년 이병철을 매우 곤란하게 만든 사카린 밀수사건이 터졌다. 1966년 5월 24일 삼성이 경남 울산시에 공장을 짓고 있던 한국비료가 사카린 2,259포대를 밀수한다. 이 사건은 1966년 9월 '경향신문'이 한국비료가 사카린을 건설자재로 위장해 들여와 판매하려다가 들통 났지만 세관에 벌금만 내고 무마됐다고 보도하면서 사회적 파문이 일었다.

검찰이 수사에 착수했고 이병철 차남 이창희가 구속됐다. 이병철은 경영 일선에서 퇴진하고 한국비료를 국가에 헌납하겠다고 발표했다. 여기에 더해 대구대도 박정희 정권에 넘겼다. 이병철의 장남 이맹희는 회고록 '묻어둔 이야기'에서 "삼성이 대구대를 소유하고 있었는데 이후락 씨가 어느 날 대구대학을 정부에 넘기라고 요구했다...그대로 헌납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권력으로 대구대를 차지하고, 상대의 약점을 빌미로 청구대를 차지한 다음 영남대를 만들었다"고 술회했다.

청구대와 대구대를 통합해 영남대를 설립하는 합동 이사회는 이후락 주도하에 1967년 12월 15일 서울 반도호텔에서 열렸다. 당시 자산가치 20억원의 대구대와 15억원의 청구대가 송두리째 박정희 정권의 손에 들어갔다. 청구대와 대구대의 통합은 두 대학의 설립자는 배제한 채 군사정권의 실세들이 빼앗다시피 진행했다. 이는 이후락 주도로 진행된 영남대 설립 이사회에서 선임된 이사들의 면면을 봐도 알 수 있다.

영남대 정관에 따르면 당시 설립 이사는 이동녕(공화당 의원), 이효상(공화당 경북지부장·국회의장), 김성곤(공화당 재정위원장), 성상영, 이후락(중앙정보부장), 최준(대구대 설립자), 한석동, 신현확(공화당 의원·보건사회부장관), 신기석(박정희와 대구사범 동창) 등으로 대부분 박정희의 최측근 또는 정권실세들이었다. 대구대 설립자 최준은 이름만 올려놓았다가 몇 년 뒤 아무런 통보도 없이 퇴임시켰다.

영남대 문제에 천착해 온 함종호 4.9인혁열사계승사업회 부이사장은 "군사정권의 실세들이 박정희의 지시를 받은 이후락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을 중심으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면서 양 대학 설립자들을 배제한 채, 이들로부터 학교를 빼앗아 박정희가 주인인 영남대학을 만든 것이라고 할 수 있다"고 밝혔다.

   
▲ 영남대학교는 1967년 12월 대구대와 청구대를 통합해 설립했다. 그 과정은 박정희 대통령의 최측근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주도했다.ⓒ영남대

박정희 사후, 박근혜 29살 나이에 영남대 이사장 취임,
학내 반발로 이사로 물러났지만 사실상 '이사장' 역할

영남대에 박근혜 후보가 등장한 것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사망하고 6개월 뒤인 1980년 4월이다. 그는 29살의 나이에 영남대 이사장에 취임했다. 그러나 박근혜 이사장 취임을 반대하는 학생들의 교내 시위가 4~5월 연일 계속됐고, 5월 14일에는 학생 1만5,000여 명이 대구까지 40km를 가두행진하면서 시위가 절정에 이르렀다. 결국 박근혜 이사장은 이사장에서 물러나고 이사직만 유지한다. 그러나 박근혜 후임 이사장으로 육영재단 이사 류준이 취임해 영남대의 실질적 통제권은 여전히 박근혜 이사가 갖고 있었다.

박근혜 후보가 영남대에서 처음으로 한 것은 바로 정통성을 확보하는 작업이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영남대 재단에 출연금을 단 한 푼도 내놓지 않고 장물을 손에 넣듯 취득했기 때문에 박 전 대통령이 영남대 설립자임을 분명히 하고 정통성을 계승해 자신이 그 뒤를 잇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싶었던 것이다. 당시 박근혜 이사는 측근 이사들과 함께 영남대 정관에 '교주 박정희'라고 못박아 넣었다. 당시 개정된 영남대 정관 1조(목적)은 "이 법인은 대한민국 교육의 근본 이념과 교주 박정희 선생의 창학정신에 입각하여 교육을 실시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기술하고 있다. 정관 개정 이사회에는 박근혜, 한준우(정수장학회 이사), 유연상(육영수 조카 사위, 육영재단 이사), 류준(당시 이사장, 육영재단 이사), 신기수(정수장학회 이사, 육영재단 이사), 조경희(총장) 등이 참석했다.

박근혜 이사 재임기간인 1980년부터 1988년까지 영남대에서는 재단의 각종 비리가 끊이지 않았다. 1986년 재단 산하 영남대병원은 병원장 해외 출장비 명목으로 300여 만원을 당시 박근혜 이사의 동생 박지만 씨의 항공료로 지급했다. 재단 돈을 쌈지돈처럼 이용한 것이다. 1981년부터 1987년까지 재단 법인 사무국은 대학에 학교운영비, 교직원연금, 의료보험료 등으로 58억여 원을 서류상으로만 보내고 실제로는 보내지 않는 수법으로 회계 부정도 저질렀다. 1983년부터 1987년 사이에 다른 용도로 사용된 장학금이 28억여 원에 달하고, 조일문 이사장 아들에게는 1986년부터 1988년 사이에 2천600여만 원을 비정상적으로 해외장학금으로 지급하기도 했다. 1인당 2천만원을 받고 29명을 부정입학시키기도 했다. 부정입학 기부금의 상당 부분은 재단 비자금으로 사용됐다.

박근혜 이사 재임 기간인 1980년부터 1988년까지 무려 34건의 재단 소유 부동산을 처분했는데, 주변 시세보다 싸게 팔아 교수협의회로부터 비리의혹을 받기도 했다. 당시 토지 매각 경위 및 배경과정에 대해 밝혀진 내용은 조순제가 담당했다는 것 뿐이라고 한다. 조순제는 박근혜 비서 출신으로 최태민 목사 처의 전 남편의 아들이다. 비금융인으로 영남투자금융에 특채돼 재단법인 영남학원의 실세노릇을 했다고 한다. 조순제를 포함한 소위 '박근혜 측근 4인방'이 재단 비리의 주범으로 꼽힌다. 대구대 설립자 최준의 장손자 최염씨는 2009년 사학분쟁조정위원회에 낸 의견서에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김정욱(박근혜 측근)은 당시 영남투자금융 회장 겸 재단이사로 있으면서 교수 채용, 직원 인사 문제를 전횡하였으며, 조순제(박근혜 비서 출신, 최태민 처의 전 남편의 아들)는 비금융인으로 영남투자금융에 특채되었고 재단법인 영남학원의 실세 노릇을 했으며 아들을 부정입학시켜 물의를 빚은 바 있고, 손윤호(조순제의 외삼촌)는 고졸 학력에 영남의료원 관리부원장으로 있으면서 의료원 관련 비자금 총책임자로 있었고, 곽완석(측근 중 학교행정의 포스트)은 사무부처장으로 부정입학 담당 실무를 맡았고, 기부금 4천만원 유용 혐의로 구속된 바 있습니다. 이들 박근혜 측근 4인방이 저지른 범죄는 이루 헤아리기가 어려울 정도입니다."

재단의 각종 비리로 영남대는 결국 사학 최초로 1988년 국회 국정감사를 받고, 교수협의회와 학생들이 박근혜 이사의 퇴진과 이사진의 전면개편을 요구하고 나선다. 압력을 못이기고 박근혜 이사는 1988년 11월 2일 이사직을 사임하고, 11월 8일에는 이사직 전원이 사퇴했다. 이후 임시(관선)이사 체제로 2008년까지 유지된다.

   
▲ 영남대학교는 김해공항 인근 울만마을 등에 토지를 소유하고 있다. 대구대 설립자 최준 선생 등이 재단에 출연한 토지인데, 대구대와 청구대가 강제 합병돼 영남대가 신설되면서 토지 소유가 영남대로 이전됐다. 박근혜 후보는 영남대 이사 재직시절 34건의 재단 소유 부동산을 처분했다. 이와 관련 비리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민중의소리 김보성기자

   
▲ 영남대가 김해공항 인근 울만마을에 소유하고 있는 토지의 일부 전경.ⓒ민중의소리 김보성기자

박근혜의 복귀와 영남대의 박정희 기념사업

2006년 교육부가 영남대에 '임시이사 파견사유 소멸통보'를 하면서 재단 정상화가 추진되고, 2009년 1월 6일, 임시 이사회는 박근혜 후보에게 재단 이사직 복귀와 재단이사 4명 추천을 요청하게 된다. 집권여당인 한나라당 유력 대선 주자인 박근혜 후보의 정치적 위상에 기대 학교 발전을 꾀하려는 선택이었다. 박근혜 후보는 본인의 이사직 복귀는 사양하면서 4명의 이사를 추천한다. 현재 영남대 이사진은 박근혜 후보가 추천한 우의형 전 서울행정법원장, 강신욱 전 대법관, 박재갑 전 서울의대 교수, 신성철 전 KAIST 부총장 등 4명에 이효수 영남대 총장, 이호성 영남대이공대학장, 김문기 영남대 총동창회 부회장 등 3명을 더해 모두 7명으로 구성돼 있다. 박근혜 후보가 추천한 이사가 과반을 넘어 박근혜 후보가 불명예 퇴진한지 21년만에 다시 실질적인 영남대 '이사장'으로 복귀한 것과 다름없는 상황이다.

박근혜 복귀 후 영남대 재단은 박정희 기념사업을 진행했는데, 영남대 교수이자 현재 박근혜 후보 캠프 기획조정특보인 최외출 교수가 주도했다. 최외출은 새마을장학생 출신으로 영남대 지역사회개발학과를 졸업했다. 영남학원 재단 기획조정실장으로 있던 중 박근혜 후보가 추천한 이사들이 들어오자 공석으로 있던 대외협력부총장으로 학교에 복귀했다. 이후 그는 박정희리더십연구원과 박정희새마을정책대학원을 세우고 두 기관의 원장을 겸임했다. 영남대 이공대의 경우 아예 교명을 '박정희 대학'으로 개명하려다가 학내 구성원들의 반발로 무산되기도 했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영남대와 박근혜 후보가 다시 이슈가 되고 있다. 지난 9월 영남대 교수회는 박근혜 대선 후보에게 영남대와 완전한 결별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대구 시민사회는 '영남대 재단 환수를 통한 정상화 시민대책위'를 구성하고 영남대 재단의 사회화를 위해 애쓰고 있다.

(*'박정희의 영남대 찬탈과 장물유산의 상속:함종호 4.9인혁열사계승사업회 부이사장 2012.11.13/영남대 교수회 발간 '영남대 정상화 백서' 등을 기사 작성에 참고함.)

[민중의소리] 2012-11-25  (민중의소리 = 평화뉴스 제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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