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된 청도 할머니들의 '송전탑' 싸움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입력 2013.05.22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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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 23호기 '공사 재개' 통보...주민ㆍ대책위 "재개 중단, 지중화" / 한전 "반드시 건설"


삼평1리 주민 이차연 할머니(2013.5.22.한국전력공사 대구경북개발지사 앞)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삼평1리 주민 이차연 할머니(2013.5.22.한국전력공사 대구경북개발지사 앞)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송전탑 때문에 투사가 됐다. 얼마나 억울하면 이렇게 앞장서서 싸우겠나. 밀양도 공사 들어갔으니 이제 우리 차례다. 싸움을 또 해야 한다니 앞이 깜깜하다. 평화로운 동네에 도둑처럼 들어와 송전탑 박아 쑥대밭 만들고 그 짓을 다시 한다니 무섭다. 한국전력공사는 반성해야 한다"


경북 청도 각북면 삼평1리 주민 이차연(76) 할머니는 22일 이같이 말하며 분통을 터뜨렸다. 21일 한전 관계자가 "밀양 완공 3개월 전 청도 공사를 끝낼 것"이라고 통보했기 때문이다. 또, 20일 밀양 송전탑 공사 재개 후 반대 주민 8명이 병원에 이송되는 등 사흘째 대치상황이 계속되자 "작년에 공사를 막으려 매일 산에 오르고 용역이랑 싸우던 기억이 겹친다"며 "전쟁 같다. 너무 불안하다"고 했다.

지난해 7월 공사를 저지하려 새벽부터 뒷산에 오르던 김춘자(63) 할머니도 "밀양 소식을 듣고 잠이 안온다"며 "산도 논도 마음대로 다 망쳐놓고 뭘 또 망치려 공사를 재개한다는 건지 이해가 안된다"고 했다. 이어, "눈물 흘릴 힘도 없다"며 "삼평리 지킨다는 마음으로 무조건 공사를 막겠다"고 말했다.   

한전 대구경북개발지사 철문 사이로 경찰과 대치 중인 할머니들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한전 대구경북개발지사 철문 사이로 경찰과 대치 중인 할머니들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한전이 밀양에 이어 청도에도 송전탑 공사를 재개하기로 해 주민 할머니들이 "재개 중단"을 촉구했다.  
삼평1리 주민들과 '청도 345kV 송전탑 반대 공동대책위원회'는 22일 한전 대구경북개발지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한전은 밀양에 이어 청도 송전탑 공사도 재개해 마을을 또 파탄 위기로 몰아넣으려 한다"며 "공사 계획을 중단하고 민가와 가까운 23호기 철탑의 지중화 약속을 지키라"고 촉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주민 할머니 6명을 포함해 시민단체 활동가 30여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기자회견 후 한전에 면담을 요구했다. 그러나, 한전은 정문을 잠그고 경찰을 투입했다. 이에 따라, 주민ㆍ시민단체 활동가와 경찰이 1시간 동안 대치했다. 특히, 주민 할머니들은 철문에 매달려 면담을 요청했다. 이 과정에서, 김춘자 할머니가 경찰 방패에 맞아 넘어지기도 했다.

경찰 방패에 맞아 넘어진 김춘자 할머니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경찰 방패에 맞아 넘어진 김춘자 할머니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때문에, 한전은 대책위 '공동대표' 삼평1리 주민 빈기수씨를 비롯한 백창욱 평화통일대구시민연대 상임대표, '실행위원' 변홍철 녹색당 정책위원장 등 3명과 30분가량 면담을 갖고 ▶23일 오후 5시 삼평1리에서 찬성 측 주민과 반대 측 주민, 한전 측 담당자가 참석하는 협상테이블 마련 ▶23호기 송전탑에 대한 지중화 검토 후 내달 3일까지 통보 ▶공사 재개 시 하루 이틀 전 공지를 합의했다.

'한전은 삼평1리 지중화하라'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한전은 삼평1리 지중화하라'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빈기수 공동대표는 "한전의 속임수와 강제로 밀고 들어오는 철탑 때문에 마을공동체는 깨졌다. 철탑만 아니었다면 주민 모두가 조용히 농부로 살 수 있었는데 이제는 모두 투사가 됐다. 한전은 23호기에 대한 지중화 약속 없이는 절대 공사 재개 못한다. 삼평리에 다시 평화가 찾아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백창욱 공동대표는 "밀양은 다시 전쟁터가 됐다. 청도도 위험 앞에 놓여 있다. 한전이 진정한 공기업이라면 폭압적 방법으로 공사를 재개해서는 안된다. 한전의 이익을 위해 평화로운 마을을 파괴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변홍철 실행위원은 "한전은 즉시 공사 재개 계획을 물리고 주민들 앞에 그 동안의 잘못을 사죄해야 한다"며 "마을을 한번 죽였으면 됐지 다시 고통을 겪게 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왼쪽부터)대책위 빈기수ㆍ백창욱 공동대표, 변홍철 실행위원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왼쪽부터)대책위 빈기수ㆍ백창욱 공동대표, 변홍철 실행위원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황성하 한국전력공사 대구경북개발지사 차장은 "안정적 전력공급을 위해서는 송전선로를 반드시 건설해야 한다"며 "청도 공사 재개시기를 특정할 수 없지만 밀양 완공 전 실험을 해야 하기 때문에 청도 공사를 마무리해야 한다"고 했다. 또, "지중화를 검토했지만 80% 정도 부정적이어서 확답을 못한다"면서 "주민대표자를 조속히 구성하면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공사를 진행하겠다"고 답했다.   

앞서, 2006년 한전 대구경북개발지사는 신고리 원전에서 생산한 전기를 대도시로 송전하기 위해 경남과 경북지역에 각각 765kV, 345kV 전압 송전 16km 선로 연결 공사를 발표했다. 이에 따라, 한전은 삼평리에 22-24호기, 덕촌리에 25호기 등 모두 18개 철탑을 각북면에 건설하기로 했다.

'대책없는 철탑 공사 피눈물이 흐른다'(2012.7.13.삼평1리 23호기 공사장)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대책없는 철탑 공사 피눈물이 흐른다'(2012.7.13.삼평1리 23호기 공사장)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그러나, 한전은 사업계획 발표 후 주민 10여명 의견만 수렴했다. 또, 이장과 면장 등 공무원들은 이 사실을 주민에게 알리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곽태희 전 이장은 주민의견서를 위조해 제출했다. 주민들은 2011년 이장을 포함한 7명을 고소했다. 그러나, 대구지법은 "고의성이 없다"며 무혐의 처분했다.

한전은 또, 2010년 주민 동의 없이 24호기 철탑 건립 부지를 변경했다. 그 결과 고압 송전선로가 주택과 농지를 가로지르게 됐고, 주민들은 이 같은 공사를 반대하며 농성을 벌였다. 지금도 20여명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 22호기와 24호기는 완공됐고 23호기는 지난해 9월부터 공사가 중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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