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교과서 논쟁과 언론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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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 언론의 역할을 기대하며


잉? 3.1절 노래가 사실과 다르다고? 기미년 3월 1일 정오, 터지자 밀물같은 대한독립만세~.
3.1만세운동은 오후 2시에 시작되었다며?
뭐? 문익점이 목화씨를 붓두껍에 몰래 감춰온 게 아니었다고?
헐?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고려 최영 장군이 아니라, 그의 아버지


검증을 통과한 국사교과서 논쟁이 국회에서도 한창입니다. 아주 이례적으로 한국사 관련 주제가 신문 1면을 장식하기도 하고, 연일 언론에서 주요하게 보도하고 있는데요. 언론에서 이 만큼 이슈가 된 주제에 대해선, 독자들은 보편적으로 한국근현대사에 관심을 가지고, 이것이 술자리를 비롯한 다양한 장에서 토론 주제가 되고, 관련 책이나 자료들이 판매되고, 강연회가 열리는 등 점차적으로 여론이 형성되어야 하는데.

역사교과서 논쟁


한국사 관련 논쟁은 ‘좌우’ 논란에만 머물러 있는 것 같습니다. 즉 여론으로 형성되기 보다는, 언론이 이 문제를 이분법적으로 핑퐁게임하듯 다루면서 역사진위 공방을 전문가영역으로만 압축시켜, 시민들은 “그래서 결론이 뭔데?”라거나, “골치아프다” 등의 반응만 보이게 합니다.

<중앙일보> 2013년 10월 21일자 1면
<중앙일보> 2013년 10월 21일자 1면
<중앙일보> 2013년 10월 21일자 4면(기획)
<중앙일보> 2013년 10월 21일자 4면(기획)
<중앙일보> 2013년 10월 21일자 5면(기획)
<중앙일보> 2013년 10월 21일자 5면(기획)

한국이 정치체제로 민주주의를 선택하고 있는 만큼 역사를 해석하는 다양한 관점이 교차되고, 치열하게 토론되는 과정을 통해 역사 자체를 폭넓게 구성하면 좋겠지만, 이것을 전문가들의 학술토론회처럼 기술하는 언론들로 인해 역사의 주체인 시민들은 먼발치에서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이죠.

영국의 역사학자이자 국제정치학자인 에드워드 카가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정의한 것처럼, 언론은 역사교과서 논쟁을 이 관점(이 화두에 대한 해석은 다양한데, 저는 ‘역사는 고정불변의 진리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발전하는 것’이라고 정의해봅니다.)에서 다뤄보면 어떨까요?.

즉 역사의 주체라고 할 수 있는 시민들이, 이 논의에 조금은 더 적극적으로 참가시키려면, 즉 역사라는 것이 전문가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나의 생활과 밀접한 그 무엇이라는 화두를 만들면 좋을텐데요.

예를들어 과거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역사적 사실이 학자들의 끊임없는 연구 끝에 오류나 잘못을 수정보완하는 과정을 적절하게 제시해주면, 시민들이 ‘역사는 연대기순으로 외워야 하는 골치 아픈 암기과목’이라는 고정관념을 깰 수 있을 텐데요. 또한 이번 역사교과서 논쟁도 흥미롭게 지켜보면서 자신의 삶도 투영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사 새로보기>(신복룡 지음), <한국사 상식 바로잡기 1, 2>(박은봉, 이광희) 등에는 ‘당연하다’고 생각한 역사적 사실이 오류가 많다는 점을 꼼꼼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3.1절 노래, 한국을 빛낸 100명 위인...


책을 읽는 과정에 제가 가장 놀랐던 점은 세가지였습니다. 즉 ‘3.1절 노래’의 오류, 문익점은 목화씨를 붓두껍에 담아 왔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최영 장군의 이야기가 아니었다는 점.

이 세가지 내용은 ‘△ 3.1절 노래 △ 동화책 △ 대한민국을 빛낸 100인의 위인들’(동요로 분류)을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흥얼거렸던 제게는 꽤나 놀라운 내용이었습니다. (물론 위 책에는 그 이외에도 우리가 잘못 알고 한국사를 꼼꼼하게 수정해놓고 있습니다.)

<한국사 새로보기>(신복룡 지음) / <한국사 상식 바로잡기 1, 2>(박은봉, 이광희)
<한국사 새로보기>(신복룡 지음) / <한국사 상식 바로잡기 1, 2>(박은봉, 이광희)

△ ‘3.1절 노래’에는 ‘기미년 3.1일 정오, 터지자 밀물같은 대한독립만세’라고 가사가 구성되어 있지만 정작 3월 1일 파고다공원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만세를 시작하기로 했던 시간은 오후 2시였다고 합니다.

한편 △ 문익점을 소개한 다양한 만화영화나 동화책에는 ‘붓두껍에 목화씨를 담아온 인물’이라고 기록하고 있지만, 이 또한 근거가 없습니다. 위 책들과 <두산백과사전>에 따르면 “문익점은 돌아오는 길에 목면 나무의 씨앗을 가지고 들어왔다. 당시 붓두껍에 목화씨를 몰래 숨겨서 가지고 들어왔다는 이야기도 전해지지만 이는 후대에 그의 업적을 추앙하는 과정에서 긴장감을 높이기 위해 덧붙여진 이야기로 추정되며 <조선왕조실록>에는 ”길가의 목면 나무를 보고 그 씨 10여개를 따서 주머니에 넣고 가지고 왔다“등의 자료를 제시합니다.

△ 대한민국을 빛낸 100인의 위인들 중 최영 장군편도 사실과는 다릅니다. 노래 가사에는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라, 최영 장군의 말씀을 받들자”라고 제시되어 있지만, 위 책들을 비롯해 <국사 용어사전>에도 이 말은 최영 장군의 아버지 말씀이라고 분명하게 제시되어 있습니다.

그 외에도 △ 한국인은 단일 혈통이 아니다 △ 화랑은 모계 사회의 궁남 △ 의자왕과 3천 궁녀의 허구 △ 삼국통일은 허구 △ 첨성대는 천문대가 아니다 △ 최만리는 한글 창제를 반대하지 않았다 △ 이순신과 원균 △ 광해군을 위한 변명 △ 대원군의 개혁정치  <한국사 새로보기>(목차 일부 요약) 와, △ 온달은 진짜 바보였을까? △ 강감찬은 귀주대첩에서 강물을 막아 대승을 거뒀을까? △ 고려장은 고려 시대 장례 풍습? △ 현모양처는 조선시대 여성의 이상향? △ 신라 금관은 왕이 평소에 머리에 썼던 것일까? △ 포석정은 왕의 놀이터? △ 독립문은 일본에 항거하는 뜻으로 세운 상징물? △ 태극기는 박영효가 배안에서 즉흥적으로 만들었을까 <한국사 상식 바로잡기1,2>(목차 일부 요약) 등 우리가 잘못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들이 깨알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렵지 않고 쉽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실부터 하나하나 꼼꼼하게 말입니다.

역사 = 암기과목 ? vs 재미있는 역사공부

<한국사 상식 바로잡기1,2> 필자이자 <한국사 편지>라는 어린이 역사책을 쓴 박은봉 선생은 “역사는 끊임없이 몰랐던 사실이 밝혀지고, 새롭게 해석되는 것, 탐정소설보다 재미있는 역사 공부를 어린이들과 함께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모처럼 한국근현대사가 뉴스 전면에 나섰습니다. 언론이 뉴스 프레임을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역사=암기과목?’이라는 도식이 계속 유지될지, 기존의 틀을 깨고 “탐정소설 보다 재미있는 역사”라는 색다른 함수관계를 만들 것인지 여부가 달려있습니다.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는 역사이기도 하지만 언론의 기록이기도 합니다. ‘역사란 어렵고 따분하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삶의 기록, 과거를 통해 현재를 배우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는 새로운 프레임을 만들 언론, 어데 없습니까?






[평화뉴스 미디어창 254]
허미옥 / 참언론대구시민연대 사무국장 pressange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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