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자인가, 봉사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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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태 칼럼] "권력, 모든 사람을 자신의 가치기준에 묶으려 하는가"


 경찰관이 도둑에게 수갑을 채우는 행위는 권력인가, 아니면 봉사인가?  ‘공권력’이란 말이 뜻하듯이 경찰관은 치안을 위해 도둑에게 수갑을 채우는 권력을 행사한다. 그러나 일반 시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권력행사가 아니라, 범죄를 막아 질서를 지키려는 봉사행위다. 따라서 경찰관의 권력은 엄밀한 의미에서 봉사이지 권력이 아니다. 거기에다 잡힌 도둑이 정말 죄가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판단도 상식과 공정한 법절차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

 그런데도 권력과 봉사가 제대로 구별되지 못하는데서 온갖 문제가 발생한다. 시민사회라 일컬어지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이처럼 권력과 봉사를 혼동하는 자가당착에 빠지기 일쑤다. 심지어 ‘권력’이란 말에 신물이 났을법한 어느 시민단체의 이름이 ‘미권스’인 것은 난센스다. ‘미권스’란 미래의 귄력자들이란 뜻인 모양인데, 이는 응당 미래의 봉사자들이란 뜻의 ‘미봉스’ 쯤으로 이름을 바꾸는 것이 옳다. 민주사회의 지도자는 봉사자이지, 권력자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몇 년 전 북아프리카 튀니지의 국화이름을 딴 제스민 혁명이란 말이 세상을 뒤흔들었다. 이슬람권의 민주혁명을 일컫는 말이었다. 장기집권의 권력자들이 잇달아 쫓겨나고 성난 시민들의 함성이 거리를 메웠다. 이런 뉴스를 접하면서 북아프리카나 중동은 아직 수준이 이 정도밖에 안 되는구나, 하고 동정 아닌 동정심을 품은 사람들이 많았다. 심지어 공산국가에서조차(북한은 예외로 하고) 독재의 시대가 지고 있는데, 이제야 제스민 혁명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왕정시대에는, 혹시 나약한 왕은 그렇지 못했다 해도, 왕이 백성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었다. 그렇다보니 권력자의 눈치를 잘 살펴야 겨우 연명이라도 할 수 있었다. 그런 시대의 권력자는 여간해서는 국리민복을 위해 봉사한다는 생각을 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때로 ‘세종대왕’처럼 어떤 임금의 이름자 뒤에 ‘대왕’이란 칭호를 붙여 주기도 한다. 권력을 봉사로 승화시킨 성군으로 추앙하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영국이나 일본처럼 왕을 인정하고 있는 나라이거나, 소련이나 중국 같은 사회주의 국가에서조차 이제는 권력을 쥔 사람이 전횡을 휘두르는 나라는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 나라가 아직도 있다면 그 나라는 일본 후쿠시마의 스나미 같은 파도가 언제 닥칠지 모르는 불안한 사회일 것이다. 그렇게 어리석은 사람이 지휘하는 나라가 아직도 지구상에 존재할까? 이런 질문에 대해 서로 정반대로 엇갈리는 대답이 좌충우돌하는 나라가 바로 오늘의 한국사회다.

 권력자의 임기를 제한하고 있는 나라에서 몇 년간의 권좌는 권력일 수가 없다. 인간의 어리석음을 표현한 ‘일장춘몽’ 같은 경구는 구태여 유행가나 삼류소설만의 레토릭이 아니다. 그런데도 그 짧은 권좌를 조자룡이 흥칼 휘두르듯 하는 권력자가 있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바로 현대 정치사의 돈키호테가 아니겠는가.

 다양성 그 자체가 가치인 민주사회에서 사람의 가치판단은 같을 수가 없다. 우리가 지향하는 공동체가 민주ㆍ시민사회라면, 우리의 정치지도자는 다양성을 포용하는 통합자 내지는 국민을 섬기는 봉사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언필칭 '국민'을 내세우지 않는 정치는 없다. 그러나 모든 사람을 자신의 가치기준에 묶으려 한다거나, 아군 아니면 적군이라는 단순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을 만들려는 세력이라면 그게 바로 문제적 집단이다. 이런 상식을 새삼 되뇌게 되는 것은 국가기관의 대선개입사건 이후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권력자들에 의해 마구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권력은 짧다. 엄중한 시기일수록 상식의 가치를 실천하려고 백번 애써야 하산길이 덜 위험할 수 있다. 그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김상태 칼럼] 23
김상태 / 언론인. 전 영남일보 사장.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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