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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훈ㆍ김용판 재판의 교훈
[김윤상 칼럼]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서도 복지 확대 필요
2014년 02월 23일 (일) 15:15:30 평화뉴스 pnnews@pn.or.kr

  선량한 사람도 조직 속에서는 딴 사람처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최근에 주목 받은 예를 하나 들어 보겠습니다. 소위 ‘유서 대필’ 사건으로 3년간 옥고를 치렀던 강기훈 씨가 23년 만에 서울 고등법원 재심을 통해 무죄판결을 받았습니다. 재판부는 과거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필적 감정이 잘못된 것이라고 판단하였는데, 당시에 왜 그런 일이 생겼을까요?

조직 속의 개인은 약하다

  국과수 담당자가 어떤 사정에 의해 고의로 진실을 왜곡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 고의는 아니더라도, 정권과 조직이 원하는 결과를 내지 않으면 자신의 생존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작용하여 결론을 오도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마음이 평온하지 않으면 논리적인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는 사실은 우리가 일상 체험을 통해 잘 알지 않습니까?

  조직 속의 개인은 약합니다. 처음에는 조직의 잘못된 규범과 풍토에 대해서 저항감을 갖던 사람도 시간이 지나면서 기존 질서에 동화됩니다. 그 과정에서 갖가지 자기합리화를 하게 되고 급기야 다른 조직원에게까지 강요하는 입장이 되고 맙니다. 자신의 생존이 불확실하면 조직 속에서 양심을 지키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물론 생존이라는 소극적 동기 외에 출세라는 적극적 동기도 작용하기 때문에, 상당한 정도의 사회보장이 되어 있다고 해도 이런 일이 아주 안 생기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생존은 출세보다 더 절실한 욕구일 뿐 아니라, 출세욕 자체도 상당 부분 생존에 대한 불안에서 비롯됩니다. 먹고사는 문제가 확실하게 보장된다면 출세보다는 보람과 성취를 위해 살려는 사람이 많아질 것입니다.

용기를 가지려면 믿는 구석이 있어야

  역시 잘 알려진 최근의 사실로, 국정원 여직원 댓글 사건과 관련하여 수사 외압과 대선 개입의 혐의를 받은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에 대한 재판을 들 수 있습니다. 작년 대선 직전 국정원 여직원 댓글사건을 수사했던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은 상부의 부당한 압력이 있었다고 증언하였습니다. 권 과장의 정의감과 용기는 그 자체로 높이 평가받아 마땅합니다. 그러나 권 과장은 사법시험 출신입니다. 경찰을 그만두더라도 변호사로서 살 수 있다는 점도 조직의 비리에 호각을 부는 데 힘을 보태지 않았을까요?

  반면, 다른 동료 경찰들은 권 과장과 반대되는 증언을 했습니다. 그 중에는 스스로 진실하게 증언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만, ‘유서 대필’ 사건의 감정인처럼 조직 내의 생존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한 의식적 내지 무의식적 굴절이 있었다고 보는 게 상식일 것입니다.

  사람이 양심에 따라 살려면 최소한 먹고살 방도에 관해 믿는 구석 혹은 쿠션이 필요합니다. 맹자가 말한 무항산무항심(無恒産無恒心, 안정된 생활 없이는 안정된 마음도 없다)도 같은 취지일 것입니다. 물론 빈곤과 냉대 속에서 지조와 용기를 지키는 훌륭한 인물이 적지 않다는 사실도 우리는 잘 압니다.

인간은 누구나 예술인

  2월 13일 문화체육관광부의 청와대 업무보고에 따르면,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예술인의 소득이 최저생계비 이하인 경우 실업급여에 준하는 지원금을 줄 계획이라고 합니다. ‘긴급복지사업’이라는 이름으로 81억 원 예산을 마련하고 연령과 활동기간에 따라 예술인 1,200명을 선정하여 3~8개월까지 월 1백만 원씩을 지원할 계획이랍니다. 예술인 사회보장을 확대한다고 했던 대선 공약과도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가난을 감수하면서 자신의 길을 가는 예술인에게 얼마간이라도 보탬이 된다는 점에서 매우 반가운 일입니다. 그러나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의문이 생깁니다. 예술인 말고도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국민이 많은데 왜 예술인에게만 이런 배려를 해야 하는 것일까요? 문체부 소관에 국한하더라도 예술인 이외에 체육인에게도 같은 배려를 하는 게 자연스럽지 않을까요? 또 모든 사람은 자기 인생의 성취를 위해 살고 싶어 한다는 점에서 예술인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국민 모두에게 같은 배려를 해야 하지 않을까요?

남에게 기대지 않는 복지도 가능하다

  그런데 복지에 대해서 우려하는 분도 많습니다. “누구든 생명은 귀한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열심히 일한 개미가 놀기만 한 베짱이를 먹여 살려야 하느냐?” 하고 반론을 폅니다. 복지를 위해서는 재분배가 불가피하며 재분배는 정의롭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런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 분도 있겠지만 그래도 일리가 없는 말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는 재분배 없는 복지, 남에게 기대지 않는 복지를 여러 해 동안 모색해 왔고 그것이 가능하다는 글을 <평화뉴스>에 게재한 적도 있습니다. 지면 관계상 자세한 언급을 피하면서, 관심 있는 분을 위해 링크를 걸어 두겠습니다. <보편적 복지보다 더 상식적인 대안: 국민 공동자산으로 기본 생계 보장을>

   





[김윤상 칼럼 57]
김윤상 /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yskim@k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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