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메달 김연아' 소치올림픽, '독도 지키기' 반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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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독도 어민 참사, 2014년 일본 외무성 '일본해' 동영상 유포...우리는?


올림픽 사상 2연패 할 것으로 기대됐던 김연아가 은메달에 머물렀다. 김연아는 지난 21일 열린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기술점수(TES) 69.69점 예술점수(PCS) 74.50점으로 합계 144.29점을 기록, 전날 쇼트프로그램 점수 74.92점을 더해 219.11점으로 은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1위는 224.59점을 기록한 아델리나 소트니코바(18, 러시아)가 차지했다. 김연아의 꿈이 좌절됐다고 언론 매체는 잇따라 보도했다. 심판 판정에 문제가 있다, 심판진 구성부터 문제였다는 보도가 줄을 이었다. 소치 동계올림픽을 지켜본 많은 국민들과 팬들의 표정은 한 마디로 실망, 분노, 그리고 그 둘이 합쳐진 것이었다.

‘미디어창’은 김연아 금 실패를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기록은 깨어지게 돼 있으므로 그럴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도 아니다. 왜 한국 공중파 방송사들이 김연아에 열광하는지는 김연아에 거는 국민의 기대가 너무 컸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그 뿐일까? 동계올림픽 관련 방송 제작비와 광고 수입이 아직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성급히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제작비와 예상 광고수입을 놓고 고민을 많이 했을 것이다. 시청자들로서는 ‘예상’ 광고수입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지만 방송사 실무진으로서는 그것은 ‘예상’을 넘어선 것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러기에 방송사들은 기를 쓰고 소치동계올림픽 여러 경기를 재방, 재재방 해가면서 ‘예상’을 조금이라도 허물려고 동계올림픽 출전 선수들보다 더 기진맥진하도록 노력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곁가지 이야기다.

김연아의 금 실패에 따른 “팬들의 실망감과 민족주의적 감정이 온라인을 타고 걷잡을 수 없이 터져 나왔다.” 외부인의 시선으로 한국 스포츠와 민족주의를 들여다 본 한 언론매체 외국인의 언급이다(한겨레, 2014. 2. 25. 30쪽, 「SOCHI 소치2014」-“평창은 공정한 올림픽으로”). 링크에서 출발 총성이 울리기 전 팔을 아주 조금 먼저 움직인 선수 때문에 다시 출발선에 서야 하는 선수들은 공정한 경기의 제자들이다. 금메달이어야 했으나 은메달로 그친 것은 공정하지 못한 심판 판정 때문이라고 판단되지만 김연아의 피겨 스케이팅은 세계인의 눈과 기억 속에 각인되어 있다. 공정한 룰이 적용되도록, 그래서 “그 올림픽을 보니까 그 나라, 대단한 나라야!” 라는 평판을 국제사회에 받도록 해야 하고 그렇지 못한 사례로 소치올림픽을 반면교사로 삼아 국제사회가 공정한 경기와 최선을 다한 선수에 박수를 보낸다면 김연아는 아름다운 스케이터로 영원히 기억되지 않을까.

그렇지 못한, 역사적 연원이 깊은(심판 판정은 물론 구성부터 잘못된) 사례가 25일 SBS 8시뉴스를 탔다.

< SBS > 2014년2월 25일 8시뉴스
< SBS > 2014년2월 25일 8시뉴스

日 조바심났나?..‘일본해’ 동영상 유포

<앵커>미국에서 동해 표기 법안이 통과되니까 일본이 조바심이 나는 모양입니다. 어제(24일)부터 일본해 동영상을 인터넷에 유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건 긴 싸움이 될 것 같습니다.도쿄 최선호 특파원입니다.<기자>일본 외무성이 어제부터 인터넷에 뿌리고 있는, 5분 27초짜리 홍보 영상입니다.일본해 명칭이, 세계 각국 지도에 표준으로 자리 잡은 것은 19세기부터라며, 한국의 '동해 표기 또는 병기' 주장을 반박하고 있습니다.[日 외무성 홍보 동영상 음성 : (일본해 표준화가) 20세기 초반부터라는 한국의 주장에는 전혀 근거가 없습니다. 양식 있는 국제사회가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아직은 일본어 자료뿐이지만 곧 영어와 한글판도 만들겠다고 밝혔습니다.우리 외교부가 독도 영어 홍보 영상과 위안부 강제연행을 고발하는 애니메이션을 홈페이지에 올린 지 하루 만에 나온 대응입니다.또 무엇보다 미국에서 동해 병기 법안이 잇따라 추진되는 데 대해 조바심을 느낀 것으로 풀이됩니다.국제법 전문가들은 차분하고 긴 호흡의 대응을 주문합니다.[김찬규/대한 국제법학회 명예회장 : 영유권 문제와는 전혀 상관없습니다. (국가)자존심 문제이지. 동해가 일본 바다가 된다, 우리 바다가 된다는 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얘기이고. (표준 명칭은) 연구를 해야 합니다. 왜 이것이 동해가 돼야 하는지.]한일 간 지도 전쟁의 진짜 격전지는, 오는 2017년 표준 해도집 개정판을 결정할 국제수로기구 총회가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독도문제, 국민 반응은?

독도 영유권과 관련한 일본의 대응은 신물이 날 정도여서, 뉴스라니까 뉴스로 시청한다는 것이 대다수 우리 국민들의 반응일 것이다. 우리는 ‘일본의 망언’이라는 이런 뉴스를 셀 수도 없이 많이 접해왔다. 그런데 언제부터 일본이 이런 대응을 했고, 왜 했고,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이냐는 질문을 한다면 선뜻 대답을 할 국민들이 많지는 않을 것이다. 뉴스 속의 국제법전문가가 말하는 대로 ‘왜 동해가 돼야 하는지’에 대해 우리는 당연한 것인데도 별로 연구를 해오지 않은 것 아닌가? 일본에도 동쪽 바다(동해)는 있을 테니까. ‘금메달리스트 김연아’를 신앙처럼 믿었던 국민들은 그 신앙이 깨어지고 은메달에 머무는 것은 금메달을 도둑맞았다고 생각하고, 또 하게 마련이다.

그러면 독도는 어떤가? ‘독도는 우리 땅’을 국민적으로 노래할 정도여서 독도는 우리 땅인가? 국민들이 독도를 지키지 못하면 내 집이 망한다는 생각으로 독도를 알고, 연구하고, 지키고, 가보고, 생활의 일부로 삼지 않는데도 독도는 그래도 ‘우리 땅’인가? ‘은메달리스트 김연아’가 돼버린 소치의 현실이 독도에도 적용되지 말란 법이 있는가?

'아베 극우 지지' 일본 여론


여기서 생각해야할 포인트는 뭘까? 아베 신조의 극우 정치에 대해 일본인들의 과반수가 지지 응답했다. 지난날의 한일관계를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왜 그럴까? 원인은 여러 가지로 분석할 수 있겠으나 크게는 언론매체가 아베 쪽으로 기울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언론의 여론 지배력은 한국이나 일본이나 크다. 그러면 우리 지역의 언론은 어떤가? 독도문제와 관련해 영남일보의 한 면을 보기로 한다(영남일보 2012년 8월 11일 1면).

<영남일보> 2012년 8월 11일자 1면
<영남일보> 2012년 8월 11일자 1면

(사진 설명) 광복절을 닷새 앞둔 10일 오후 전격적으로 독도를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이 대형 태극기가 새겨진 조형물을 만져보고 있다. 현직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연합뉴스.
(기사) 이명박 대통령은 10일 “독도는 진정한 우리의 영토이고, 목숨 바쳐 지켜야 할 가치가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8·15 광복절을 닷새 앞두고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독도를 전격 방문해 이같이 경비대원들에게 말하고 “긍지를 가지고 지켜나가자”고 거듭 강조했다.이 대통령은 이어 “여기 근무 여건이 좋지 않다. 여기 와서 보니 난간 등이 약한데 방심하면 위험할 수 있다”며 “무엇보다 스스로 안전을 지켜야 한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오후 2시쯤 헬기편으로 독도에 내려 1시간10분간 독도에 머물렀다.이 대통령은 독도에서 윤장수 경비대장으로부터 업무보고를 받은 뒤 초소 경비대를 둘러보고 ‘한국령(韓國領)’이라고 쓰인 바위에 올라 사진을 촬영했다. 이어 독도를 한 바퀴 돌아본 뒤 독도 전사자 추모비를 찾아 헌화·묵념했고, 경비대 식당에서 경비대원과 ‘독도 지킴이’ 김성도씨 부부 등과 다과를 함께했다.앞서 이 대통령은 오전 11시30분쯤 헬기편으로 울릉도에 도착, 김관용 경북도지사와 최병호 울릉군의회의장, 새마을지도자, 노인회 회장 등 지역인사와 오찬간담회를 열었다.이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취임 초부터 오려고 했는데 되지 않았다”면서 최수일 울릉군수에게 ‘녹색섬 울릉도’라고 쓴 친필 휘호를 전달했다.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은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사실을 전 세계에 공식 선포하는 셈이어서 주목된다. 특히 그동안 일본의 잇단 역사적 망언과 도발이 우리의 ‘조용한 외교’에서 비롯됐다는 비판이 적지 않은 상황에서 국가원수로서 독도 영유권 논란에 쐐기를 박는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하지만 이번 독도 방문은 일본이 한국 외교백서의 독도 영토 표기에 대해 항의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뤄진 것이어서 한·일 관계는 크게 경색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일본이 선거를 앞두고 있어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에 대해 한층 강경하게 대응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우리 정부는 이 대통령의 울릉도·독도 방문을 일본 정부에 사전 통보하지 않았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울릉도·독도를 방문하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며, 실제 실행계획도 세워놓고 있었다”고 말했다.이 대통령의 울릉도·독도 방문에는 유영숙 환경부 장관과 최광식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소설가 이문열·김주영씨가 동행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당시 정치적 코너에 몰리자 독도를 전격 방문했다. 그런데 기자(기사는 기자가 쓰지만, ○○일보, △△신문처럼 그 기자가 소속된 언론사가 말하고 쓰는 것으로 독자들에게 받아들여진다)의 보도는 어떤가?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은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사실을 전 세계에 공식 선포하는 셈이어서 주목된다. 특히 그동안 일본의 잇단 역사적 망언과 도발이 우리의 ‘조용한 외교’에서 비롯됐다는 비판이 적지 않은 상황에서 국가원수로서 독도 영유권 논란에 쐐기를 박는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새마을 비판' 재갈 물렸듯이…

박정희 정권 당시 새마을운동이 많은 맹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관계 공무원들이나 연구하는 학자들, 심지어 새마을조직 안의 일꾼들도 어느 정도 알았을 것이다. 국민운동의 모양새를 갖추고는 있지만 민간 자생적운동이 아니라 위로부터의 것이어서 국민동원에 쏟는 것만큼 국민소득도 올라가느냐하면 그렇지는 않다는 것은 알게 모르게 감지되고 있었다. 재벌 총수나 총수의 가족이 참가해야 할 만큼 ‘참가하지 않으면 알지?’ 하는 권력의 압력이 무언중에 느껴지던 게 당시 상황이었다. 그러나 어떤 언론매체도 그런 분위기를 기사로 다루지 않았다. 그렇듯이 위에서 사례로 인용한 기사 어디를 봐도 이명박 대통령 띄우기 외에 독도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미래를 직시하고 독자들과 함께 고민하려 한 대목은 보이지 않는다. 그런 것은 역사에 맡기면 된다는 것인지, 아니면 그런 것은, 정치인은 어차피 떠날 테고 그러면 어차피 국민들 몫이니까 국민들이 때가 되면 짊어지겠지 해서였을까. 인용한 이명박 전 대통령 독도 방문 기사 어디에도 그런 고민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교학사 교과서, 독도 외면


말썽 많은 교학사 고등학교 역사교과서에 독도 관련 지도가 엉망이라는 것을 ‘미디어창’은 지적한 바 있다(「민족 말과 땅을 지키는 길」2013.10.15). 그 무렵 수구 언론 이외의 여느 신문들은 ‘독도는 우리 땅’으로 가르쳐야 할 텐데 교학사 교과서는 독도의 영유권은 일본에 있다는 일본인의 논문 지도를 실었다고 비판했다. 필자는 독도 영유권은 한국에 있다고 한 우리 학자 지철근 박사의 논문 지도에 실린 지도, 독도본부 누리집에 실린 일본 학자(후지이 겐지)의 왜곡된 지도를 함께 찾아 독도가 우리 땅이고, 교학사 역사 교과서야 말로 우리말과 우리 땅을 일본에 가져다 바치려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이점에서는 조선총독부의 중학교 역사 교과서만큼도 못 되는 게 교학사 교과서라고도 훈민정음을 빠뜨린 오류를 지적했다.

(왼쪽) 독도본부 누리집에 실린 후지이 겐지의 독도지도 / 독도본부 누리집에 실려 있는 우리영토 지도. 울릉도와 독도 명칭이 씌어 있다.
(왼쪽) 독도본부 누리집에 실린 후지이 겐지의 독도지도 / 독도본부 누리집에 실려 있는 우리영토 지도. 울릉도와 독도 명칭이 씌어 있다.

그런데 독도와 관련해서는 독도를 관리한 해방공간과 미-일 강화조약에 이르는 동안 미국의 태도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은 당시 미국-일본 관계에서 감지된다. 지철근 박사의 논문에 실린, 독도가 한국령임을 보여주는 지도와 독도와 울릉도를 라인 밖으로 밀어낸, 미국의 입장을 반영한 클라크라인 지도를 비교해보면 미국과 일본의 관계가 어떤 것인지 분명하다.

지철근 박사 논문의 지도(왼쪽)와 미국 클라크가 그은 '클라크라인' / 지철근 박사의 지도에는 울릉도, 독도 지명이 있는데 후지이 겐지는 독도 지명을 빼고 인용했다.
지철근 박사 논문의 지도(왼쪽)와 미국 클라크가 그은 '클라크라인' / 지철근 박사의 지도에는 울릉도, 독도 지명이 있는데 후지이 겐지는 독도 지명을 빼고 인용했다.
조선총독부가 1920년 발행한 역사교과서.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 등이 소개돼 있다.
조선총독부가 1920년 발행한 역사교과서.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 등이 소개돼 있다.

'독도'-해방공간 보도가 말한다


독도는 역사적으로 대한민국의 영토였는데 미국과 일본은 그걸 인정하지 않았다. 해방공간 대구에서 발행된 남선경제신문 기사를 보기로 한다.

먼저 남선경제신문 1947년 6월 15일 기사.
울릉도 근해는 미공군 특별연습구역 / 사건발생일이 연습당일날!
폭격사건 진상 / 14일 판정예상


두 기사 모두 외신을 인용했다. 울릉도 근해에 미국 공군기가 무슨 폭격을 했나? 하는 의문을 가지게 한다.

그럼 6월 12일 기사를 보자.
독도 부근서 우리 어선 국적불명의 비행기 습격으로 사망 16명 기타 조사중

이제 이 기사를 찬찬히 보기로 하자.
지난 16일 오후 2시 반경 울릉도에서 도 당국에 전해온 급전에 의하면 지난 9일(시간 불상) 울릉도에서 출선 독도 부근에서 작업중이든 어선 20척은 이날 국적불명의 비행기 습격을 받고 (사격으로 추측) 작업 중의 선원 16명이 사망하였다 하며 어선 17척은 아직도 돌아오지를 아니하고 있다고 한다 이 비상태의사(비상사태의) 급보에 도 신 수산과장은 포항으로 출장 방금 관계당국과 연락 아레 울릉도 어선 또는 관계자들의 조잔 내용 등을 조사 중에 있는데 사건 원인 기타가 매우 주목되고 있다

어선 십일척도 침몰?

(울릉도에서 윤우현 특파원 朝通(조선통신의 약칭)) 동해의 고도에서 어선이 어선이 폭격을 받어 20여명이 사상한 사건이 이러났다 지난 8일 울릉도로부터 39哩(마일) 떠러진 무인도고도에는 「미역」 따는 어선 15척이 본토 울릉도로부터 몰여들어 작업 중 정오경에 상공에 나타난 미군 비행기로부터 폭탄과 기관총의 세례를 받어 11척이 침몰하고 9명이 사망 5명이 행방불명 중상 2명 경상 8명이라는 희생을 내였다 한다. 이 급보를 접한 도청(島廳)과 경찰서에서는 재차의 참사를 피하여 9일밤에 구조선을 보내고 그들의 구제에 노력 중에 있다 한다 독도는 과거에 있어도 수차 미군 폭격 연습의 목표가 되었으나 이때까지는 다행히도 아무런 사고는 없었든 것인데 금번에는 폭격기일의 통고 없이 비래한 것이라 하며 또 정확히 선박임을 인식하고 폭격과 기관총 소사를 감행한 형적이 농후하다 하여 同島 관민의 격분을 사고 있다. (원문대로 인용. 띄어쓰기만 했음)

이 후 기사가 잇따르고 있는데 기사 가운데 몇 건의 제목을 보면 다음과 같다.

독도의 동포 폭격한 미군 극형에 공개 처단하라 / 경북도 文聯 담화 발표(1948. 6. 23.)
※ 文聯 : 1960년대 정부에 의해 통합, 운영된 예술인 총연합과 달리 자생적으로 조직, 결성된 민간 문화·예술단체. 1946년부터 개별 단체가 연합돼 예술, 학술, 문화 부문과 문맹 퇴치 등 계몽운동을 전개했다.

<남선경제신문> 1948년 6월 23일자 2면
<남선경제신문> 1948년 6월 23일자 2면
<남선경제신문> 1948년 6월 26일자 1면
<남선경제신문> 1948년 6월 26일자 1면

동족애 분발하라! 독도사건 조난동포 위해 위문금품 내자! / 본사에서 25일부터 취급 개시
본사 솔선 3만원
독도사건에 도 농련(도 농민연맹) 담화(이상 3건, 1948. 6.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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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조난동포 위문금품 모집 / 동정하라 참상 당한 조난동포를!(1948. 6. 30.)
..................................................
주최 본사 경상북도 경북어련(漁聯) 후원 하에 착수 / 25일부터 7월 10일까지 취급
독도 조난동포 위문금 위문품 모집(1948. 6.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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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사건 조사 완료 / 배상해결위원 현지 향발(1948. 6. 30.)
......................................................
독도사건 조사 결과 발표하라(1948. 7. 1.)

관련기사가 해방공간 영남일보 등에도 잇따랐음은 물론이다.

미군이 저지른 독도 참사, 결국 국민 모금으로

그런데 정작 울릉도 어민들은 미군 폭격에 희생돼 죽어나가는데 당시 서울의 정계에서는 어민 참상이 피부에 와 닿지 않은 듯 대응이 느렸고 미적지근했으며, 덩달아 미군들은 발뺌하기에 바빴다. 결국 독도 어민 폭격 사태는 단순사건으로 축소됐고 국민적 조사, 항의, 배상 운동이 전개돼야 할 텐데도 당시 우리 지역 언론사들 수준에서 조난동포 위문금품 모집을 호소, 희생자들 뒷감당 한 것을 볼 수 있다.---때린 사람은 오히려 큰소리 치고, 맞은 사람들끼리 도울 수밖에 없는 형편. 우리 민족이 해방된 땅에서 주인노릇 해야 할 텐데 주인은 여전히 딴 데 있었던 사실을 미국 공군기의 독도 어민을 향한 폭격·기관총 소사 사태는 잘 말해주고 있다. 이런 흐름이 이어지는 가운데 독도는 오늘날에 이르렀다. 독도가 위 지도에서 보듯 클라크라인에서 제외되고, 미-일 강화조약(1951)에서도 소속이 규정되지 않은 것(영국 등은 초안에서 한국령이라고 규정하도록 했지만 미국이 일본의 로비를 받고 무시했음)은 미-일 관계가 태프트-카츠라 밀약 당시로 복원된 것을 누가 의심할 수 있을까.

말 잘 듣는 언론, 독도문제에도 뒷짐


2014년 ‘김연아 은메달’과 1948년 독도 어민 참사 사태, 뭐가 다른가?
하나는 한 빙상인 개인 문제이고, 하나는 민족 문제, 그 차이인가? 아니면 공정한 룰 적용의 문제와 다수 어민의 희생 그 차이인가? 스포츠를 애호하는 세계인이 지켜보고 있고 룰을 공정하게 적용하지 않으면 가만 두지 않는다는 부담을 심판들이 피부로 느끼지 않는 한 ‘룰을 불공정하게 적용하는 일은 주최국으로서 덤으로 가져갈 수 있지’ 하는 고질병을 떨칠 수 없다. 독도 문제도 마찬가지 아닐까. 국민이 눈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이 땅 정치인들이 등줄기에 식은땀이 나도록 느끼지 않는 한, 언제고 그들은 자신에게 짧은 순간이라도 정치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면 쇼를 펼치려 할 것이다. 왜? 그렇게 하면 지면 보도를 통해 한 건 할 것이라고 판단하는 언론이 얼마든지 있을 것을 정치인들은 알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정치인이 그렇다면 1905년 태프트-카츠라 밀약을 맺어 대한제국을 보호국으로 격하시키고 예정된 대로 대한제국을 식민지로 만든 미국과 일본은 어떨까?

국민 관심이 독도 지킨다

독도는 결국 국민 몫이다. 대한제국이 망하고 일본이 강제 점령하자 이완용을 비롯한 대한제국 고관들은 메이지 일왕에게 충성을 맹세했고, 대한제국을 무너뜨리는데 기여한 공로로 작위와 함께 수천, 수만금 은사금과 땅을 받았다. 그런데도 우리는 현재 일본의 국민이 아니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우리 역사의 단절을 막으려는 우리민족의 저항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과 미국은 태프트-카츠라 밀약을 맺어 한반도와 필리핀을 식민지로 만들 수는 있었다. 그러나 우리민족의 민족사는 이완용이 끊을 수도, 메이지 일왕이 뭉갤 수도 없었다. 독립의 고지를 향해 민족이 깨어 투쟁했기 때문이다.

독도---아베 신조가 오바마와 다시 제2의 태프트-카츠라 밀약을 맺고, 제2의 이완용이 나와 원조 이완용과 송병준이 그랬듯이 ‘문명국이 후진국을 개화하기 위해 식민지로 삼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을 여론조사니 SNS니 무어니 해가면서 국민을 현혹하지 못하도록 해야 지킬 수 있다. 교학사 교과서 사태에서 고위 관료들(다수가 아닌 일부라고 믿고 싶다)은 이완용·송병준이 애용한 ‘문명국이 후진국을 식민지로 삼아야 하는 당연한 의무’를 ‘식민지 근대화론’으로 재빨리 바꿔치기하는 솜씨를 발휘했다. 거기에는 일본을 사모하는 듯한 일부 학자들이 깃대를 잡고 수구언론이 나팔을 불고, 꽹과리를 쳤기 때문인데 그들은 지금도 진실인양 치고 있다.

민족사 이어간 사람들


대한제국을 ‘문명국 일본’론자 이완용은 지키지 못했는데, 이름 없는 우리민족 구성원들은 민족사의 정통성을 붙들고 투쟁하면서 새 나라를 일궈냈다. 이완용은 민족사까지 단절시키려 일제의 동화, 황민화 정책에 만세를 불렀지만 이름 없는 우리민족 구성원들은 들판에서, 일터에서, 학교에서 항일 투쟁을 하면서 민족사를 이어갔다. 독도는 누가 지켜주지 않는다. ‘은메달 김연아’를 만들어버린 소치동계올림픽은 독도 지키기의 반면교사다.






[평화뉴스 미디어창 260]
여은경 / 대구경북민주언론시민협의회 사무처장. 전 대구일보 사회부장


 <한겨레> 2014년 2월 25일자 30면(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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