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새발자욱' 윤복진을 아십니까?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TBC FM 라디오 다큐멘터리-<물새발자욱>, 사랑과 그리움


대구 문화의 정체성을 찾는다면 어디서, 어떻게 찾아야 할까요?
가장 흔히 듣는 이야기는 신문에 자주 나고, 텔레비전에 자주 비치는 그것이 대구 문화의 현주소라고 합니다. 사람이면 대구문화의 주인공, 작품이면 사랑받는 작품이라고 합니다. 그 사람들, 그 작품들이 던지는 이미지가 대구 문화의 정체성을 드러낸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 

대구시가 강조하는 ‘문화도시 대구’나, 신문에 기고하고 텔레비전에 출연하는 문화예술인들이 말하는 ‘공연문화도시 대구’ ‘…’ 모두 말하고 강조하는 면면이 다르고 내용도 다르지만 정작 무대에 오르는 인물이나 오르는 작품은 대개 비슷비슷하지 않습니까? 아마 열 손가락으로 세라고 해도 셀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미디어창’에서 조금 다른 사람들이 조금 다른 시각으로 대구문화의 지평을 넓힌 작업을 한 사람들을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무엇보다 문화인이 우리 민족의 한 가족으로 살았고, 그 문화인의 가족이 우리 이웃으로 살아오고 있는데도 우리는 정작 잊었고, 조금 다르게 보는 사람들의 잊으라는 말에 이끌렸고, 결국 잊고 만 대구의 문화와 문화인에 대해서 얘기하려고 합니다. 잊힌 문화, 문화인, 그 문화인의 가족, 바로 우리 곁에서 살아온 이야기입니다.

대구문화의 무대는 무대에 오르는 배우만 달랐지 어제나 오늘이나 한결같지 않습니까? 지금 무대에서 펼쳐지는 작품이 어떤 방향으로 흐르는지 관객들이 꿰고 있고, 그럴수록 감동이 폭발하고 내면화돼야 할 텐데 감동과는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풋감이 익으면 홍시가 돼서 감다운 맛을 내듯이 문화도 익으면 그래야 할 텐데 뭐랄까, 홍시는커녕 설익은 고욤 맛을 관객들에게 제공해온 게 현실 아닙니까? 어디 꼭 새로운 문화를 일구고 발굴하라는 게 관객의 요구입니까? 대구의 신문, 텔레비전 방송이 대구문화의 정체성을 틀어쥐듯 해온 것에 대해 관객들은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 대구의 신문, 텔레비전 방송은 낮은 자세, 맨눈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요.

<물새발자욱>…TBC 대구방송의 라디오 다큐멘터리 재킷. <물새발자욱> 동요집은-이인성이 판화로 제작했다.
<물새발자욱>…TBC 대구방송의 라디오 다큐멘터리 재킷. <물새발자욱> 동요집은-이인성이 판화로 제작했다.

들으면서 일하고, 책을 읽고, 쉴 수 있는 매체-바로 라디오입니다. 그 라디오 방송이 지난 11월 1일 일을 내고 말았습니다. TBC FM이 ‘시의 날’ 특집 라디오 다큐멘터리로 제작(방송 오후 5시)한 ‘물새발자욱’이 진솔한 무대를 엮어냈습니다. 대구가 낳았고, 일제가 우리 전래 문화를 말살하려던 때에 전국의 어린이들과 숨결을 맞추면서 우리 전통문화와 율격이 살아있는 동시, 동요 작가로 활동한 윤복진을 전파에 실어 보냈습니다. 흔한 소재, 형식 아니냐구요? 한 번 들어보시겠습니까. 고난의 시대를 살면서 어린이들에게서 희망을 찾았고, 꿈을 본 동시, 동요 작가, 해방이 되자 어린이들의 희망가가 울려 퍼지는 문화 건국을 꿈꿨고, 지상에서는 꽃과 같은 그 무엇을, 하늘에서는 별과 같은 그 무엇을 해방된 내 땅에서 실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걸었지만 좌절된 윤복진. 

“석중이, 목월이, 그리고 나는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어야 한다, 새로운 이정표를 세워야 한다”는 유언과도 같은 글을 남기고 반평생을 살아온 대구를 떠나 월북한 윤복진은 다시 반평생이 지나서야 금서에서 풀립니다.

하지만 ‘물새발자욱’은 그런 이야기가 아닙니다. 떠나간 아버지를 미워했고, 잊으려했지만 나이 쉰 살이 넘어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자신을 발견한 한 딸, 그리워하고 사랑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서야 가족 곁으로 돌아온 것을 이야기하는 용기가 숨을 틔우는 작품 이야기입니다.

<물새발자욱> TBC 대구방송의 라디오 다큐멘터리 재킷의 윤복진 모습.
<물새발자욱> TBC 대구방송의 라디오 다큐멘터리 재킷의 윤복진 모습.

딸은 말합니다.

“평생 내겐 아버지가 없었습니다. 내 입학식에도, 졸업식에도, 결혼식에도, 첫 아이가 태어났을 때도 아버진 없었습니다. 그렇게 지독히도 미워했고 원망했던 아버지, 하지만 난 평생 아버지를 그리워했습니다. 아버지가 필요했고 아버지를 사랑했습니다.”

일흔이 다 된 딸의 진솔한 육성 고백이 청취자들을 ‘틀’을 뛰어넘는 감동으로 이끌었습니다. ‘물새발자욱’은 담장에 갇힌 대구문화를 열어젖히는 작은 수로가 될 것입니다. 그 수로 열기의 큰 몫은 윤복진의 딸이 해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담아낸 것은 TBC FM입니다. ‘물새발자욱’은 김도휘 아나운서가 다른 방송 일을 하는 짬짬이 시간을 내어 오랫동안 땀을 흘린 작품입니다(책임프로듀서 박영수, 작가 전문주, 연출 김도휘). 아나운서가 작품을 연출한다는 것은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노력한 흔적이 배어 있습니다. 반년 아니면 1년, 더 수고를 해서 텔레비전 다큐멘터리로 제작했으면 합니다.

윤복진의 동요 '벽에 그린 그 얼굴'. 이인성이 그림을 그렸다. 동아일보 1930년 2월 26일자 5면
윤복진의 동요 '벽에 그린 그 얼굴'. 이인성이 그림을 그렸다. 동아일보 1930년 2월 26일자 5면
윤복진의 그림동요 '양양 아가양'. 윤복진이 쓴 동요에 전봉제가 그림을 그렸다. 동아일보 1931년 1월 27일자 4면
윤복진의 그림동요 '양양 아가양'. 윤복진이 쓴 동요에 전봉제가 그림을 그렸다. 동아일보 1931년 1월 27일자 4면

저는 이 작품이 방송되는 것을 사전에 알았습니다. 하지만 이제야 ‘미디어창’에 올리는 것은 또 다른 계기가 있었습니다. 게으름이 작동한 탓도 있었구요.

해저문 바닷가에 물새 발자욱
지나가던 실바람이 어루만져요
그 발자욱 예쁘다 어루만져요

하이얀 모래밭에 물새발자국
바닷물이 사아르르 어루만져요
그 발자욱 귀엽다 어루만져요


딸은 말합니다.
“아버지가 어릴 적 놀았던 영산지 못가에서 물새를 본 적이 있습니다. 나는 그 물새가 부러웠습니다. 날개가 있으니 어디든 오고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아마 물새가 되어 오시기도 했으리라. 월북작가 윤 복진이 아닌순수 동시작가 윤 복진으로. 아버지 윤 복진으로….”

‘물새발자욱’---‘미디어창’은 아버지와 딸, 아버지와 아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딸이 삶과 시대 가운데에서 고민하고, 미워하고, 울고, 그리워하고, 사랑한 이야기를 ‘미디어창’ 독자들이 직접 듣기를 바랍니다. (TBC FM '시의 날' 특집 다큐멘터리 <물새발자욱> 다시 듣기)

대구의 동시인 윤복진과 딸, 어머니는 남이 아닌 이웃으로 우리 안의 우리와 대화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대구 문화 지평선에 안개가 걷히는 것은 그 부수익이 될 것입니다.  







[평화뉴스 미디어창 257]
여은경 / 대구경북민주언론시민협의회 사무처장. 전 대구일보 사회부장

저작권자 © 평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지금 주목 받고 있어요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