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평리 송전선로, 인근 주민들도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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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홍철 칼럼] 농성장 대체집행 심리 맡은 재판부의 현명한 판단을 호소하며


행정대집행과 대체집행

“한전은 순 도둑놈들이다. 밀양시청도 한데 어불리가 주민들 다 죽일라카는 기다. 경찰은 한전 꼬붕이가! 머 하는 짓이고. 저거가 주민들 재산 다 뺏기고 마을이 만신차이 되는 거 책임질 수 있나. 우예 책임질낀데!”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 농성장 4개를, 한전이 행정대집행을 통해 강제철거한 지난 6월 11일 저녁, 청도 삼평리 농성장에서 이차연 할매(77세)가 하신 말씀이다. 마치 전쟁과도 같은 하루였다. 특히 행정대집행법상 안전 유지 역할만을 해야 하는 경찰이 직접 농성 움막을 철거하는 등 위법과 폭력이 난무했다. 

이제 신고리-북경남 송전선로의 공사부지 농성장 중 마지막 현장인 경북 청도군 각북면 삼평1리 23호기(345kV) 부지의 주민 농성장에도 전운이 감돌고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밀양의 경우 ‘행정대집행’이라는 수단을 사용했던 데 비해, 청도 삼평리의 경우 ‘대체집행’이라는 방법을 사용하려 한다는 점이다.

대체집행은 법원의 판결을 거쳐, 법원 소속 집행관을 통해 농성장 등을 철거할 수 있게 하는 절차이다. 현재 한전 대구경북건설지사는 대구지방법원에 삼평리 주민 농성장과 장승, 망루 등에 대한 대체집행을 신청해 둔 상태이며, 오는 7월 25일 심리가 예정되어 있다.

그러나 한전의 대체집행 신청은 부당한 것이다. 이 심리를 맡은 재판부는 삼평리 주민들의 고통과 송전탑의 진실을 잘 헤아려, 현명한 판단을 해 줄 것을 촉구한다.

대구지방법원 심문기일통지서 / 자료. 청도345kV송전탑반대 공동대책위
대구지방법원 심문기일통지서 / 자료. 청도345kV송전탑반대 공동대책위

주민들의 호소와 기도

2012년 7월, 한전은 삼평리 현장에 용역을 투입하여, 항의하는 주민들에게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폭력을 자행하였다. 그때 이차연 할매는 단기기억상실증을 겪기도 했다. 그러한 심각한 폭력과 인권 침해가 문제가 되어 공사는 중단되었지만, 주민들은 너무도 큰 육체적, 정신적 상처를 입었다. 그후 대구를 비롯한 전국의 뜻있는 시민사회단체들이 함께 하면서 마을을 지켰고, 삼평리는 밀양과 함께 송전선 갈등의 대표적 사례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작은 컨테이너 농성장과 망루에는 힘없는 주민들이 불안을 가까스로 견디면서, 이렇게 억울하게 땅을 빼앗길 수 없다고 외치는 절박한 호소가 서려 있다. 또 지난 3.1절을 맞아 주민들이 수백명의 연대 시민들과 함께 세운 장승에는, 절망감을 견뎌내고 소박한 일상을 이어가기 위한 눈물겨운 기도가 어려 있다. 이것은 공사를 방해하기 위한 시설물이라기보다는 주민들의 호소와 기도를 담은 상징물이다. 이것을 대화와 타협이 아닌, 대체집행으로 무리하게 철거하는 것은 주민들에게 또 한번 큰 상처를 입히는 일이 될 것이다.

청도군 각북면 '삼평리 평화공원' 입구에 있는 장승 /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청도군 각북면 '삼평리 평화공원' 입구에 있는 장승 /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23호 송전탑 공사부지 앞 평화공원에 있는 컨테이너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23호 송전탑 공사부지 앞 평화공원에 있는 컨테이너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송전탑 공사, 급한 게 아니다

무엇보다도 한전은 2012년 9월 이후, 단 한 번도 삼평리 23호기 송전탑 공사를 하러 들어온 적이 없다. 지난 3월, ‘공사방해금지 가처분 결정’이 떨어지자마자, 말뚝과 로프를 설치한다는 명목으로 시공업체 직원들이 몰려와 주민들을 불필요하게 자극하고 이에 항의하는 연로한 주민들을 집요하게 채증하는 등 치졸한 도발을 사흘에 걸쳐 잇따라 한 것 이외에, 공사를 위한 인원, 장비, 차량의 진입은 지난 1년 반 동안 한 차례도 없었다. 주민 합의를 도출하지 못함으로써 공사를 재개하지 못하고 지연되어 왔던 책임을, 이제 와서 주민들에게 떠넘기겠다는 것은 주민들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방적인 처사에 불과하다. 

공사가 한전의 주장처럼 이렇게 급하게 추진되어야 하는 것인가 하는 문제도 재판부는 진지하게 검토해 보아야 한다. 밀양 송전탑이 완공되지 않으면, 청도 송전탑 또한 무용지물이다. 또 부품 성적서 위조 사태 이후 한없이 미루어지고 있는 제어케이블 재설치 등으로 언제 완공이 될지 모를 신고리 3~4호기가 없으면 밀양 765kV 송전탑도, 청도 345kV 송전탑도 아무런 쓸모가 없다. 따라서 삼평1리 23호기 송전탑 공사는 그렇게 급한 것이 아니다. 대화를 통해 합리적인 대안을 마련할 시간이 충분하다. 무리하게 대체집행을 하는 것은 불필요한 충돌을 야기할 뿐이다.   

헐티로 위를 지나는 가공선로 대신 지중화를!

그뿐만이 아니다. 인근 각북면과 풍각면 주민들 중에는, 송전선로 공사에 대한 찬반 여부를 떠나, 삼평1리 마을 위를 지나가는 송전선로만이라도 지중화해 달라는 주민들의 요구가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이 구간에서 송전선로는, 대구에서 헐티재를 넘어 각북면을 지나 풍각면으로 이어지는 주요도로인 ‘헐티로’ 위를 가로지르게 된다. 군내버스와 시외버스, 통학버스, 승용차와 농기계, 농사용 차량 등 하루 수백 대의 차량과 주민들이 지나는 이 도로 위를 초고압 송전선이 낮게 드리워져 지나가는 것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이에 대해 인근 주민들도 매우 불안하게 생각한다.

이 구간을 지중화해 달라는 삼평1리 주민들의 요구는, 단지 토지 가치의 하락에 대한 우려나 금전적 보상 같은 사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 차원에서 매우 중대한 공익적 요구를 담고 있다는 여론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이 구간만이라도 도로 위를 지나는 가공선로 대신 지중화하는 것은 삼평1리 주민뿐만 아니라, 인근 지역 주민들의 바람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데 대체집행이 될 경우, 그러한 지중화 논의에 대한 가능성은 아예 차단되고 말 것이다. 삼평1리 주민들이 좀더 시간을 갖고 한전과의 대화를 통하여 합리적이고 공익적인 대안을 찾을 수 있도록 재판부가 대체집행 신청을 기각하는 것이 옳다. 재판부의 현명한 결정을 다시 한번 촉구한다.  






[변홍철 칼럼 31]
변홍철 / '청도 345kV 송전탑 반대 공동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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