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전탑과 공공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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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홍철 칼럼] 밀양과 청도 삼평리 주민들의 투쟁은 '공공성'을 위한 싸움


'이미 끝난 일'이라고?


신고리 핵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를 대구와 영남권에 보낸다는 명목으로 추진되어 온 북경남 송전선로 공사가, 지역 주민들의 목숨을 건 저항에도 불구하고 계속 강행되고 있다. 현재 경남 밀양의 경우 총 52개 송전탑 중 5개, 경북 청도는 40개 중 1개 송전탑만이 착공하지 못한 상태다. 그 가운데 밀양 4개, 청도 삼평리 1개, 총 5개 송전탑 건설 부지는 주민들이 점거하고 농성을 계속하고 있다. 

보기에 따라 이것은 ‘이미 끝난 일’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비록 물리력에 의해 주민들의 저항이 벼랑 끝까지 몰리고 있는 상황이라 해도, 이것을 ‘이미 끝난 일’로 치부해 버려서는 안 된다. 더구나 밀양과 청도 삼평리 주민들이 7~10년 가까이 이야기해 온 것이 우리 사회에 충분히 알려지지 못한 상태에서, 단지 지금 물리적 측면에서 수세로 몰리고 있다 해서 이 사태의 진실마저 외면 받아서는 결코 안 된다. 만약 그렇게 밀양과 청도 삼평리 주민들의 목소리를 외면해 버린다면, 우리 사회는 언제나 힘 앞에서 진실이 패배할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거듭될 것이다. 

정부와 한전의 거짓말

정부와 한전은 그동안 ‘안정적인 전력 수급’이라는 ‘공공성’을 명분으로 북경남 송전선로 공사를 강행했다. 그러면서 온갖 비열한 수법과 악선전으로 주민들의 투쟁을 ‘보상’의 문제로, 나아가 ‘지역 이기주의’의 문제로 매도해 왔다. 지금 우리 사회 대부분의 시민들이 이 사태를 바라보는 관점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결국 정부와 한전의 술수가 상당히 먹혀든 셈이다.

그러나 진실은 그렇지 않다. 작년 10월 1일, 밀양 송전탑 공사를 재개하면서 한전 조환익 사장은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했다. 2014년 여름 전력 수급을 위해 신고리 핵발전소 3호기를 그때까지 준공해야 한다, 그리고 여기서 생산한 전기를 보내려면 밀양-청도 송전선로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신고리 3호기는 작년 검찰이 원전비리를 수사한 결과, 핵심부품(제어케이블)이 짝퉁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위조부품(시험성적서가 위조된 부품)인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위조부품을 교체해야 하고, 그러려면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현재로선 2015년 말 가동도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만약 그것을 무리하게 단축하려 한다면 십중팔구 부실 교체가 될 가능성이 높고, 그것은 핵발전소의 ‘안전’에 치명적인 문제를 낳게 될 것이다.

더구나 문제의 신고리 3호기는 또 하나의 비밀을 감추고 있었다. 작년 5월, 변준연 당시 한전 부사장은 “아랍에미리트(UAE) 원전을 수주할 때 신고리 3호기가 참고 모델이 됐기 때문에 밀양 송전탑 문제는 꼭 해결돼야 한다. 2015년까지 신고리 3호기가 가동되지 않으면 패널티를 물도록 계약서에 명시돼 있다”고 실토했다. ‘4대강 사업’과 함께 이명박 정부의 대표적 ‘부실’ 및 ‘비리’ 중 하나로 거론되는 아랍에미리트 원전 수출 문제가 결국 송전탑 공사 강행의 ‘보이지 않는 이유’ 중 하나였던 것이다.

백번 양보해서, 신고리 3호기가 가동된다고 해도, 기존에 있는 선로들로 전기를 송전하면 된다는 것,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은 한전도 인정하고 있다. 한전의 시뮬레이션에 의할 때, 신고리 3호기에서 생산된 전기는 기존의 3개 345kV 송전선(고리-신울산, 고리-신양산, 고리-울주)으로 송전하는 데 문제가 없다. 다시 말해, 신고리 3호기가 완공된다고 해도 굳이 밀양-청도 송전선로는 필요없는 것이다. 애초에 공사는 전혀 급하지 않았다. 무리하게 공사를 강행할 이유가 없었는데도, 정부와 한전은 엉터리 언론을 동원해서, 국민들의 눈과 귀를 속여왔다. 

핵발전의 위험

또 이미 낡을 대로 낡아빠진 고리 1호기를 비롯해 2025년까지 수명이 다하는 노후 원전들을 ‘원래 계획대로’ 차례로 멈추게 되면, 송전선로의 용량은 현재 노선으로도 전혀 문제가 없다. 그런데도 송전선 공사를 밀어붙이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결국 낡은 핵발전소 수명을 억지로 늘려가며 계속 가동하겠다는 위험천만한 의도를 깔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 그런데 후쿠시마 사고에서도 이미 확인했듯이, 대규모 핵발전소 사고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바로 ‘노후원전’이다. 무리하게 건설한 초고압 송전선이 결국 핵사고의 확률을 높이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그뿐만이 아니다. 박근혜 정부는 후쿠시마 사고 이후 처음으로 신고리 5, 6호기 핵발전소 건설을 위한 전원개발실시계획을 올해 1월 29일자로 승인했다. 신고리 5, 6호기가 들어서게 될 지역은 이미 핵발전소의 밀집도도, 발전소 주변의 인구밀도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대형 핵참사가 일어난 국가들의 공통점이 무엇인가? 바로 핵발전소 숫자가 많은 나라들에서 반드시 돌이킬 수 없는 사고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강행되고 있는 북경남 송전선로는 바로 신고리 5, 6호기까지도 염두에 둔 공사라는 점에서, 결국 핵사고의 위험을 가중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들을 직시할 때, 정부와 한전이 ‘전력 수급’이라는 ‘공공성’을 들먹이며 송전선로 공사를 강행하는 것은 참으로 가당치 않은 노릇이다. 진실은 정반대다. ‘공공성’의 논리를 독점한 정부와 공기업이 헌법에 적혀 있는 “우리와 우리들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침해하고 있는 것에 다름 아니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 전체를 재앙에 빠뜨리게 될 핵발전의 위험성을 증대시킨다는 측면에서 그러하다. 나아가, 실제로는 자본과 기업, 그에 기생하는 한줌 기득권 세력의 이익만을 목적으로 하면서도 공공성의 외피로 포장한 채, 진정한 공공성의 토대가 되어야 할 땅과 마을공동체, 정의와 민주주의를 우롱하고 짓밟고 있다는 면에서도 명백히 그러하다.  

오히려 밀양과 청도 삼평리 할매들이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는 현장이야말로 위험천만한 핵발전소 확대와 부정의한 에너지 정책의 악순환으로부터 우리 사회의 ‘공공성’을 탈환하기 위한 최전선인 것이다.

독재정권의 유물, 전원개발촉진법

미국은 새로운 송전선을 건설하려면, 주마다 있는 공공규제위원회, 기업규제위원회 같은 기관의 엄격한 검증을 거쳐야 한다. 송전선을 건설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자료를 제출하고 검증을 받아야 한다. 전기수요를 잘 관리하는 방법, 지역분산형 발전을 통해 소비지 가까이에서 전기를 생산함으로써 송전선을 건설하지 않는 방법 등을 검토하게 되어 있다. 이런 검증 과정에서 초고압 송전선 건설계획이 실제로 취소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는 이런 최소한의 시스템도 없다.

1979년 박정희 독재정권 시절에 만들어진 ‘전원개발촉진법’이라는 악법이 이러한 불합리한 현실의 뿌리이다. 발전소나 송전선로 부지로 지정되면, 19개 법률에 규정된 각종 규제를 피할 수 있다. 토지를 강제수용할 수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평생 살던 집, 논밭, 선산까지도 하루아침에 한전 소유가 되어버리는데, 이것을 거부할 방법이 없다. 한전은 한마디로 땅짚고 헤엄치듯이 그동안 사업을 해온 것이다. 이것은 민주주의도 정의도 아니다. 이런 현실에 눈을 감은 채 국가와 공기업이 ‘공공성’ 운운하는 것은 참으로 가증스러운 짓이다. 

작년 10월 1일 한진현 산업통상자원부 제2차관이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얘기를 했다. “(전기) 공급 위주 정책에서 수요관리 위주로, 중앙집중형에서 분산형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옳은 말이다. 바로 이것이 밀양과 청도 삼평리 주민들이 지난 10년 동안, 7년 동안 주장해 온 이야기의 핵심이다. 그렇게 되면 지금 문제 되는 저런 초고압 송전탑, 송전선로는 필요없어지는 것이다. 

이런 정부의 입장 변화는 따지고 보면 결국 밀양, 청도 삼평리 주민들이 목숨 걸고 싸우면서 이끌어낸 것이다. 국가의 에너지 정책과 전력 시스템에 대해 근본적으로 성찰하고 합리적으로 방향 전환할 계기를 만들어 준 주민들에게 훈장을 드려도 시원찮을 판이다. 아니, 그 어르신들한테 머리 숙여 감사라도 드려야 마땅하다. 정 그것도 못 하겠다면, 그동안 잘못 해온 것을 겸허하게 인정하고 사과라도 해야 옳다.

지금 마치 전쟁하듯이, 마지막까지 벼랑 끝으로 힘 없는 주민들을 밀어붙이겠다는 파렴치한 공사는 일단 멈추어야 한다. 그리고 머리 숙여 대화를 청해야 한다. 온갖 고소고발로 주민들을 겁박하고, 농성 움막을 철거하겠다고 덤벼드는 것은 더 이상 정부이기를, 공기업이기를 포기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공공성을 포기하고, 국민들을 적으로 간주하는 정부와 공기업을 우리는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 아니, 결코 용납해서는 안 된다. 

시민불복종

4월 14일 밀양 주민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한전의 퇴거 요구에 조금도 응할 생각이 없다. 우리는 비폭력 직접행동으로 저항할 것”이라고 밝혔다. 청도 삼평리 주민들 역시 어떠한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싸울 것을 결의했다. 설령 폭력적인 공권력에 의해 짓밟히는 한이 있더라도 정부와 한전에 ‘불복종’하는 것이 그동안 싸워온 대의(공공성의 회복 요구)를 지키는 것이라고 주민들은 판단한 것이다.

정치학자 하승우는 최근 출간한 저서 <공공성>(책세상 펴냄)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시장의 자유가 일방적으로 확대되는 사회에서 시민들은 어떤 선택을 내려야 할까? 시민사회의 힘을 강화하려면 때로는 국가나 시장이 만든 규칙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 그 규칙의 부당함을 주장하고 여론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때 필요한 개념이 시민불복종이다. … 지금은 시민불복종이 실정법의 차원에서 논의되고 있지만 시민불복종이야말로 공공성의 관점에서 평가받아야 한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글 제목처럼 ‘시민 정부에 대한 저항’도 가능해야 한다. 소로는 “우리는 먼저 인간이어야 하고, 그 다음에 국민이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먼저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시민불복종이야말로 소수자의 관점에서 공공성의 문제를 가장 뜨거운 이슈로 만들고 시민들의 관심을 유도하는 활동이다. (96~97쪽) 

‘국민’이기 이전에 먼저 ‘인간’임을 선언하고자 하는 시민들,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 ‘정의에 대한 존경심’이 앞서야 한다고 믿는 양심적인 시민들은, 지금 밀양의 할매들, 청도 삼평리 할매들과 손을 잡고, 결코 지지 않을 이 싸움에 연대하자! 






[변홍철 칼럼 29]
변홍철 / <하이하버연구소> 소장,  전 《녹색평론》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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