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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위기
[이재성 칼럼] 국민에 대해 책임지지 않으면서 통치하는 이상한 지배
2014년 11월 10일 (월) 10:28:52 평화뉴스 pnnews@pn.or.kr

세월호 참사 200여일이 지나서야 세월호 특별법은 유가족의 뜻과 무관하게 여야의 속물 정치에 포위되어 불구의 모습으로 타결되었다. 피를 토하는 유가족의 진상규명 기대를 저버린 조악하고 사악한 누더기 법으로 변질되어 버렸다. 이렇게 되기까지 그동안 얼마나 추악한 일들이 벌어졌던가. 더 잘 기억하기 위해서라도 지난 시간을 잠시 되돌려보자.

정치와 권력은 온갖 비열한 짓거리를 연출했고 주연도 마다하지 않았다. 권력의 나팔수들은 자발적으로 국민을 선동하는 홍위병이 되었다. 온 나라에는 “유족이 벼슬이냐” “얼마나 큰 보상과 특혜를 바라는가” “이제 그만할 때도 됐다” “세월호 때문에 경제가 안 돌아간다” 등의 유령이 배회했다. 무지한 자들이 목숨 건 아빠의 단식투쟁을 삐뚤어진 입으로 비아냥거리고 폭식투쟁으로 조롱했다. 간악한 자들이 죄 없이 죽은 아이들을 반복 살해하고, 자식과 형제자매를 산 채로 잃은 유족들 가슴에 수없는 독화살을 꽂았다.

누더기로 변질된 특별법의 합의 과정은 또 얼마나 추악하였던가. 정부와 여당은 더러운 뱃속을 다 드러냈다. 성역 없는 조사권 보장의 특별법을 약속했던 대통령은 비인간적인 차가운 민낯을 보였다. 천박한 권력은 유가족을 잔인하게 거리로 내쫓으며 “이제 그만 세월호를 잊으라”고 겁박했다. 민생을 무기로 책임을 뭉개버리고 단죄의 칼을 꺼내드는 잔혹함까지 더했다.

대한민국은 여전히 4월 16일에 머물러 있다. 특별법이 타결되었지만 유가족들은 여전히 거리를 떠돌고 있다. “언제든 찾아오라”고 약속했던 대통령은 없고,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입을 꽉 다문 오만한 여왕만 있다. 국가는 없고 보상금의 숫자와 특혜의 크기로 추악한 거래를 하려 드는 수치심과 죄의식이 박제된 권력만 있다. 국가의 위기다. 도대체 이 위기는 어디서 연유한 것일까?

국가란 무엇인가? 우리가 생각하는 정상적인 국가는 기본적으로 모든 국민들을 예측할 수 없는 운명이나 개인적인 불행, 가난, 배척, 차별, 질병, 실업, 노숙, 무지 등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로부터 안전하게 지켜주는 주권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국가는 어떤가. 날이 갈수록 국가는 국민에 대한 모든 약속을 이행할 능력이 없음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 국가는 국민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은 채 국민을 지도하고 통제하려고만 든다. 국가와 국민 간의 끈은 약해지고 사회는 응집력을 잃은 채 액체화 되어간다. 국민들의 국가의 능력에 대한 믿음과 신뢰는 서서히 잠식되어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 세월호는 국가에 대한 믿음의 끝을 보여준 변곡점이다. 국가는 국민의 안전, 건강 그리고 복지의 가장 강력한 엔진에서 국민의 안전, 건강 그리고 복지를 가로 막는 추악하고 기만적이고 짜증나는 장애물로 전락했다.

지금의 국가 위기는 정치와 권력의 분리라는 상황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의 위기와 다르다. 국가의 구조 능력에 대한 믿음을 떠받치고 있던 것은 사회 현실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두 개의 조건인 권력과 정치가 국민국가의 영토 내에서 배타적이고 불가분의 주권을 행사하는 국가의 수중에 있다는 가정이었다. 권력은 사태의 본질을 파악해 처리할 능력이라면 정치는 전 지구적 수준에서 해야 할 일들이 어떤 것이 있는지, 그 중에서 처리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고 저지하거나 원래 상태로 되돌릴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를 결정할 능력이다. 하지만 현재의 권력과 정치의 분리는 모든 위기가 당연히 필요로 하는 것, 즉 앞으로 나아갈 길을 선택하고 거기에 필요한 치료법을 적용할 수 있는 국가라는 주체의 위기로 이어진다. 주체의 위기는 별거 중인 권력과 정치가 재결합하기 전까지는 가능한 해결책을 모색하는 데 지속적으로 장애가 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지금 우리는 정치를 완전히 새로운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하는 매우 어려운 과제에 직면해 있다.

국가는 스스로의 존재이유를 입증하기 위해 공적 부채의 감축과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통해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하려 들지만 자신의 주된 역할이 예산 균형을 맞추고 성장을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에게 적절한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임을 망각하고 있다. 국가는 경제와 관련해 구체적 결정을 할 능력도 없으며, 적절한 사회 서비스를 제공할 능력도 없다. 이런 국가야말로 국민을 위한 공공복지를 제공하고 보장하는 기구가 아니라 국민에 빌붙어서 오직 자신의 생존에만 신경을 쓰는 기생충에 다름 아니다.

국민에 대해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으면서 통치하는 완전히 새롭고 이상한 지배 형태, 즉 ‘국가 없는 국가’의 모습이 지금의 대한민국이라면 과연 억지일까. 국가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과 분노가 정치적 스펙트럼 전체에 대한 불신과 분노로 확산되고 있다면 과장일까. 실패한 민주적 체제의 종식에 대한 국민들의 요구가 드높다. 일상으로 돌아가더라도 세월호를 망각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현재의 어려움은 가라앉아 굳어버린 어제의 선택들의 찌꺼기임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평화뉴스 이재성 칼럼 53]
이재성 / 계명대 교양교육대학 교수.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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