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 단 하루 축제, '집회신고'조차 힘겨운 현실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입력 2015.06.04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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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퀴어축제조직위, 기독교단체 '맞불 집회' 때문에 밤새 줄서서 경찰서 대기
조직위 "성소수자의 권리" / 기독교 "축제 막겠다" / 경찰, 양측 조정 후 6일 최종 통고


대구 중부경찰서 앞에 밤새도록 난데없이 수 십여명이 줄을 선 이례적인 광경이 펼쳐졌다.

성(性)소수자들의 권리 촉구 행사인 대구퀴어문화축제와 관련해 축제 주최측이 집회신고를 하려는데, "반동성애"를 주장하는 기독교단체가 같은 날 더 빨리 집회신고를 하기 위해 줄을 섰기 때문이다.

4일 밤 11시 대구 중부경찰서 정문 바리케이트 앞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제7회대구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위원장 배진교)' 관계자들과 대구기독교총연합회(대표회장 장희종 목사.이하 대기총) 관계자들이 먼저 줄을 서기 위해 언쟁을 벌이는 모습이다. 두 단체는 오는 7월 4일 중구 동성로 일대 집회신고를 위해 늦은 밤 중부경찰서를 찾았다. 같은 날짜, 장소에서 목적이 상반되는 집회신고를 하면 먼저 신고한 쪽에 집회에 대한 우선권이 주어지기 때문에 경찰서 입장 순서를 두고 이 같은 광경이 펼쳐진 셈이다.

대구퀴어문화축제 주최측과 기독교단체 관계자들이 4일 자정 대구중부경찰서 앞에서 먼저 집회신고를 하기 위해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2015.6.4)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대구퀴어문화축제 주최측과 기독교단체 관계자들이 4일 자정 대구중부경찰서 앞에서 먼저 집회신고를 하기 위해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2015.6.4)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집회신고는 행사 당일로부터 720시간, 한달 전부터 가능하다. 양측 모두 신고 가능한 첫날 새벽 경찰서를 찾은 이유다. 중부경찰서는 충돌을 막기 위해 정문에 바리케이트를 치고 순서대로 입장을 시킬 방침이라며 질서유지를 통보했다. 이례적으로 방문객 인적사항을 기록하고 방문증도 줬다. 50대 경찰관 A씨는 "20년 넘는 경찰생활 동안 이런 광경은 처음본다"며 "찬반을 떠나 괴상한 풍경"이라고 했다.

자정이 가까워 올수록 줄은 더 길어졌다. 대기총에서는 20~30대 청년들이 뒤늦게 도착해 줄을 서기도 했다. 이들은 서로에게 "목사님, 장로님, 집사님, 권사님"이라고 부르며 인사했고, 경찰에게는 "우리가 먼저 왔으니 먼저 들여보내달라"는 부탁도 덧붙였다. 실제로 대기총 관계자 5~6명은 4일 집회 신고를 위해 지난 2일부터 이틀 동안 중부경찰서 정문 앞 인도에서 돗자리를 깔고 노숙을 했다.

4일 자정이 되자 대기총 한 관계자가 집회신고를 위해 경찰서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입장 도중 기자들과 퀴어문화축제 주최측에게 "내가 서울 남대문에서도 동성애 축제를 막았다", "동성애도 문제지만 동성결혼이 사회기반 전체를 흔든다"며 "기자들도 보도 똑바로 해라. 목사님과 신자들만 나쁜 사람으로 매도하지 말라"고 소리쳤다. 이어 대기총 관계자 4명의 집회신고는 4일 새벽 2시까지 이어졌다.

중부경찰서 정문에 30여명의 사람들이 줄을 섰다(2015.6.4)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중부경찰서 정문에 30여명의 사람들이 줄을 섰다(2015.6.4)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퀴어문화축제 주최측은 새벽 2시30분이 다 돼서야 경찰서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들은 새벽 3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집회신고를 하지 못하고 내려왔다. 앞서 대기총 관계자들이 7월 4일 2.28공원에서 대구백화점, 대우빌딩, 시청에서 종각, 삼성생명에서 경삼감영공원 등 동성로 일대 6곳에 대한 집회신고를 했기 때문이다. 당초 동성로 일대 18곳을 행사장으로 고려했지만 대기총이 동성로 대부분 장소에 대한 집회신고를 해 후순위로 밀려 신고서를 내도 당일 행사 여부가 불투명해진 것이다.

신고를 하러 온 서창호 인권운동연대 상임활동가는 "기독교단체가 행사 방해 목적을 위한 유령집회를  신고했다"며 "성소수자에게 주어진 단 하루의 축제를 막기 위한 차별과 혐오, 편견을 온 몸으로 증명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7년째 이어져 온 지역의 유일한 성소수자 축제가 무너질 위기인데 경찰들은 소수자들을 보호하기는커녕 특정 세력에게 유리한 팁을 준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했다.

중부경찰서 앞에서 낮부터 기다리는 기독교단체 회원(2015.6.3) / 사진.평화뉴스 박성하 인턴기자
중부경찰서 앞에서 낮부터 기다리는 기독교단체 회원(2015.6.3) / 사진.평화뉴스 박성하 인턴기자

그러나 이 같은 상황에 대비해 퀴어문화축제조직위는 이날 자정 두 팀으로 나눠 대구지방경찰청에도 집회신고를 했다. 중구 내에서만 축제를 할 경우 중부경찰서에만 신고하면 되지만, 축제 후 퍼레이드를 할 경우 중구에서 수성구, 중구에서 남구 등 장소가 두 곳으로 중첩돼 반드시 지방경찰청에 신고해야 하는 법을 대안으로 생각한 것이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제6조에 따라, 집회 장소가 두 곳 이상의 경찰서의 관할에 속하는 경우에는 관할 지방경찰청장에게 신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이에 따라 퀴어문화축제조직위는 7월 4일 중구 대구백화점에서 남구 명덕네거리, 중구 2.28공원에서 수성구 대구은행 본점, 중구 중앙파출소에서 남구 명덕네거리 등 모두 24곳에 대한 집회신고를 대구지방경찰청에 했다. 하지만 행사 여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목적이 상반되는 집회신고가 겹칠 경우 경찰이 조정을 통해 48시간 이후에 각 단체에 행사 여부를 알려주기 때문이다. 기한은 오는 6일까지다.

특히 최근 서울지방경찰청과 남대문경찰서는 오는 28일 서울광장에서 예정된 '퀴어퍼레이드'를 기독교단체와의 집회 장소 겹침을 이유로 퀴어축제 측과 기독교단체 모두에게 옥외집회금지 통고서를 보냈다. 때문에 서울처럼 대구에서도 서울처럼 불허 결정이 날 경우 퀴어문화축제조직위는 기자회견과 집회을 열고 변호인단을 꾸려 행정소송을 진행하는 등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할 방침이다.

배진교 대구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장은 "올해로 7년째 지역 유일의 성소수자 축제가 일부 혐오세력의 방해 때문에 멈출 수 없다"며 "무슨 일이 있어도 무사히 행사를 진행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제6회 대구퀴어문화축제 참가자들의 퍼레이드(2014.6.28)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제6회 대구퀴어문화축제 참가자들의 퍼레이드(2014.6.28)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대구지방경찰청 관계자는 "상반된 집회가 같은 날짜와 장소에 신고돼 일단 겹치는 곳을 기준으로 조정해야 한다"면서 "양측이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고 팽팽히 맞설 경우 경찰이 이틀간 조정해 행사 여부를 통고하는 수 밖에 없다. 한쪽만 행사를 할 수도, 모두 금지 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대구퀴어문화축제조직위는 오는 9일 오후 대구 중구청에서 윤순영 구청장과 면담을 갖고 대구백화점 앞 동성로 야외무대 사용 불허와 관련한 얘기를 나눌 계획이다. 이후 조직위는 윤 구청장이 불허 입장을 고수할 경우 중구청 앞에서 "불허 철회, 허가 촉구" 집회를 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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