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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공간'으로 변한 잊을 수 없는 그날의 아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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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 중앙로역에 '지하철참사' 현장 보존 27m 추모벽 설치...유족 "오직 안전을 위하여"


대구지하철참사 사고 현장을 보존한 추모벽 앞에 선 시민(2015.12.28)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대구지하철참사 사고 현장을 보존한 추모벽 앞에 선 시민(2015.12.28)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28일 오후 대구도시철도 1호선 중앙로역 지하 2층. 그날의 아픔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온통 검게 그을린 벽. 재로 뒤덮인 바닥. 녹아 흘러내린 액자 프레임과 녹으면서 밖으로 튀어나온 광고판 전선. 빈 공중전화 부스에는 누구에게 걸려다 말았는지 녹아버린 수화기만 덩그라니 놓여있다. 그 아래 전화번호부는 다 타버리고 반만 남았다. 옆에 놓인 사물함은 원래 색을 알 수도 없을 만큼 검게 변했다.

화재참사 당시 1080호 전동차 객차 연결 통로 출입문 손잡이도 잿빛으로 변해 그 모습을 드러냈다. 벽 곳곳에는 192명의 희생자 이름들이 빼곡하게 적혔다. 그 앞에는 추모글을 적을 수 있는 전자 키보드가 놓였다. 지하철 역사를 나오는 학생들은 삼삼오오 모여 고이 잠든 이들에 대한 추모글을 한 마디씩 남겼다. 다시 그 날을 떠올리게 하는 아픔에 차마 보존 현장에 들어 오지 못하는 이들도 있었다.

검은 재가 가득 쌓인 전화부스(2015.12.28)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검은 재가 가득 쌓인 전화부스(2015.12.28)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모든 공간이 검게 변한 27m 벽. 검은 재를 스쳐 손가락으로 만든 하얀 글귀들은 여전히 그날의 애처로움을 간직하고 있다. '너를 한 번만 다시 보고싶다', '사랑한다', '은영이 언니 미안해', '우리 지은이 너무 보고 싶구나', '미안하다', '고통 없는 곳에서 고이 잠드시길', '뺀질아 어디있니'. 반대쪽 벽에는 '대구 시민여러분 이날을 잊지 맙시다'라는 글귀와 함께 생명의과 안전을 강조하는 글귀들이 새겨졌다. 

다시 검은 벽 앞에 선 유가족들은 선명히 떠오르는 아픔의 현장에 서서 결국 오열하고 말았다.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던 29살 막내딸을 잃은 60대 한 여성은, 유리벽 안에 사고 당시 완전히 타버린 전광판을 보며 벽을 잡고 딸의 이름을 불렀다. 눈물을 닦던 손수건은 또 다른 눈물로 금세 젖고 말았다.  

추모벽에 새겨진 희생자들의 이름(2015.12.28)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추모벽에 새겨진 희생자들의 이름(2015.12.28)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그는 "얼마나 뜨거웠을까. 엄마 이름을 얼마나 불렀을까. 딸아 미안하다. 보고싶다"며 가슴을 치며 통곡했다. 이어 "너무 아프다. 당시 고통이 다시 살아나는 것 같다"며 "그렇지만 오직 안전을 위하여 시민들이 꼭 이곳을 한 번은 방문해 우리 딸을, 희생자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눈물로 호소했다.

지난 2003년 2월 18일 오전 9시 53분 대구시 중구 성내동 지하철 1호선 중앙로역에서 발생한 지하철 화재참사 사고 당시 현장을 보존한 일부 구간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대구시는 사고 12년만인 28일 오후 대구지하철 1호선 중앙로역사 지하 1층에서 '기억의 공간' 제막 행사를 진행했다.

대구지하철 1호선 중앙로역사 '기억의 공간' 추모벽(2015.12.28)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대구지하철 1호선 중앙로역사 '기억의 공간' 추모벽(2015.12.28)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기억의 공간은 중앙로역사 지하 2층에 설치된 추모벽으로 길이 27m, 폭 3m에 해당하며 사고 현장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추모벽은 모두 유리벽 안에 설치돼 시민들 누구나 자유롭게 관람이 가능하다. 이 공사는 지난해 9월 시작해 1년만인 올해 끝났다. 사업비는 국민성금 기금 5억2천만원이 들었다.

이날 행사는 오후 4시30분부터 2시간가량 진행됐으며, 권영진 대구시장과 이동희 대구시의회 의장, 윤석기 대구지하철참사 희생자대책위원회를 비롯한 유족과 시민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권영진 시장은 "지난날의 아픔과 갈등을 해소하고 성찰과 화합의 장으로 승화시킬 추모벽을 통해 대구가 미래의 생명을 중시하는 안전한 도시로 거듭날 수 있도록 시민들의 많은 협조를 당부드린다"고 요구했다.

27m 추모벽은 유리에 쌓여 시민들 누구나 관람이 가능하다(2015.12.28)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27m 추모벽은 유리에 쌓여 시민들 누구나 관람이 가능하다(2015.12.28)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지하철참사 추모벽 '기억의 공간' 제막식 행사(2015.12.28)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지하철참사 추모벽 '기억의 공간' 제막식 행사(2015.12.28)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윤석기 위원장은 "이 공간이 뒤늦게 생겨 다행"이라며 "시민들이 이 현장을 지날 때마다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안전을 다짐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어 윤 위원장은 추모벽 설치와 유가족과의 관계에 있어서 대구시에 대한 아쉬움도 드러냈다. "이 곳이 생긴다는 것도 대구시가 일방적으로 통보해 뒤늦게 알았다"며 "대구시는 어떻게 보면 가해자인데 한과 응어리를 풀어내는 것보다 오히려 이를 키우는 것은 아닌지 유족과의 소통이 부족해 답답할 때가 많다"고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한편, '대구지하철참사'는 지난 2003년 2월 18일 대구도시철도 1호선 중앙로역에서 일어난 방화에 의한 화재 사건으로, 2개 전동차가 모두 불탔고 192명이 사망했으며 151명이 부상을 당했다. 이후 대구에서는 해마다 사고 발생 당일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는 추모행사가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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