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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앓이 10년, 멈춘 시간 속에서...
[대구지하철참사 10년] 추모식 / 유족 등 200여명 추모...김범일 시장 7년째 '불참' 비난
2013년 02월 18일 (월) 18:34:48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pnnews@pn.or.kr

   
▲ 눈물을 흘리는 유족대표 황명애씨(2013.2.18.대구문화예술회관 비슬홀)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10년 전 오늘 구겨진 시계처럼 멈춰버린 시간으로 남은 딸 임아. 가슴에 너를 숨 쉬게 두고 싶은데 10년 전처럼 오늘은 엄마에게 잔인한 날인가 보다. 18일 아침. 대학 입학을 앞두고 아르바이트를 간다며 길을 나선 너. 뒷모습을 마지막으로 엄마는 널 잃어버렸다. 어리석은 엄마는 임이가 억울하게 재로 변해버린 지하 위에서 살아 있길 기도했다. 자랑스러운 임이를 엄마의 응원군이었던 임이를..."

지난 2003년 192명의 생명을 앗아간 대구지하철참사에서 딸 한상임(당시 19살)씨를 잃은 황명애씨는 추도사를 읽으며 복받쳐 오르는 감정을 이기지 못했다. "가슴앓이 10년간 멈춘 시간 속에서 나의 가족 임이를 가슴으로 키워왔다"며 "이런 내가 미친 것 같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10년 전 가족을 잃은 슬픔을 곱씹으며 황씨가 울음 섞인 추도사를 이어가자 다른 유족들도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 '대구지하철 참사 10주기 범시민 추모식'에서 묵념 중인 시민들(2013.2.18)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2.18 대구지하철참사 10주기 추모위원회'가 18일 오전 대구문화예술회관 비슬홀에서 10년 전 오늘 목숨을 잃은 고인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대구지하철 참사 10주기 범시민 추모식'을 열었다. 추모식에는 유족을 비롯해 민주통합당 홍의락 의원, 백현국 대구경북진보연대 상임대표 등 시민 250여명이 참석했다. 그러나, 김범일 대구시장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불참'을 통보해 2006년 당선된 이후 7년 째 참석하지 않았다. 

추모식은 참사 발생시각인 오전 9시 53분, 1분 동안 사이렌이 울리면서 묵념으로 시작됐다. 마임이스트 조성진씨가 위패 앞에서 '넋 모시기' 퍼포먼스를 진행했고, 서준홍 신부님(대구교구청), 오세원 목사님(칠곡교회), 효신스님(동화사)이 종교의식을 거행했다. 또, 홍의락 의원, 백현국 상임대표, 후지사키 미츠코(일본JR 후쿠치야마 탈선사고 유족대표)씨, 황명애씨가 추도사를 이어갔으며, 추모 노래와 넋 보내기, 분향.헌화도 이뤄졌다. 유족들은 추모식 내내 고인의 이름을 부르며 눈물을 흘렸다.  

   
▲ 추모식 내내 눈물을 흘렸던 유족들(2013.2.18)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윤석기 추모위 대표는 "전형적인 안전 불감증으로 인한 참사였다. 시민들의 안전보다 소중한 가치는 없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오늘 대구시장과 여당 측 인사는 단 한명도 오지 않았다"며 "절대 권력을 가진 새누리당은 당연히 왔어야 했다.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홍의락 의원은 "10년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는가. 우리는 반성해야 한다. 반성이 없으면 변화가 없다. 오늘 이 순간만이라도 가슴에 손을 얹어야 한다"고 했다. 또, "그것만이 희생자와 유족, 부상자들에 대한 보답"이라며 "안전한 사회로 만들기 위해 정부와 지자체, 시민들이 힘을 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희생자 위패 앞에 헌화를 하고 묵념 중인 시민들(2013.2.18)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백현국 상임대표는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이 먼저인 것 같다. 대구시민 모두가 힘을 합치고 단결해 다시는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하자"고 말했다. 반면, "김범일 시장과 여당 의원들은 단 한명도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며 "영령도 슬픔을 느낄 것"이라고 안타까움을 전했다.

후지사키 미츠코씨는 "왜 나의 사랑하는 가족은 죽을 수밖에 없었는가. 슬픔은 여전히 남아있다. 대구지하철 참사 유가족도 같은 심정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고 이후 일본에서는 여전히 안전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며 "국가가 사회 위험을 방치하며 국민 안전을 신경 쓰지 않고 있다. 한국도 일본도 모두 철도안전을 고민할 때"라고 강조했다.

   
▲ 마임이스트 조성진씨의 '넋 보내기'(2013.2.18)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이날, 추모위는 오전 추모식에 이어 오후 12시 30분 2.18추모공원(팔공산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에서 참배를 했으며, 오후 1시 30분부터 6시 30분까지는 경북대학교 사회과학대 강당에서 '거대도시의 안전성', '트라우마 그 후', '참사 10년, 지금 안전한가?'를 주제로 10주기 추모 학술대회를 열었다. 또, 참사가 난 중앙로역 아카데미극장 앞 지하 1층에는 분향과 헌화를 할 수 있는 분향소를 마련했다.

한편, '대구지하철참사'는 지난 2003년 2월 18일 오전 9시 53분 대구도시철도 1호선 중앙로역에 정차한 전동차에서 한 정신지체장애인이 휘발유에 불을 붙이면서 마주오던 전동차까지 불에 타 일어난 화재 사건으로, 2개 전동차가 모두 불에 타 192명이 사망했으며 151명이 부상을 당했다.

엄마의 가슴 속에서 딸을 꺼내며...
유족대표 황명애씨 (故 한상임씨 어머니)의 편지


임아, 나의 딸 임아. 10년 전 오늘 구겨진 시계로 멈춰버린 시간으로 남은 우리 딸 임아.
지난 10년 이 엄마는 너를 이 가슴 속에서 아무도 몰래 키워왔구나. 그런데, 오늘 추도사란 이름으로 너를 꺼내보려 한다. 그저 이렇게 이 엄마의 가슴 속에서 숨 쉬게 두고 싶은데 10년 전 그날처럼 이 엄마에게는 아주 잔인한 날인가 보다.

임아, 너는 1984년 5월 24일 고귀한 선물로 엄마에게 왔단다. 50개월이 되자 한 발을 떼고 뱅뱅 돌고 5살 땐 울다가 갑자기 눈을 반짝거리며 '엄마, 왜 눈물은 짜요?'라고 물어서 엄마를 당황하게 만들기도 했지. 8살이 돼서는 반장 선거에 떨어졌다고 펑펑 우는 너에게 '임아, 선거에서 떨어진 것은 다음에 떨어진 친구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어서 아주 좋은 경험이고 선거는 또 다음에 기회가 있잖아'라는 말에 바로 눈물을 거두었지. 12살이 되어서는 붓글씨를 배워서 '엄마, 사랑해요'라고 써 펼쳐 보여 엄마를 기쁘게 했었다.

그리고 중.고등학교를 깔끔하고 야무지고 예쁘게 자라주어 '상임이 어머니'라는 말이 엄마는 자랑스럽고 흐뭇했었다. 과외한번 안하고도 대학에 떡하니 붙어서 어릴 때부터 꿈이었던 선생님이 되겠다는 야무진 꿈을 꾸는 너가 자랑스러웠다. 그러나, 2월 12일 졸업을 하고 불과 6일 만에 무서운 화마는 나의 꿈, 나의 자랑스러운 딸을 삼켜버렸다. 18일 아침. 허리까지 오던 긴 머리를 말리는 그 뒷모습을 마지막으로 이 엄마는 너를 잃어버렸다.

10시 40분. '어머니 저 상임이랑 아르바이트 같이 하는 언닌데요. 임이가 아직 출근을 안했어요'라는 전화를 받고 나는 이렇게 답했지. '9시 30분 쯤 나갔는데', 그러자 '중앙로역에서 사고가 났어요. 한번 알아보세요'라고 그 말에 엄마는 임이에게 전화를 걸었고, 꽃 같은 내 딸 임이는 대답이 없었다. 택시를 타고 가며 이 엄마는 차량 접촉 사고려니 했다. 그러다 라디오 뉴스에 중앙로역에서 안심역으로 가는 지하철에서 사고가 났다더구나. 우리 임이는 반대편이니까 괜찮겠구나 하고 안도를 했었지.

하지만, 대구백화점 앞에 와서 검은 연기를 보는 순간 그제야 이 엄마는 걸음을 재촉했다. 한일극장 앞에 설치된 사고현황 부상자 명단에 네 이름이 있어야 다행인지 없어야 다행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곳에서 나는 계속 빌었다. 임아, 네가 누구지? 이 엄마의 희망이고 자랑인데, 야무진 너는 할 수 있어. 그 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어. 힘내라. 우리 딸 상임아. '하늘에 계신 엄마, 아버지 보이시죠? 당신 손녀 지켜주세요'라고 기도하고 미친 듯 중얼거렸다.

그러나, 4시가 되자 더 이상 인명 구조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 엄마는 주저앉아버렸다. 그 후 알았지만 너의 동료로부터 전화를 받았던 그 순간 이미 우리 고운 딸 임이는 한 줌의 재로 남겨져 버렸다. 이 어리석은 엄마는 임이가 억울하고 분하게 재로 변해버린 그 지하 위에서 살아 있기를 기도했었다. 이렇게 억울하게 고운 임이를 자랑스러운 임이를 이 엄마의 절대 응원군이었던 임이를 잃어버렸는데...

임아, 가슴앓이 10년 동안 엄마는 우리 고운 딸 멈춰버린 시간을 가슴 속에서 키워왔었지. 우리 고운 딸 임이는 너의 멈춰버린 꿈을 이 엄마가 어떻게 키워왔는지 알고 있지? 2003년 3월에는 엄마가 약속한 주름치마 원피스를 입혀 당당하게 대학에 입학시키고 어느 날은 캠퍼스에서 남자친구랑 데이트를 하고, 어느 날은 미용실에서 헤어스타일을 바꾸고, 봄이 오면 노랑 카디건을, 겨울이면 까만색 반코트에 빨강 벙어리장갑을 우리 딸에게 입혀왔다.

그리고, 대책위 사무실에 있는 우리 고운 딸 임이 영정을 바라보며 대화한다. 어느 날은 나의, 어느 날은 너의 눈망울을 보며 따라 웃는다. 어느 날은 심통이 났다. 그러면 이 엄마는 안절부절 화가 난다. 어느 날은 네가 운다. 그러면 이 엄마는 가슴이 무너져 내린다. 그러다, 문득 내가 미친 게 아닐까 싶더라. 그래도 10년을 이 엄마는 상상 속에서 우리 임이를 키워왔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임용고시를 치고 합격하여 교사로서 당당히 해맑게 웃는 너를 키워왔었다...이런 엄마가 미친 것일까? 이렇게 만든 대구시가 미친 것일까? 잃어버린 10년을 상상 속에서 살아야 하는 시간들이 억울하고 분하다.

어처구니없는 아픔을 다시 겪지 말자고 다짐하며 대구시와 추모 사업을 약속했다. 임아, 지금 네가 잠들어 있는 팔공산 자락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는 대구시가 자신들의 잘못에 대한 반성과 내일의 안전에 대한 다짐으로 만들어진 추모공원인 것을 알지? 대구시는 우리 예쁜 임이와 함께 숨져간 192명을 위하여 수목장을 해주기로 했었지. 이미 우리 임이처럼 30여명이 옮겨와 잠들어 있고 언젠가는 모두 함께 편히 쉴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진실을 겁내 유족을 고발한 김범일 시장은 우리에게 방화범 보다 더 무서운 존재였지만 법원은 우리 유족에게 무죄를 확인해줬다. 임아, 부디 김범일 시장님이 용기를 내어 약속한 추모 사업을 완결할 수 있게 같이 빌어다오. 임아, 10년을 하루같이 편히 잠들기를 빌어온 이 엄마는 내년 오늘에는 꼭 희생자공원 위령탑 묘역에서 절할 수 이 있길 기도한다. 내 딸 임아, 그 때까지 힘내. 가슴 속에서 예쁘게 자라고 있는 내 딸 임아.

사랑한다. 임아 사랑한다. 내 딸, 임아. 사랑한다.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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