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지하철 참사, 장소만 다를 뿐 세월호와 똑같다"

평화뉴스 김지연 수습기자
  • 입력 2016.02.18 19:2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3주기] 200여명 추모...유가족 '안전재단' 설립 촉구 / 권영진 시장 "정부와 협의하겠다"


"피붙이가 몇 천도 쇠붙이를 붙잡고 살아보려 몸부림친 무서운 시간을 어떻게 모른척 하겠는지요"

대구지하철 참사 13주기를 맞은 18일 시인 신달자씨는 추모시 '당신은 그날을 기억하십니까'를 통해 희생자들을 위로했다. 13주기 추모식에 참석한 대구지하철 참사 유가족들은 여전한 아픔에 침통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위패 대신 마련된 빛바랜 사진의 얼굴들을 어루만지며 떠나간 이들의 이름을 불렀다.

대구지하철 참사 13주기 추모식, 영정사진 앞에서 우는 유가족(2016.2.18.대구도시철도공사) /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수습기자
대구지하철 참사 13주기 추모식, 영정사진 앞에서 우는 유가족(2016.2.18.대구도시철도공사) /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수습기자

'2.18 대구지하철참사 13주기 추모위원회'는 18일 달서구 상인동 대구도시철도공사 강당에서 대구지하철 참사 13주기 추모식을 열었다. 이 자리에는 유가족과 세월호·상인동가스폭발·씨랜드화재사고 유가족 대표 등 180여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당시 참사로 목숨을 잃은 희생자 192명의 넋을 위로했다.
 
특히 이날 추모식에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인 유경근씨가 참석해 대구지하철 참사 유가족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유씨는 "사고 당시 울린 사이렌 소리를 13년이 지난 지금 들으며 당시 희생됐던 분들이 얼마나 외롭고 고통스러웠을까 생각했다"며 "13년전 발생한 대구지하철 참사와 세월호 참사는 컴컴한 지하와 바다 속이라는 장소만 다를뿐 모든 것이 똑같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또 "희생자를 위로하는 것은 1년에 한 번 추모식에 참석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는 이런 아픔이 일어나지 않게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아니겠냐"며 "떠나갈때 잘 가라는 인사는커녕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헤어진 이들의 아픔에 다시 한 번 깊은 위로를 전한다"고 했다. 이어 "희생자와 유가족의 마음을 달랠 수 있는 것은 보상이 아니라 기억하는 것"이라며 "그들을 잊지 않고 기억해달라"고 호소했다.

이날 추모식에는 유가족 등 180여명이 참석했다(2016.2.18) /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수습기자
이날 추모식에는 유가족 등 180여명이 참석했다(2016.2.18) /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수습기자

대구지하철 참사와 세월호 참사는 여러 지점에서 비슷하다. 불이 난 상황과 배가 기울어진 상황을 파악하지 못해 방송으로만 교신을 주고 받는 안일한 대처로 수많은 목숨을 앗아갔다. 지하철 기관사 역시 세월호 선원들과 마찬가지로 불이 나자 마스터키를 뽑고 승객을 둔 채 먼저 빠져나왔다. 사고 후에도 지하철 운행을 재개하기 위해 사고 현장을 물청소를 하는 등 희생자와 유가족 아픔을 어루만져주지 못했다. 시스템에 의한 사고, 참사 후 제대로 된 대책을 세우지 못한 점에서 비판을 받아 왔다.

추모식은 당시 대구지하철 참사 발생시각인 오전 9시53분, 사이렌 소리와 함께 묵념으로 시작됐다. 참석자들은 종교의식과 공연, 합창으로 희생자들의 넋을 기렸다. 권영진 대구시장과 박영로 대구지하철참사 유족대표, 유경근 세월호 유가족 대표, 정학 참길회 대표의 추도사도 이어졌다.

희생자 영정사진 앞에 묵념하는 추모식 참석자들(2016.2.18) /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수습기자
희생자 영정사진 앞에 묵념하는 추모식 참석자들(2016.2.18) /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수습기자

유인상 기독교총연합회 증경회장은 "유족 아픔을 위로하고 생명을 존중히 여기는 정책을 우선해야 한다"고, 이상혜 가톨릭근로자회관 신부는 "희생자들이 영원한 안식을 얻기를 기도한다"고 말했다. 정학 참길회 대표는 "사랑하는 이를 잃은 아픔에 대해 대구시민으로서 깊은 위로의 말을 전한다"고 했다. 

추모식에서는 위로의 말뿐만 아니라 대구지하철 참사 공익재단인 '2.18 안전문화재단' 설립 허가 지연에 대한 질책도 쏟아졌다. 13년전 대구지하철 참사로 딸 박희영(당시 20살)씨를 잃은 유족대표 박영로씨는 "13번째 맞는 추모식이지만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며 "일본은 안전한 지하철을 만들기 위해 대구지하철 사고현장을 방문하고 교훈삼아 성공적으로 안전지하철을 만들었지만, 사고 당사자인 우리는 팔공산 안전 테마파크마저 유가족들의 요구로 겨우 쫓기다시피 지었다"고 대구시를 비판했다.

이어 "막혀버린 방화문에 갈길을 잃고 화마 속에서 살길을 찾아 무수히 발자국만 남기고 돌아선 그들이 없었다면 대구지하철은 지금껏 변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대구시는 고인 남긴 교훈을 무시하고 세월을 보내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또 "과거를 반성하지 않고서 미래는 없다며 "하루빨리 공익안전재단을 설립해 고인에게 속죄하는 길이 대구시민의 안전을 위한 길"이라고 강조했다.

추모식에 걸린 '고운님들이여, 생명의 별밭에서 편히 쉬소서' 현수막(2016.2.18) /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수습기자
추모식에 걸린 '고운님들이여, 생명의 별밭에서 편히 쉬소서' 현수막(2016.2.18) /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수습기자

권영진 대구시장은 "그 어떤 위로의 말로도 위안이 되지 않겠지만 그날의 아픔을 잊지 않기 위해 부끄러운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대구시가 생명존중과 시민안전에 힘쓰겠다"면서 "안전재단이 현재까지 설립되지 못한 것에 대해 안타깝다. 중앙정부와 협의해 재단 설립 허가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한편 '대구지하철참사'는 2003년 2월 18일 오전 9시 53분 대구도시철도 1호선 중앙로역에 정차한 전동차에서 한 정신지체장애인이 휘발유에 불을 붙이면서 발생했다. 마주오던 전동차까지 불길이 번져 2개 전동차가 불에 타 192명이 숨졌으며 151명이 부상 당했다.

저작권자 © 평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지금 주목 받고 있어요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