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원전·방폐장 옆 작은 해안마을 뒤덮은 '지진 공포'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입력 2016.09.22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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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남면 나아리 주민들 "안전하다더니 거짓말...사지(死地)" / 26일부터 4백여명 대책촉구 항의집회


월성원전 인근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에 주민들이 내건 현수막(2016.9.2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월성원전 인근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에 주민들이 내건 현수막(2016.9.2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방금 느꼈는교? 또 흔들린다. 옴마야. 기자양반 거 밖에 서 있지말고 안으로 들어오소. 얼른!"

21일 오전 11시 53분. 경북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에 사는 박정선(79) 할머니는 다급히 소리쳤다. 최근 계속된 경주 지진과 관련해 진앙지에서 주민들과 인터뷰를 진행하던 중 다시 또 땅이 흔들렸다.

할머니는 내 손을 잡고 바닥에 주저 앉았다. 시선은 바닥과 천장으로 정신없이 흩어졌다. 지난 12일과 19일처럼 강진은 아니었지만 진동이 멈춘 후에도 할머니 얼굴에서 공포는 사라지지 않았다.  

여진으로 흔들린채 사진에 나온 박정선 할머니(2016.9.2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여진으로 흔들린채 사진에 나온 박정선 할머니(2016.9.2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지진 발생 후 일시 가동 정지된 월성원전 1~4호기(2016.9.2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지진 발생 후 일시 가동 정지된 월성원전 1~4호기(2016.9.2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10여분 뒤 내가 든 스마트폰에 국민안전처로부터 온 긴급재난문자 알람이 왔다. 오전 11시 53분 경주시 남남서쪽 10km 지역에서 규모 3.5 지진이 발생했다는 내용이다. 기상청은 12일 경주에서 발생한 규모 5.8 지진의 여진이라고 했다. 그러나 박 할머니의 2G폰에서는 어떤 경고음도 울리지 않았다.

"아고 이러다 죽겠다. 땅은 계속 흔들리고 내 명에 다 못살겠다. 죽은 날짜 받아놓은 것도 아이고. 이래 우예 사노. 영감은 저 세상 가뿌고 자식들은 울산, 대구 살고 거의 혼자 집에 있는데 무섭다"

할머니 걱정은 지진뿐만이 아니다. 집에서 1km 떨어진 곳에는 월성원자력발전소 4기와 신월성원전 2기 등 원전 6기가 있다. 또 3km 떨어진 양북면 봉길리에는 중·저준위 방사능폐기물처리장이 있다.

지진 발생 후 파손된 인도를 공사하는 인부들(2016.9.21.경주 황남동)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지진 발생 후 파손된 인도를 공사하는 인부들(2016.9.21.경주 황남동)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원전 때문에 더 불안해. 한수원은 이상 없다고만 하지. 근데 그걸 믿겠어? 여진만 4백회 넘었는데 대피시설이 어딘지도 모르고 경고음도 없고...앞으로 더 큰 지진이 온다는데 확 터질까봐 무섭다" 

흔들리는 땅 위에 세운 원전과 방폐장으로 892명이 사는 작은 해안마을 경주 양남면 나아리 주민들의 불안감이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지진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지만 주민들 대다수가 대피시설이 어디인지도 모르고, 지진대피 매뉴얼이나 긴급물품 사용법도 제대로 교육받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지진에 안전하다던 경주는 이달에만 수 차례 지진이 발생해 더 이상 안전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흔들리는 땅위에 원전과 방폐장, 주민들은 계속 공존하고 있다. 때문에 주민들은 피폭, 방사능, 해일 등의 무시무시한 단어를 쏟아내며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공포가 작은마을을 뒤덮은 셈이다. 

한국수력원자력월성본부 근처에 놓인 '탈핵' 촉구 피켓(2016.9.2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한국수력원자력월성본부 근처에 놓인 '탈핵' 촉구 피켓(2016.9.2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원전과 방폐장 옆 작은 해안마을 양남면 나아리 입구(2016.9.2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원전과 방폐장 옆 작은 해안마을 양남면 나아리 입구(2016.9.2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나아리 산중턱에 사는 마을회장 한광수 할아버지 집 외벽에는 지진으로 여기저기 금이 갔다.
"사람 안다쳤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오늘도 여진이 나 불안하다. 원전이 동네 앞에 나가면 훤히 보이니 더 불안해. 자식들은 전화오고. 우예야 되노. 도망도 못가고. 지진에 안전하다더니 배신감만 든다"

오후 5시 월성원전 4기가 훤히 보이는 나아해변 앞 슈퍼에는 주민 4명이 탁주를 마시며 지진 얘기를 하고 있었다. 나아리가 고향인 김안교(60.가명)씨는 이렇게 큰 지진이 처음이라고 털어놨다.

원전서 914m 이상 거리에 사는 주민의 이주를 촉구하는 현수막(2016.9.2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원전서 914m 이상 거리에 사는 주민의 이주를 촉구하는 현수막(2016.9.2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지진에 잠 못들고 원전에 불안하고 방폐장 때문에 골치아프다. 대피교육 받은 적도 없다. 이주 시켜줘야 하는 것 아니냐. 원전 가동 중지만 하면 다냐. 지진나 터지면 다 죽는데. 사지(死地)에 갇힌 기분이다. 공포를 넘어 배신감이 든다. 정부가 방치한 것이나 다름없다. 거짓말한거다."
 
지진과 원전 공포에 대해 얘기하는 나아리 주민들(2016.9.2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지진과 원전 공포에 대해 얘기하는 나아리 주민들(2016.9.2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나아리에 걸린 고준위 방폐장 설치 결정 철회 현수막(2016.9.2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나아리에 걸린 고준위 방폐장 설치 결정 철회 현수막(2016.9.2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이 같은 상황에서 정부가 이 지역 내에 오는 2050년까지 중·저준위뿐 아니라 고준위방사성 폐기물 임시저장까지 강행하기로 결정해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때문에 양남면 나아리 주민 4백여명은 오는 26일 오전 8시 마을회관 앞에서 시작해 월성원전본부 남문 앞까지 항의 집회를 벌인다. 이들은 지진 대책과 고준위방폐장 결정 철회를 촉구하며 한 달가량 집회에 나설 예정이다.

이날 오후 마을 긴급회의에 참석한 나아리 주민 김만용(70)씨는 "이대로 안된다. 무슨 수를 내야 한다. 국회의원이나 단체장을 만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나아리 주민이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원전에 방폐장까지 끼고 사는 우리 동네에 지진이 계속되는데 이대로 안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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