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운명의 하루 전 대구 민심 "치떨리는 분노와 배신감"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입력 2016.12.08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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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표결 D-1 / 첫 투표한 20대 "세월호 무능에 분노"·3040세대 "아직도 반성안해, 무조건 탄핵"
경상감영공원 어르신·칠성시장 상인들도 "대구에 똥칠", "내 손잡고 한 약속 다 어겨...내려와야"


지난 대선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동성로 유세(2012.12.12)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지난 대선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동성로 유세(2012.12.12)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내 손잡고 좋은 나라 만들겠다고 약속해놓고 다 어겼다. 이제 그만 내려와야지"

대구 칠성시장 상인 한수옥(66)씨는 8일 탄핵 표결 하루 전 이 같이 말했다. 그는 4년 전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칠성시장을 방문했을 때 그녀의 손을 잡은 순간을 기억하며 더욱 분노했다. "아버지 닮아 잘 할 거라 생각했다. 홀몸이라 비리도 없겠다 싶어 표 줬다. 평생을 좋아했다. 그런데 최순실인지 뭔지의 꼭두각시라니. 대구에 똥칠했다. 남은 건 배신감 뿐"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탄핵 표결 하루 전 착잡한 표정의 대구 칠성시장 상인들(2016.12.8)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탄핵 표결 하루 전 착잡한 표정의 대구 칠성시장 상인들(2016.12.8)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칠성시장 상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현 정국에 대해 얘기 중이다(2016.12.8)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칠성시장 상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현 정국에 대해 얘기 중이다(2016.12.8)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칠성시장 다른 상인들의 심정도 비슷했다.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떨던 상인들은 저마다 한 마디씩 거들었다. "분노로 치가 떨리는 기라", "그럴 줄 알았나. 다 속았지", "아버지 명예를 다 깎아 먹었다", "자다가 억울해서 눈물까지 나더라", "그만하고 내려와야지"라며 최근 상황에 대해 한 목소리를 냈다.

운명의 하루를 앞둔 대구의 민심은 '배신감'으로 점철돼 있었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게이트로 시작된 두 달간 국정 혼란은 오는 9일 국회의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만을 남겨두고 있다. '박근혜' 이름 석자를 믿고 4년전 표를 준 대구의 분노는 더 컸다. 2012년 12월 19일 전국 평균 보다 30%p가량 더 높은 80%대라는 압도적 지지율로 대구에서 몰표를 받아 대한민국 제18대 첫 여성대통령에 당선된 박 대통령은 "국민행복시대를 열겠다", "경제민주화를 이루겠다"며 취임사에서 약속했지만 4년간 어떤 것도 지키지 않고 탄핵 당할지 모르는 비운에 놓였다.

박근혜 새누리당 선대위원장의 칠성시장 유세(2012.4.5)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박근혜 새누리당 선대위원장의 칠성시장 유세(2012.4.5)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서민의 차디찬 철문을 연 그 순간을 잊지 말아달라'던 지역 신문(영남일보 2013년 2월 25일자 1면 머리기사)의 당부도 동대구역, 동성로, 칠성시장, 서문시장 등 대구 곳곳에서 시민들의 손을 잡고 표를 달라며 한 모든 말은 허공에 흩어졌다. 오히려 국정농단, 헌정질서 유린으로 대구의 믿음을 배반했다.

탄핵표결 하루 전인 8일 동성로·경상감영공원·칠성시장 등에서 확인된 대구 민심은 분노로 가득했다.

1993년생 최모(24.대학생)씨는 4년 전 스무살 때 첫 대선을 치렀다. 그는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에게 표를 줬다. "집안 어른들이 박정희 대통령을 좋아해 박근혜 대통령도 좋아했다. 영향을 많이 받았고 그래서 뽑았다"며 "아버지를 따라 정치를 잘 할 것이라고 기대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최순실, 정유라 특혜도 그렇고 책임자가 아닌 사람들에 의해 나라가 좌지우지되는 자체가 민주주국가가 아니다"면서 "이번에 제대로 돌아섰다. 본인 발로 물러나지 않으니 탄핵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동성로를 지나다니는 젊은 세대들...이들도 '탄핵'에 한 목소리를 냈다(2016.12.8)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동성로를 지나다니는 젊은 세대들...이들도 '탄핵'에 한 목소리를 냈다(2016.12.8)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채현규(25.수성구)씨도 4년 전 군대에서 첫 투표를 하며 박 대통령을 뽑았다. "보수적인 정치 성향을 갖고 있고 박 대통령이 여성이라 청와대 조직을 유연하게 관리하고 국민에게 가까이 다가갈 것이라 생각했다"며 "하지만 세월호 사건을 보면서 결정적으로 무능하다고 생각했고 세월호 7시간 진실을 보면서 분노했다. 또 최순실 게이트 청문회를 보면 쪽팔려서 못 살겠다. 당연히 탄핵해야 한다"고 했다.

30-40세대들은 사태와 관련해 대통령과 새누리당 대처를 보며 더욱 분노했다. 동성로에서 옷가게를 하는 이정민(36.남구)씨는 "잘못했으면 사과하고 내려와야지 몇 번이나 카메라 앞에서 변명만했다. 아직도 반성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많이 실망했다. 새누리당도 석고대죄는 못할망정 머리만 굴리는 것 같다"면서 "괜히 뽑았다. 어디가면 말도 못한다. 무조건 탄핵돼야 한다"고 말했다.

국정농단 사태를 담은 뮤직비디오를 보는 대구 시민(2016.12.8.동성로)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국정농단 사태를 담은 뮤직비디오를 보는 대구 시민(2016.12.8.동성로)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학원강사인 최현석(43.중구)씨는 "요즘에는 모이면 대통령 얘기를 한다. 정치에 관심 없던 친구들도 최순실 사태를 안다. 그만큼 대통령이 잘못한 것 아니겠냐"며 "4년간 비상식적으로 통치한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도저히 인정할 수 없다. 탄핵되면 일단 혼란이 있을 수도 있지만 박근혜가 대통령 자리에 있는 그 자체만으로 혼란을 야기한다. 빨리 탄핵되는 게 차라리 낫다"고 했다.

담배를 피며 답답한 심정을 토로하는 경삼강영공원 앞 상인들(2016.12.8)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담배를 피며 답답한 심정을 토로하는 경삼강영공원 앞 상인들(2016.12.8)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반면 경상감영공원에서 만난 어르신들 여론은 반반으로 엇갈렸다. 바둑을 두던 70대 이상 어르신들은 이름도 묻지 말고 사진도 찍지 말라며 불편한 심기를 보였다. 한 어르신은 "대통령이 잘못했다. 그런데 그렇다고 국가의 지도자를 끌어내리는 게 맞냐"며 "남은 기간 반성할 기회를 주고 임기를 잘 마치도록 해야 하지 않냐. 야당이나 김무성이 같은 놈은 뭘 알고 탄핵하는지 모르겠다"고 소리를 쳤다.

옆에서 훈수를 두던 다른 어르신은 "잘못했으면 탄핵해야지. 노무현이도 그랬다. 박근혜는 뭐 왕이냐. 대구 사람들 얼굴에 그만 똥칠하고 청와대에서 나와 이제 자기 집에 가야지"라고 맞받아 쳤다. 

경상감영공원에서 바둑을 두며 시국을 얘기하는 어르신들(2016.12.8)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경상감영공원에서 바둑을 두며 시국을 얘기하는 어르신들(2016.12.8)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한편 대구지역 청년 10여명이 참여하는 '대구청년결사대'는 8일부터 9일 새벽 6시까지 대구시 수성구 새누리당 대구시당 앞에서 텐트를 치고 '박근혜 퇴진·새누리당 해체'를 촉구하며 철야농성을 벌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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