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시설' 약속 저버린 대구시...'장애인 거주시설' 허가 논란

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 입력 2017.08.04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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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구에 장애인 거주시설 설립 승인... 대구시 "되돌리기 어려워"/ 장애인단체 "설립절차 중단" 촉구


대구시가 '탈시설' 약속을 저버리고 장애인 거주시설 신규 설립을 허가해 논란이 일고 있다.

4일 대구시와 북구청에 따르면, 북구청은 지난해 4월 H복지재단의 북구 구암동 일대 정원 20명 규모의 발달장애인 거주시설 설립 신청을 허가했다. 대구시도 이를 승인하고 보건복지부에 '장애인거주시설 기능보강 국고보조사업'을 신청해 같은해 12월 최종 선정됐다. 이어 북구청이 지난 8월 2일 총 면적 1657.11㎡의 지상 3층짜리 건물의 건축을 허가하면서 빠르면 이달 중 착공에 들어갈 예정이다. 현재 설계 완료단계에 있으며 예산 8억7백만원(국·시비 각각 4억 350만원)이 확보된 상태다.

대구시와 북구청이 허가한 장애인 거주시설 신규설립 추진 과정 / 사진 제공. 420장애인차별철폐대구투쟁연대
대구시와 북구청이 허가한 장애인 거주시설 신규설립 추진 과정 / 사진 제공. 420장애인차별철폐대구투쟁연대

그러나 이 같은 신규 시설 설립 계획은 시민사회의 비판을 받고 있다. 대구시의 탈시설 정책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권영진 대구시장은 2014년 후보 시절 지역 장애인단체와 '신규시설 설립금지' 등의 탈시설·자립지원 정책 등을 협의한 바 있다. 이어 2015년에는 '시설거주 장애인탈시설 자립지원 추진계획'을 발표하고 장애인 거주시설을 신규 설립하지 않겠다고 거듭 약속했다.

또 지난해 대구시립희망원 내 인권유린·시설비리 문제가 불거져 대규모 수용시설의 한계점이 드러나면서 장애인 탈시설·자립지원에 대한 요구가 더욱 거세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대구시와 북구청은 지난 1년여간 지역사회의 요구를 뒤로한 채 거주시설 신규 설립을 추진해왔다. 이 같은 사실이 지난 6월 뒤늦게 알려지면서 그동안 탈시설를 요구해 온 장애인 단체가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장애인 거주시설 설립은 2008년 국회 비준으로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갖고 있는 'UN장애인권리협약' 제19조(자립적 생활 및 지역사회에서의 동참)에도 어긋난다. UN장애인권리위원회는 2014년 한국 정부에 "장애인 인권모델에 기반하는 탈시설 전략을 발전시킬 것"을 권고했으며 국가인권위원회도 2012년 '2차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을 통해 "신규시설 설립이 아닌 기존 시설생활인의 탈시설화와 소규모화 추진"을 주문했다. 장애인 수용시설 폐쇄와 탈시설화는 세계적·일반적 추세임을 보이는 대목이다.

대구시,북구청의 장애인 거주시설 신규설립 허가를 규탄하는 장애인단체 기자회견(2017.8.4.대구시청 앞) / 사진. 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대구시,북구청의 장애인 거주시설 신규설립 허가를 규탄하는 장애인단체 기자회견(2017.8.4.대구시청 앞) / 사진. 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이와 관련해 대구장애인인권연대, 함께하는장애인부모회, 장애인지역공동체 등 지역 38개 단체가 참여하는 '420장애인차별철폐대구투쟁연대(공동대표 박명애 구영희 이정미 권택흥)'는 4일 오전 대구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설립 절차를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이들은 "장애인 시설 신규설립은 지역사회·장애인 단체와 맺어온 합의정신에 위배된다"며 "대구시의 탈시설-자립생활 지원에 관한 입장이 분명하지 않다는 의미"라고 주장했다. 또 "희망원에 대한 혁신안이 이행되지 않았고, 탈시설 지원계획의 결실도 맺기 전"이라며 "장애인 자립생활 권리를 보장할 것"을 요구했다. 이어 기자회견 후 대구시 장애인복지과 관계자들을 만나 시설 허가에 대한 경위를 묻고 설립 취소를 촉구했다.

대구시 장애인복지과 관계자들과 면담을 갖고 설립 취소를 촉구하는 장애인단체(2017.8.4.대구시청) / 사진. 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대구시 장애인복지과 관계자들과 면담을 갖고 설립 취소를 촉구하는 장애인단체(2017.8.4.대구시청) / 사진. 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박명애 대구장차연 공동대표는 "앞에서는 탈시설을 약속해놓고 뒤에선 몰래 수용 시설을 짓는 것을 납득할 수 없다"며 "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자립지원 정책을 추진하라"고 했다. 노금호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은 "대구시는 희망원 사태 이후신규시설 설립에 대한 계획도, 예산도 없다고 수차레 밝혔지만 일 년만에 탈시설 행보를 뒤집었다"고 비판했다.

강명숙 대구시 장애인복지과장은 "장애인 거주시설을 지어달라는 지역민의 요구가 있었다. 30인 이하 소규모 시설이라 탈시설 약속을 생각하지 못했다"면서 "설립 과정에서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취소하거나 되돌리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허학수 북구청 장애인시설팀장은 "거주시설을 이용시설로 변경하거나 설립을 취소하도록 운영 주체인 H복지재단을 설득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H복지재단 관계자는 "대구시의 요청이 있었지만 설립을 취소할 생각은 없다"며 공사를 강행하겠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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