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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에 빠진 민주주의
[이재동 칼럼] "그 모든 결점과 실패에도 민주주의를 보전해야 하는 이유"
2019년 09월 23일 (월) 18:25:28 평화뉴스 pnnews@pn.or.kr

한 달 이상 나라를 광풍의 회오리에 빠뜨린 조국 법무부장관에 관한 이야기를 쓸까 하다가, 홍수 난 낙동강에 한 대야의 물을 더 끼얹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좀 더 근본적인 이야기를 써보기로 했다.

1990년대에 들어 독일이 다시 통일되고 소연방이 붕괴되었을 때만 하여도 세계의 자유민주주의화는 종국적으로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생각되었다. 미국의 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역사의 종언, The End of History)란 유명한 책에서 민주정치체제가 역사의 최종적인 정체이며 이제 민주주의에 도전하는 새로운 ‘역사적 사건’은 더 이상 발생하지 않는다는 선언을 하였던 것이 이맘때이다.

이렇게 낙관적으로 보였던 민주주의가 지금 쇠퇴의 징후를 보이고 있으며, 새로운 권위주의 체제가 곳곳에서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 러시아와 중국은 사실상 임기의 제한이 없는 1인 지배체제가 되었으며, 미국과 일본, 최근의 영국도 극우 성향의 정치인의 집권으로 민주주의의 기본요소들이 위협받고 있는 형편이다. 종래 민주주의 국가로 분류되었던 터키, 필리핀 등 제3세계의 여러 나라들에서 속속 민주주의가 요구하는 절차적 번거로움을 무시하려는 권위적인 정부가 들어서고 있다. 프리덤 하우스의 발표에 따르면, 공개된 정치적 경쟁으로 인한 집권세력의 교체 가능성의 존재, 기본적 인권의 보장, 언론의 자유와 독립된 사법부 등 민주주의의 기본 요소를 갖춘 나라에서 사는 인구의 비율이 2006년에는 46%였는데 반하여, 2018년에는 39%로 떨어졌다고 한다.

후기 자유주의 사회에서 이렇게 민주주의가 쇠퇴하고 있는 이유로는 대량 이주, 국제적인 테러리즘, 세계 경제의 급격한 변동 등을 든다. 급격하게 변하고 있는 상황은 빠른 해결책을 요구하고 있고 민주주의는 이에 대응하기에는 너무 느리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국제정세의 변화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 사회가 그 성립의 전제로 하고 있는 ‘민주적 인간형’의 쇠퇴이다. 미국의 정치학자인 로버트 달은 그 저서 <민주주의와 그 비판자들>에서 민주주의는 그 구성원인 시민들의 지적, 도덕적 능력을 고양시킨다고 하였는데, 이를 뒤집어 말하면 민주주의가 발전하기 위하여는 토론을 통하여 합리적 해결을 도출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지성과 도덕성의 발전을 추구하는 다수의 국민들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현대 사회의 복잡화와 어떤 사안에 걸린 이해관계의 복잡성으로 인하여 민주주의적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시민들이 합리적인 의견을 제시하기 위하여는 상당한 노력과 고민을 요한다. 그러나 지금의 사회에서는 젊은 세대의 정치적 무관심과 공동체의 파괴로 인하여 개인의 고립화 경향이 심해지고 ‘유익한 정치 토론을 이루기에 충분한 공통 원칙’이 없어 토론에 의한 의미 있는 결론의 도출이 어렵다.

   
▲ KBS대구, <기억, 마주서다> - 제4부 '시월, 봉인된 시간'(2019.1.6일) 방송 갈무리

이러한 정치적 토론이 불가능한 상황은 공화당과 민주당 지지자들로 양분된 미국도 마찬가지여서 로널드 드워킨 교수는 최근 저서 <민주주의는 가능한가-새로운 정치 논쟁을 위한 원칙들>의 첫머리에서 이렇게 한탄하였다.

"미국 정치는 끔찍한 상태다. 거의 모든 것에 대해 극렬하게 의견이 갈린다. 테러와 안보, 사회정의, 정치와 종교, 어떤 사람에게 판사 자격이 있는가, 민주주의는 무엇인가. 그냥 의견 충돌 정도가 아니라 양쪽이 상대를 전혀 존중하지 않는다...미국 정치는 전쟁의 양상에 가깝다."

이러한 상황은 우리나라에서는 더 증폭된 형태로 나타나 다른 의견 사이에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토론이 불가능한 지는 오래 되었다. 뉴스나 타인의 의견을 수렴하여 자신의 의견을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형성된 자신의 의견을 강화하는 뉴스나 동조 의견만 찾아 읽는 ‘확증편향’이 만연하고, 인터넷과 유투브 등 1인 언론(one man publishers)이 쏟아내는 많은 정보들에서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는 것은 진지하고 똑똑한 사람들에게조차 힘든 일이 되었다. 무엇보다 깊은 생각을 기피하는 성향으로 어떤 사안이 국민적인 관심으로 등장했을 때 그 문제가 복잡할수록 사람들은 ‘쉬운 대답(easy answer)’을 선호하는 경향이 심해지고, 쉬운 대답일수록 거짓일 가능성이 더 높다.

민주주의는 정치체제로서 완전한 것이 아니며 민주사회라고 해서 유토피아인 것은 아니다. 권리와 의무의 강제적인 배분을 정하는 정치체제는 필요악이다. 처칠이 말하였듯이 민주주의는 가장 나쁜 정부형태이다-단, 다른 모든 정부형태를 제외하고는. 민주주의는 남용과 조작과 결정 지체에 취약한 체제이다.

민주주의는 완성된 형태가 아니라 같이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그 모든 결점과 실패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를 보전해야 하는 이유는 이 체제만이 개개인의 인간성의 가장 폭넓은 실현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민주주의가 지금 위기에 있다면, 그것은 우리 개개인이 좀 더 좋은 인간이 되지 못했기 때문일 따름이다.     

   
 






[이재동 칼럼 1]
이재동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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