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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적 상상력과 공적(公的)인 삶
이재동 /『시적 정의』(마사 누스바움 저 | 박용준 역 | 궁리 펴냄 | 2013.9)
2013년 11월 26일 (화) 19:04:57 평화뉴스 pnnews@pn.or.kr

1. 시인 황지우의 시 <5월 그 하루 무덥던 날>은 광주민주화운동 이후 정의가 사라진 국가에서 살아가는 시민들의 체념과 절망을 표현하고 있다. 시의 배경은 당시 극심했던 지역감정을 기반으로 큰 인기를 끌었던 전국 고교야구 대회가 열리는 동대문 운동장이다. 마침 경북고와 광주일고가 맞붙은 결승전에서 경북고가 광주일고를 난타하고 있다. 그해 5월에 “우리 모두 가서 죽어버리자”고 울부짖었던 선배는 관중석에서 소주를 마시면서 담담하게 말한다.

 “광주일고는 져야 해! 그게 포에틱 저스티스야”
 “POETIC JUSTICE요?”
 “그래”

2. 황지우가 말하는 ‘시(詩)적 정의’는 풍자적이다. 정의가 처절하게 짓밟힌 상태에서 광주일고가 경북고를 이긴다는 작은 위로도 허용하지 않는 것이 더 정의로운 것이라는 것은 분명 역설적이지만, 문학은 위장된 위로가 아니라 부정의를 더 절실한 형태로 드러냄으로써 읽는 이들을 각성시키고 결국 정의로 나아가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발터 벤야민은 훌륭한 문학작품은 ‘정의로 나아가는 문’이라고 하였다.

   
▲ 『시적 정의 - 문학적 상상력과 공적인 삶』(마사 누스바움 저 | 박용준 역 | 궁리 | 2013.9)
3. 미국의 저명한 법철학자 마사 누스바움 (Martha C. Nussbaum)이 쓴 <시적 정의, Poetic Justice>는 ‘문학적 상상력과 공적인 삶’이라는 부제에서 보듯이 나라의 정책 결정이나 법관의 판단 등에 나타나는 공적인 추론(推論)에 문학적 상상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하는 내용이다. 저자는 시카고 대학 로스쿨에서 ‘법과 문학’이라는 과목을 강의하면서 곧 법조인이 될 학생들과 문학작품을 같이 읽고 토론하면서 문학에 대한 사유가 법에, 더 넓게는 공적 추론에 기여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음을 믿게 되었다.

4. 이 책에서 주된 텍스트로 분석하고 있는 소설은 찰스 디킨스의 <어려운 시절, Hard Times>이다. 산업혁명 이후 세계의 경제를 지배하던 19세기 영국의 공장 도시를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의 주된 등장인물인 그래드그라인드 씨는 공직자와 교육자로서 오직 숫자와 도표로 나타낼 수 있는 객관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한 경제학과 과학에만 가치를 부여하며, 이와 양립할 수 없는 감정과 상상력 따위는 잘못된 것으로 생각한다.

그에게 말(馬)이란 초원을 뛰어다니는 구체적인 한 마리의 말이 아니라, “네발 짐승, 초식동물, 이빨은 마흔 개로 어금니 스물네 개, 송곳니 네 개, 그리고 앞니 열두 개. 봄철에 털갈이를 하고 습지에서는 발굽갈이도 함”으로만 정의될 수 있다. 이것은 사람에 관하여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개개 인간의 질적인 차이들은 양적인 차이들로 계량화되고 표준화된다. ‘개별적인 삶에 대한 정보나 그로부터 얻어진 데이터들을 합하여, 개인적인 단독성 뿐만 아니라 질적인 차이들을 없앤 총합 혹은 효용이라는 결론으로 귀결되어’, ‘간단한 산술로 모든 인간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5. 이러한 그래드그라인드 식의 사고방식에서는 오직 이성만이 가치를 가지며, 감정이나 상상력 따위를 조장하는 이야기 책(문학)은 해로운 것으로 치부된다. 그러나 이 책에서 저자는 문학적 상상력은 ‘재판관들이 판결을 내리고, 입법자들이 법을 제정하며, 정책 입안자들이 다양한 인간의 삶의 질을 측정하는데 길잡이 역할을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공적(公的)인 추론에서 감정을 배제하여서는 안 되며 적절히 제한되고 걸러진 감정들은 이러한 추론에서 나침반 역할을 할 것이라고 한다. 특히 우리는 소설 읽기를 통하여 그 등장인물들의 희망이나 두려움 그리고 일반적인 관심사를 공유하고 그런 이유로 유대를 형성하는 것이며, 이것은 다른 사람들의 삶을 공감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함으로써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능하게 하고, 또한 이것은 공적인 삶이 요구하는 판단을 좀 더 잘 내릴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독자의 경험을 위해 두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첫째, 소설 읽기가 타당한 도덕 및 정치 이론을 정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통찰들을 제공해줄 것이라는 점이다. 둘째, 소설 읽기가 도덕 및 정치 이론의 규범적 결론으로부터 - 그것이 얼마나 완벽하든 간에 - 시민들이 현실을 구성하는 데 필수적인 도덕적 능력들을 발달시켜 준다는 것이다. 서문에서 언급하였듯이, 소설 읽기가 사회정의에 관한 모든 이야기를 들려주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소설 읽기는 정의의 미래와 그 전망의 사회적 입법 사이에 다리를 놓아줄 수는 있을 것이다. (책 46페이지)”   
 
 6. 이 책이 나온 과정에서 암시되었듯이 저자가 가장 소설을 읽어야 한다고 강권하는 사람들은 재판관들이다. 책의 첫머리에서부터 인용되고 있는 월트 휘트먼의 시에서 시인은 재판관의 한 부류로 묘사된다.

  그는 다양성의 중재자이며, 열쇠다.
  그는 자신의 시대와 영토의 형평을 맞추는 자이다...

 재판관이 좋은 판결을 내리는 데는 법적 추론 기술, 법률 지식, 판례의 능숙한 인용으로 충분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늘 법은 과학이라는 사고방식을 바탕으로 ‘개별적인 것들로부터 고고한 거리를 두고자 하는 재판관’을 이상으로 삼아왔다. 그러나 판결의 대상인 인간은 각기 다른 나름의 가족과 고향과 희망과 절망과 좌절과 고난을 가진 구체적인 인간이며 이를 통찰하지 못한다면 결코 좋은 판단을 내릴 수 없는 것이다. 이는 1994년 임명된 미국 연방대법관 스티븐 브레이어가 청문회에서 했던 말에서 잘 드러난다(이는 영국의 수필가 체스터턴의 문장을 인용한 것인데, 이 문장은 샬럿 브론테의 소설 <제인 에어>에 대한 언급이었다).

  “밖으로 나가서 도시를 한번 보시오. 이 모든 집들은 다 똑같이 생겼소. 그리고 저 모든 사람들은 일을 하러 가고 있고 그들 또한 다 똑같다는 생각이 들 것이오. 하지만 브론테가 당신에게 말해주는 것은 바로 그들이 결코 똑같지 않다는 것이오. 각각의 집과 가정에 있는 사람들은 서로 다르고, 또 제각기 다른 이야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각각의 이야기들은 인간의 정념에 관한 무언가를 내포하고 있지요.(...) 여러분은 이를 책을 통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문학이 이따금씩 우리를 고층탑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도와주는 하나의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7. 그런 의미에서 법은 오직 과학일 때만 훌륭한 학문적 영역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틀린 것이다. ‘법은 과학의 영역일 뿐만 아니라 인문학의 영역이라는 점, 그리고 그것이 법을 뛰어넘어 인문학 안에서 이해될 때, 실천적 추론의 특별한 탁월함’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구체적인 사안에 적용될 법조문과 유형별로 구분된 선례를 뒤적이기 전에 역사적으로 형성된 사회 속에서 그 사건이 차지하는 위치에 대한 숙고와 사회적 약자의 고통 받는 삶에 발을 들여놓으려는 적극적인 공감의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별다른 사회 경험 없이 법학에 대한 필기시험만으로 법관이 되는 우리 법조에 있어서 더 절실한 요청일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은 미국보다도 오히려 우리에게 더 울림이 크다.

 “재판관은 이 모든 것을 고려하는 훌륭한 재판관이어야 한다. 하지만 충분히 이성적이기 위해 재판관들은 공상과 공감에 또한 능해야 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기술적인 능력뿐만 아니라, 휴머니티를 위한 능력까지도 배워야 한다. 이 능력 없이는, 그들의 공평성은 우둔해질 것이고 그들의 정의는 맹목적이 될 것이다. 이 능력 없이는, 자신들의 정의를 통해 말할 수 있기를 추구했던 ‘오랫동안 말이 없던’ 목소리들은 침묵 속에 갇힐 것이며, 민주적 심판의 ‘태양’은 그만큼 장막에 가려질 것이다”

   





[책 속의 길] 114
이재동 / 변호사. 대구생명의전화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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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털 daum view(블로그뉴스)에도 실린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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