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의 안희정 재판 판결을 환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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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주 칼럼] 미투운동의 외침과 사회적 변화..."성폭력 재판에 새로운 국면 열게 될 것"


9월 9일은 수행 비서를 성폭행한 혐의로 항소심에서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된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이 있는 날이다. 안 전 지사는 2017년 7월부터 2018년 2월까지 10차례에 걸쳐 수행 비서에게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과 추행, 강제추행 등을 한 혐의로 기소되었다. 1심은 안 전 지사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지만 2심은 징역 3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그리고 대법원은 2심 결과를 그대로 확정하였다. 이는 지금까지 미투운동의 외침과 사회적 변화를 담은 것이다. 이 글은 대법원의 판결이 내려진 과정과 의미를 해석하고자 한다.

아직도 피해경험자가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력 가해 사실을 이야기한 그 때의 충격이 생생하다. 2018년 1월 29일 서지현 검사의 미투로 이 나라는 미투혁명의 격량에 휩싸였고, 대구경북여성단체 연합 회원단체 활동가들은 미투집담회를 하고 있던 때였다. 몇몇 활동가가 핸드폰을 보고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었고 곧 그 자리의 모든 사람들은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미투 공작설이 널리 퍼져있을 때라 여권의 유력한 대권 주자인 안희정 전 지사의 성폭력 가해사실은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한 상황이었고 실제 여론은 들끓었다.

'안희정 성폭력 사건 대법원 판결 기자회견'(2019.9.9. 대법원 앞) / 사진 제공. 안희정성폭력사건공동대책위원회
'안희정 성폭력 사건 대법원 판결 기자회견'(2019.9.9. 대법원 앞) / 사진 제공. 안희정성폭력사건공동대책위원회

이후 진행된 1심 재판의 결과는 여성인권운동을 해온 많은 사람들을 허탈하게 했다. 그간 여성폭력피해에 대한 이해를 위해 사용되었던 ‘성인지 감수성’이 이번에는 무죄를 선고하는데 쓰였기 때문이다. 또한 1심 재판부는 피해자가 성폭력 피해를 입은 직후 안 전 지사가 좋아하는 순두부집을 찾으려 했다거나 와인 바에 동행한 점 등을 들어 “피해를 당했다는 피해자의 증언과 진술을 그대로 믿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성폭행 피해자는 이렇게 행동해야 한다’는 ‘피해자다움’이라는 사회적 통념에 갇혀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한 것이다.

1심 재판과정은 피해자 쪽의 진술은 비공개였고, 안 전 지사 쪽의 주장만 공개되어 성폭력사건의 일반적인 구도가 재현되었다. 사회적 영향력과 권력이 미미한 피해자와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의 가해자 구도가 여론전을 펼쳤으며 피해자에 대한 비난과 모욕은 지켜보기 힘든 상황에 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달랐다. 피해자에게 묻기보다 가해자에게 물었다. 안 전 지사가 피해자의 미투 폭로 이후 SNS에 범죄를 인정하는 글을 올린 경위와 거듭된 진술의 ‘번복’에 대해 물었다. 또한 1심 재판부가 존재했으나 행사되지 않았다고 한 ‘위력’에 대해서는 안 전 지사가 피해자의 인사권을 가진 상황과 차기 대선주자로서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 피해자와 안 전 지사의 관계와 구체적 상황 등을 종합해 권력적 상하관계를 이용해 성폭력 가해를 했다고 판단했다. 위력의 ‘존재’와 ‘행사’를 구분하지 않은 것이다. 이러한 2심과정과 결과를 대법원은 그대로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1심과 2심의 결과가 바뀐 중요한 이유는 ‘성인지 감수성’이다. 이미 대법원은 성범죄 관련 소송 판단의 기준으로 성범죄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추구하는 ‘성인지 감수성’ 차원에서 사건을 심리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서울에서 열린 '성폭력 끝장 집회'(2018.8.8) / 사진 제공. 대구여성회
서울에서 열린 '성폭력 끝장 집회'(2018.8.8) / 사진 제공. 대구여성회

그렇다면 성인지 감수성이란 무엇일까. 영어로는 gender sensitivity로 표기되고 이를 그대로 옮긴 ‘젠더감수성’도 같은 말이다. 성인지 감수성이란 성별 간 불균형에 대한 지식과 이해를 갖추어 일상생활 속에서 성차별적 요소를 감지해 내는 민감성을 말하며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할 대안을 찾아내는 능력을 포함하는 말이다.

문제는 성인지 감수성이란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며 생물학적 여성이라고 해서 무조건 성인지 감수성이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인권감수성, 성인지 감수성 등 감수성의 문제는 늘 갈고 닦아야 하는 것이며 나이와 지위, 경험이 더 많은 사람일수록 부족하기 쉽다. 특히 안희정 전 지사의 성폭력 사건에 대한 사람들의 판단을 보며 생각했다. 성인지 감수성이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사회 전체가 성인지 감수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해야할지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하게 되었다.

미투운동은 지금까지 법과 제도적으로는 범죄였으나 피해자가 말할 수 없게 하는 사회,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리고 가해자는 아무렇지 않게 잘 사는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혁명의 과정이다. 미투운동을 통해 우리는 여성의 시민권과 노동권 보장을 위해 투쟁하고 있다. 오늘 내려진 대법원의 판결은 그 동안 피해자임에도 사회적 편견과 싸워야 했던 미투운동의 당자사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될 것이며 그동안 판례가 거의 없었던 위계 위력에 대한 법적인정으로 앞으로 성폭력 재판에 새로운 국면을 열게 될 것이다.

 
 






[남은주 칼럼 1]
남은주 / 대구여성회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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