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깅스 판결'이 아니라 '불법 촬영범죄' 판결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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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주 칼럼]
"모두가 갖추어야 할 성인지 감수성, 레깅스 타령에 머물러 있는 재판부는 바뀌어야"


레깅스 촬영 2심 무죄 판결로 ‘성인지 감수성’, 성적 수치심, 성폭력이란 무엇인가 등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뜨겁다. 가해자는 버스에서 내리려고 서 있는 피해자의 뒷모습을 8초간 불법촬영하여 현장에서 검거되었다. 1심에서는 벌금 70만원에 성폭력치료프로그램 24시간 이수 명령을 받았고, “법리상 무죄를 주장하고 있으나 반성” 했던 피고인이 감형해달라며 항소한 2심에서 재판부는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의 무죄 선고 이유는 레깅스가 일상복이며 신체 노출이 적었기 때문에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덧붙여 재판부는 “외부로 노출되는 피해자의 신체부위가 목, 손, 발목의 부분이 전부”라고 적시하였다. 또한 엉덩이 등 성적 부위를 확대하거나 부각시키지 않고 사람의 시야에 통상적으로 비치는 부분을 그대로 촬영한 것을 무죄의 근거로 제시하였다. 또한 재판부는 “레깅스를 입은 젊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성적 욕망의 대상이라 할 수 없다”고 판시하였다.

이러한 재판부의 인식은 도대체 어느 시대인지 알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섹슈얼리티에 대한 이해가 없음을 스스로 반증하는 것이다. 사람은 신체의 특정한 부위만을 성적으로 느끼는 것이 아니며 성적 코드는 역사 속에서 문화적으로 변화해왔다. 중국의 전족은 여성의 이동권 제한뿐만 아니라 성적인 이유로 행해졌다. 그러나 재판부의 레깅스에 대한 인식과는 달리 요즘 강남에서는 ‘레깅스 바’와 ‘레깅스 룸’이 신종 유흥업소로 성업 중이라고 한다. 이미 레깅스는 성적인 코드로 이용되고 있는 것이다.

재판부는 신체부위의 노출정도나 레깅스가 일상복인지 아닌지가 아니라 가해자가 성적인 의도가 아니라면 왜 버스에서 피해자의 모습을 촬영했는지 물었어야 한다. 또한 촬영된 영상은 스마트 폰에서 간단한 조작으로 바로 확대할 수 있음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피해자는 "기분 더럽고, 어떻게 저런 사람이 있나, 왜 사나 하는 생각을 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그러나 재판부는 "불쾌감을 넘어 성적 수치심이라고 단정하긴 어렵다"며 "피해자가 레깅스 차림으로 대중교통에 탑승해 이동했다"고 하였다. 재판부는 이 사건을 성적수치심을 느낄 수 없는 사건으로 본 것이다.

성적 수치심은 특정한 신체부위에 대한 침해로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성희롱, 성폭력의 이전 단계에 발생하는 ‘대상화’로 인한 분노와 모멸감이다. 이 사건에서 피해자는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가해자의 의해 ‘불법촬영’의 대상이 되었다. 촬영된 동영상이 이후에 어떻게 사용될지 모르며 2차 피해도 우려됨으로 피해상황은 명확하다. 그러나 재판부는 피해자의 ‘성적수치심’에 대해 ‘불쾌감은 맞으나 성적수치심’은 아니라고 하였다. 재판부의 이러한 자의적 ‘판별’이 무죄 선고의 근거인 것이다.

<경향신문> 2019년 11월 11일자 6면(기획)
<경향신문> 2019년 11월 11일자 6면(기획)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4조 제1항은 “카메라나 그 밖의 이와 유사한 기능을 갖춘 기계장치를 이용해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의 신체를 그 사람의 의사에 반하여 촬영한 행위”를 처벌하도록 되어 있다. 이 조항은 처벌의 이유를 ‘성적 욕망과 수치심’유발에 둠으로써 피해자의 성적 수치심 여부를 재판부가 판결하게 된다. 재판부의 성인지 감수성 여부에 의해 재판 결과가 달라지는 것이다. 불법촬영물 피해의 처벌은 성적수치심이 아니라 ‘비동의 촬영물에 의한 성적자기결정권 침해 여부’가 되어야 한다.

이 사건의 세 번째 쟁점은 재판부가 피해자의 인격권을 침해한 것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에 피해자의 비동의 촬영물 사진을 실었고, 3000명에 달하는 판사들은 법원 내부 열람 시스템으로 이를 열람할 수 있다고 한다. 이미 비동의 촬영으로 재판을 두 번이나 치른 피해자는 사진이 판결문에 실리면서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불법촬영물이 공개되는 상황이다. 재판부의 이러한 처사는 피해자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일 뿐만 아니라 심각한 인권침해이다.

레깅스 촬영 판결의 과정은 2018년 4월 대법원이 제시한 ‘성인지 감수성’ 과 너무 먼 재판부의 인식을 보여준다. 미투혁명 이후 인권감수성과 성인지 감수성은 있으면 좋고 아니면 말고가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회구성원 모두가 꼭 갖추어야할 필수적인 인식이다. 아직도 ‘필수적 인식’을 갖지 않고 레깅스 타령에 머물러 있는 재판부는 바뀌어야 한다.







[남은주 칼럼 3]
남은주 / 대구여성회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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