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형편없어. 그래서 정치개혁도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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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상 칼럼] 연동형 비례대표제 국회 가결을 바란다


이번 12월은 우리나라 민주주의 발전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달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이하 ‘연비제’)를 담은 선거법개정안이 11월 27일 국회에 자동 부의되었기 때문이다. 연비제는 정당 득표율에 비례하여 각 정당의 당선자 수를 배정하는 선거제도이다. 부의된 개정안은 60일 이내에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지만, 내년 4월에 치를 국회의원 선거 예비후보자 등록이 12월 17일에 시작된다는 일정을 감안한다면 조기 처리 가능성이 높다.

정치개혁의 역설 - 문제 자체가 문제 해결을 막는다

국회에 올라가 있는 개정안은 비록 득표율을 100% 반영하지는 않는 ‘준’연비제이지만, 각 정당의 의석수가 민의와 너무 동떨어진 현 상태를 상당히 개선할 수 있다는 점에서 희망적이다. 그런데 연비제에 대한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다. 1년 전에는 찬성 쪽이 좀 더 많은 편이었으나 11월 초 여론조사에서는 오히려 역전되기도 했다. 국민의 의견을 정치에 그대로 반영하여 민주주의 이상을 더 잘 구현하자는 제도에 대해 왜 반대하는 사람이 적지 않게 생기는 걸까?

자신이 소속감을 느끼는 정치 세력이 반대하기 때문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반대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연비제가 도입되면 양대 정당의 의석수가 상당히 줄어들게 된다. 그래서 우리나라 양대 정당 중 자유한국당은 한사코 반대한다. 자유한국당 지지율이 최근 30% 안팎에 그친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감안하면 전체 반대자 중 최대 절반 정도는 이런 경우라고 추측한다.

그럼 반대자의 나머지 절반은 어떤 사람일까? 정치에 무관심하거나 무지한 사람이 별 생각 없이 반대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치의 중요성을 잘 아는 사람도 정치에 대한 실망, 불신, 냉소, 혐오가 일상화된 경우가 많다. 여기에 정치적 무력감이 가세한다. 만날 투표해봤자 선거 끝나면 호구가 되고 마는 경험이 누적되어 왔다. 대표라고 뽑아놓고 보니 우리와는 전혀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으로 드러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그래서 ‘정치는 형편없어, 그래서 정치개혁도 싫어!’와 같은 모순된 태도를 보인다. 문제 자체가 문제 해결의 의지를 꺾는, 정치개혁의 역설이다.

이른바 '동물 국회', 패스트트랙을 둘러싼 여야 대치 / 사진 출처. KBS 뉴스9(2019.4.26) 캡처
이른바 '동물 국회', 패스트트랙을 둘러싼 여야 대치 / 사진 출처. KBS 뉴스9(2019.4.26) 캡처

이러다 보면 세상이 좋아질 수 없다. 계속 문제를 안고 살지 않으려면 대표와 국민이 따로 놀지 않는 연비제가 필요하다. 연비제는 1등만 당선되는 현행 소선거구제보다 훨씬 높은 대표성을 보장한다. 더구나 소선거구제는 거의 필연적으로 양대 정당 구조를 낳는다. 그래서 정권 획득 전략으로 기를 쓰고 상대방 흠집 내기를 하게 되고 그 때문에 국민의 정치 혐오가 더욱 심해진다. 이에 대해서는 지난 칼럼에서 언급한 바 있다. (평화뉴스 <보수 진영이 아베 편으로 비치는 이유>(2019.9.2) http://www.pn.or.kr/news/articleView.html?idxno=17406)

비판은 개혁의 동력, 냉소와 혐오는 개혁의 걸림돌

연비제에 관심을 두는 사람 중에도 의구심을 가지는 경우가 더러 있다. 대표적인 의문 두 개만 들어 보자. 첫째로, 비례대표 명부를 지금처럼 각 정당이 작성한다면 개혁해도 소용없다는 회의론이다. 우리나라 전국구 후보 공천과 관련하여 정당마다 떳떳하지 못했던 과거가 있었기 때문에 충분히 제기될 수 있는 의문이다. 따라서 연비제를 도입한다면 후보 공천 방식도 바꾸어야 한다. 이에 대해서는 ‘개방형 명부’ 방식 등 여러 나라에서 이미 정착된 좋은 방식이 있다. ‘개방형 명부’는 정당에서 제출한 후보자 순번에 구애받지 않고 유권자들이 선호하는 후보를 당선권으로 올릴 수 있는 방식이다.

둘째로, 국회의원 수를 늘리는 데 대한 거부감이다. ‘안 그래도 미운 국회의원 수를 더 늘린단 말인가?’ 이 역시 정치 혐오를 낳은 풍토에서 형성된 감정적 반응이다. 현재 국회에 올라있는 법안에는 국회의원 수를 늘리지 않도록 되어 있지만 그래도 국민은 의구심을 갖는다. 필자는 국회 인건비 총액을 동결하고 특권을 줄인다는 전제 하에, 오히려 지역구는 그대로 두고 비례대표 정수만 늘리자는 입장이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에 비해 인구 대비 국회의원 수가 적을 뿐 아니라, 개혁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면 변화가 적을수록 제도 정착이 쉽기 때문이다.

연비제를 실시하는 나라로는, 국민행복지수에서 늘 상위권을 유지하는 덴마크 등 유럽 여러 나라가 대표적이다. 최근의 예로는 뉴질랜드도 있다. 뉴질랜드는 우여곡절 끝에 1993년 독일식 연비제로 바꿨는데, 그 후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정책이 많이 채택되었다. 우리처럼 소선거구제, 거대 양당 체제 속에서 정쟁이 심했던 뉴질랜드가 연비제에 의해 다당 구조로 바뀌면서 다수의 시민들이 바라던 변화가 일어나게 된 것이다.

비판은 개혁의 동력이 되지만, 냉소와 혐오는 개혁의 걸림돌이 된다. 양극화 시대를 극복하고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가 정치에 반영되기를 바라는 국민이라면 정치 혐오를 정치 비판으로 전환하여 연비제를 지지해주면 좋겠다.






[김윤상 칼럼 86]
김윤상 / 자유업 학자, 경북대 명예교수.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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