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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슬픈 쓰레기
[정은정 칼럼] 아파트 경비노동자의 비인간적 노동환경, 이제는 바꿔야 할 때
2020년 07월 22일 (수) 10:41:03 평화뉴스 정은정 칼럼니스트 pnnews@pn.or.kr

“이 사람 경비원 되려면 아직 멀었군. 그렇게 꽃잎만 쓸다가 다른 일은 언제 하나. 꽃은 말이야, 봉오리로 있을 때 미리 털어 내야 되는 거야. 꽃이 아예 피지를 못 하게 하는 거지. 그래야 떨어지는 꽃잎이 줄어들거든. 주민들이 보게 되면 민원을 넣게 되니까 새벽 일찍 털어야 해.”

임시 계약직 노인장의 노동일지 『임계장 이야기』에 나오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쓰레기’의 한 대목이다. 책을 읽고 마음에 오래 남았다. 노동은 인간의 생존을 위해서 필요하지만 그뿐 아니라 자아를 실현하고 삶의 보람을 느끼게 한다고 배웠다. 그러나, ‘최저임금으로 최고의 노동을 바쳐라!’라고 강요하는 우리 사회의 노동은 자아실현이나 삶의 보람과는 멀고 심지어 최소한의 인간다움마저 잃게 만든다.

   
▲ '대구지역 아파트 경비노동자 모임'에서 『임계장 이야기』 책을 받은 대구 성서 A아파트 경비노동자(2020.6.16)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대구지역 아파트 경비노동자 모임’을 만드는 일을 돕고 있다. 지난 모임에서 만난 경비노동자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에서 2년 6개월간 일했는데 계약 해지되었다. 계약해지, 그러니까 해고되었다는 말이다. 6개월짜리 근로계약이 끝나자 당신과 더는 계약을 맺지 않겠다는 일방적인 통보를 받은 것이었다. 용역업체에 전화해 2년 6개월이나 일한 분을 형식적인 계약 기간이 끝났다고 이렇게 내보내는 건 부당하지 않으냐고 항의를 했더니 차분한 목소리로 “법 위반 아니잖아요. 잘 아실 텐데….” 하고 답했다. 그렇다. 법 위반이 아니다. 기간제이지만 2년 이상 일한 노동자는 정규직으로 본다는 기간제 노동자보호법은 만 55세 이상의 고령 노동자를 제외한다.

오래된 서민 아파트에서 일하는 경비노동자께 경비실에 에어컨 있느냐 물으니 “없어요. 그런 거 없어요.” 하며 손사래를 치셨다. 경비반장이 있는 관리실에는 에어컨이 있긴 하지만 틀지 않는다고 했다. 혹시라도 틀어놓으면 주민들이 전기세 나온다고 난리를 칠 게 뻔하니 아예 틀 생각도 안 한다고 했다. 에어컨 같은 건 필요 없다고 했다.

   
▲ 주민이 버린 선풍기를 고쳐서 쓰는 대구 달서구의 한 아파트 경비노동자(2020.6.16)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아파트를 돌며 만난 경비노동자는 주민들과 사이좋게 잘 지내신다고 했다. 좀 전에도 주민 한 사람이 비빔면을 주고 갔는데 날짜 보니 아직 남아있다고 했다. 유통기한이 지나 먹을 수 없는 음식을 경비원에게 갖다 주는 일이 있었다는 뉴스를 떠올리는 것 같았다.

방송 인터뷰를 자원하셨던 경비노동자는 우리가 진짜 잡부라고 했다. 주민들이 숙취로 구토한 것부터 죽은 짐승 치우기까지 온갖 험한 일을 다 하는데 일부 주민들은 엘리베이터에서 땀 냄새난다고 못 타게 하기도 한다며 울분을 토했다.
 
경비노동자를 고용한 용역업체는 아파트에서 원하니 어쩔 수 없고, 관리소장은 입주자대표회의에서 하라니 어쩔 수 없고, 입주자대표회의는 주민들이 싫다니 어쩔 수 없고, 대다수 주민은 그런 일이 있는지 모르니 어쩔 수 없다고 하는 사이에 경비노동자들은 3개월, 6개월짜리 계약서에 벌벌 떨고, 인력 감원으로 인해 두 세 사람 몫의 일을 혼자서 떠맡고, 동대표나 주민들의 부당한 요구를 어쩔 수 없이 감당하고, 다치거나 아파도 말하지 못하고 참아내고 있다.

   
▲ 대구 수성구 범어3동 한 아파트의 경비노동자(2020.5)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다행히도 7월 21일 국회에서 “아파트 경비노동자 등 공동주택 종사자 고용안정과 권익 보호를 위한 상생협약”이 체결되었다. 이 협약에는 전국아파트 경비노동자 사업단과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국토교통부 차관, 전국 아파트입주자 대표회의 연합회, 대한주택관리사협회가 참가했다.

상생협약은 아파트 경비노동자 등 공동주택 종사자의 고용안정과 권익 보호를 위해 협력, 상생하는 공동주택을 만들기 위한 10대 실천과제 이행, 세부계획 연내 수립과 현장에 안착하도록 노력, 협약이 전국 지방자치단체를 통해 퍼지도록 사회적 대화를 추진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 '아파트경비노동자 등 공동주택 종사자 고용안정과 권익보호를 위한 상생협약식' / 사진. 전국아파트경비노동자사업단

국회 협약 이전에도 전주시에서는 ‘아파트 경비원 피해 신고센터’를 운영하고, 경기도에서는 경비원, 미화원 등 공동주택 관리노동자에 대한 폭언, 폭행 등 갑질 행위를 금지하는 ‘공동주택관리 규약준칙’을 제정하고, 서울시에서는 ‘경비노동자 종합지원책’을 발표하고, 서울의 각 기초단체에서는 ‘경비노동자 보호 조례’를 제정하기 위해 준비중이다.

아파트 경비노동자를 죽음으로까지 내몰았던 비인간적인 노동환경을 이제는 바꿔야 한다는 당사자들의 의지와 시민들의 연대하는 마음이 정치권과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관련 단체들을 움직이게 하고 있다.

피지도 못한 꽃봉오리를 빗자루로 털어내는 동료를 보며 인간다움마저 잃을 것 같아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는 경비노동자가 더는 없으면 좋겠다. 초봄부터 한여름까지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꽃들을, 수북히 쌓이는 가을 낙엽을 잠시라도 반가이 맞을 수 있는 경비노동자의 노동환경을 함께 만들고 싶다.

   







[정은정 칼럼 9]
정은정 / 대구노동세상 대표


[참고자료] - 아파트경비노동자 등 공동주택 종사자 고용안정과 권익보호를 위한 상생협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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