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활동가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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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주 칼럼]

“이제 뭐하세요?” 개인 SNS에 현직에서 은퇴했다고 글을 쓴 후 가장 많이 받은 질문입니다. 책임추궁 하듯이 뭘 할 것인지 생각해놓지 않았냐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저는 이제 하던 일을 그만두는 사람에게 묻지 않기로 했습니다. 결혼이나 취직, 진학을 묻지 않듯이 말입니다. 

이번 칼럼은 그동안의 경험을 정리하는 저의 이야기를 쓰려고 합니다. 은퇴하기엔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라 글을 쓰면서 주저되기도 합니다만 2월엔 신상 변화가 많은 때이니 같은 고민을 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진로고민을 적어봅니다.  

활동가로서 기억에 남는 순간

2007년 2월에 시작하여 2024년 2월에 마무리 했으니 17년 2개월간 단체 활동가 생활을 했습니다. 둘째가 초등학교 입학하던 때 딱 1주일 탄력 출근을 하고 한 번도 쉬어본 적이 없습니다. 달리듯이 살았습니다. 더 오래 활동하고 계신 선배님들도 많으셔서 긴 세월이라고 하기엔 뭣하지만 개인으로서는 짧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동안 대구여성회 활동가, 사무처장, 상임대표, 대구시민단체연대회의 운영위원장, 공동대표, 상임대표,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 집행위원장, 상임대표 역할을 했습니다. 왜 젊은데 은퇴하냐는 분들에게 웃으며 “시민사회에서 할 수 있는 직책을 다했어요. 이제 다른 걸 해야 할 것 같아요” 하고 말씀드립니다. 역할을 수행하는 직책은 두루 경험했지요.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많은 장면이 떠오릅니다. 여성단체에서 활동하여 주로 큰 사건해결이 기억이 남습니다. 00초등학교 성폭력과 학교폭력사건, 대구교대 총장 성희롱 사건, 금복주 결혼퇴직제 대응, 대구은행 직장내성폭력사건, 경북대 미투사건 대응, 아직도 진행 중인 '영남대교수 직장내 성폭력사건 대응' 등이 기억납니다. 대경여연은 비롯한 지역 시민사회노동단체의 연대로 사건대응과 피해자 지원을 할 수 있었습니다. 기자회견, 1인 시위, 불매운동 등을 함께 해주셨던 많은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그리고 '박근혜정권 탄핵촛불시위'가 생각납니다. 대응체계를 꾸리지 않고 지역의 활동가들이 단체의 일을 하면서 진행되었습니다. 차가운 겨울 도로바닥에 앉아 몇 만개의 초를 종이컵에 끼우고, 피켓을 나누고, 모금함을 돌리고, 다음 주 집회를 위해 고심하던 활동가들은 지금도 애틋하게 남아있습니다. 

'박근혜정권 탄핵촛불시위'(2016.12), 사회를 맡은 남은주 대표 / 사진 제공. 남은주
'박근혜정권 탄핵촛불시위'(2016.12), 사회를 맡은 남은주 대표 / 사진 제공. 남은주

그리고 특히 대구가 심하게 겪었으나 시민단체의 존재이유에 대해 깨닫게 한 코로나19사태 대응은 빛나는 순간이기도 하지만 무엇을 더해야 하는지 깊은 고민에 빠지게 한 순간이었습니다. 매일 몇 백 가구에 생존키드를 만들어 돌리던 장애단위 활동가들, 쪽방과 이주노동자들의 생존을 위해 동분서주하던 활동가들, 분야별로 코로나19의 대응에 대해 제안 안을 마련하여 대구시와 논의하던 그 자리는 시민사회의 전문성에 대해 고민하는 자리였습니다. 

가슴 아픈 순간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개인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2008년 00초등학교 사건 대응 때와 2018년 미투, 시민사회내의 문제를 마주할 때입니다. 2008년은 활동한지 2년째 되던 해에 부족한 경험과 전문성으로 전국적인 사건에 대응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했음으로 참 힘들었습니다. 이때 전문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했었습니다. 2018년 미투 때에는 쏟아지는 상담과 대응으로 힘들었습니다. 법제도의 한계를 넘어서는 대응방법을 마련하기 위한 고민으로 밤을 세우기 일쑤였지요. 그나마 대화가 되는 정부였기에 부처별 미투 대책이 마련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힘들었던 때는 시민사회 내부의 문제를 직면할 때 입니다. 조직내 성폭력사건, 2차 피해, 단체내직장내괴롭힘 사건 등 시민사회의 부정의를 마주할 때는 무너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이제 사회적으로는 젠더기반폭력에 대한 인식, 기관장과 대표가 책임지는 제도와 매뉴얼은 일반화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시민사회는 4대 폭력 예방교육(공공기관은 의무화되어 있음), 직장내괴롭힘에 대한 교육과 조직 내 규정이 없거나 고민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니 사건이 발생하면 조직이 문을 닫을 정도로 큰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시민사회의 부정의 문제는 더욱 복잡하고 힘든 일입니다. ‘열심히 활동하다보면 그럴 수 있다’, ‘열심히 활동하기 때문에 그 정도 일은 넘어가야 한다’, ‘시민단체가 어떻게 그럴 수 있나’ 까지 다양한 이견이 마치 모두 옳은 것처럼 이야기 됩니다. 사건대응을 맡은 사람을 공격하기도 합니다. 여러 가지 사건 해결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한 경험으로 말씀드립니다. 시민사회의 부정의는 그 일이 발생한 조직은 물론 그 분야에 이르기까지 회복하기 어려운 영향을 미칩니다. 그리고 이미 사회적으로 범법행위이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는 인식이 공유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말하는 것은 쉽지만 해결해야 하는 입장이 되면 정말 어려운 일이기도 합니다. 더욱이 피해자가 있다면 ‘단체내의 상식’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사건의 조사, 해결과정, 모니터링이 꼭 이루어져야 합니다. 조직의 선배이거나 좋은 사람, 피해자와 같은 성별이라고 해결방법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이전 세대의 낡은 인식이 오히려 사건 해결에 걸림돌이 되는 것을 여러 번 보았습니다. 문제가 발생하면 전문가와 전문단체를 찾아 자문을 구해 해결해야 합니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들

기본적으로 저는 프리랜서 강사로 활동합니다. 강의 활동은 계속해온 일이고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다음으로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매일 새롭게 떠오르는 중입니다. 페미니즘 서점을 할까, 타로리더로 활동해볼까, 상담을 더 공부할까, 진학을 할까 등등 그중에서 구체적으로 떠오르는 활동과 관련한 생각들입니다. 

먼저 대구를 바꾸는 방법에 대해 연구해 보고 싶습니다. 시민사회는 각 단체별로 집중하는 분야와 의제가 있습니다. 그 각 분야에 해당하지 않는 문제들이 더 많이 발생하고 있는데 놓치는 분야들이 많지요. 돌봄, 정치, 지역의 문제 등 대구의 통계와 상황을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연구와 활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시민의 삶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해결하는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는 연구와 활동을 하고 싶습니다. 다음으로는 법제도와 관련된 활동을 해보고 싶습니다. 상근활동을 하면서 여러 가지 법에 대한 공부와 개정을 위한 연대활동을 했었습니다. 법제도의 한계와 바뀌어야 할 부분들, 시민의 일상에 영향을 미치는 법과 관련된 공부와 활동도 해보고 싶습니다. 법에서 소외되어 불이익을 당하는 분들에게 도움도 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는 평화와 통일을 위한 활동이 고민됩니다. 얼마 전 진행한 인터뷰에서 학생운동, 청년운동을 하다가 여성운동을 하게 되었다고 하니 왜 통일운동을 하지 않았냐고 질문하시더군요. 질문을 받고 깜짝 놀랐습니다.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거든요. 통일운동이 필요하다고 생각만 했지 제가 하는 것에 대해서 말입니다. 범민련이 해산하고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가 조직변화 논의를 하고 있는 이때 대중적 평화와 통일운동은 꼭 필요한 활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앞으로 해보고 싶은 일이 많습니다. 이렇게 마음 끌리는 활동을 하는 자유활동가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하며 글을 마무리 합니다. 조직에 소속되어 활동하는 것도 매우 의미 있는 일이지만 틀을 넘어 자유롭게 활동하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고민을 하시는 분들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  

 

 

 

 

[남은주 칼럼 51]                                 

남은주 / 전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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