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V 감염인에 대한 '보험 가입 거절', 낙인이고 차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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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승환(손해사정사)
"고위험 질병·사고 치료비 고스란히 개인 부담...차별과 배제, 시급히 시정해야"


보험을 가입하기 위해서는 보험계약자와 피보험자(이하 보험계약자 등)는 계약 전 알릴 의무 사항을 고지(이하 고지의무)하여야 한다. 보험회사는 위험의 인수와 보험료 결정을 위하여 위험에 대한 정확한 평가가 필요한데 다수의 보험계약자 등의 위험 사항을 스스로 파악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보험회사는 위험에 대한 역선택이나 도덕적 위험을 방지하기 위하여 고지의무를 두고 있다.

보험회사는 고지의무를 통해 보험계약자 등의 치료, 입원, 수술, 처방 이력을 확인하여 보험계약을 인수할 것인지, 보험료를 얼마로 측정할 것인지를 결정한다. 고지의무에는 최근 5년 이내 10대 질병으로 진찰, 검사를 받았는지 여부를 체크하는 사항이 있다. 10대 질병에는 암, 백혈병, 고혈압, 협심증, 심근경색, 심장판막증, 간경화증, 뇌졸중증, 당뇨병, 에이즈 및 HIV(Human Immunodeficiency Virus,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보균이 포함된다. 영리를 추구하는 사기업에서 고위험군과 고혈압, 당뇨증과 같은 반복적인 위험에 노출된 집단의 보험계약을 인수하지 않겠다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는 된다. 다만, HIV 감염인에 대하여 이들의 범주에 포함하는 것이 타당한지에 대해서는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과거에는 에이즈=죽음이라는 공포로 인식되었지만 지난 7월 12일 진범식 국립중앙의료원 감염의학센터장은 기자간담회에서 “HIV 감염인의 기대 수명이 증가하고 평생 관리가 가능한 질환으로 발전함에 따라 최근 진료 현장에서 장기 치료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HIV 인식 개선이 결국 치료 결과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차별과 낙인 해소가 가장 시급한 과제 중 하나로, 정확한 정보 전달이 절실하다”고 호소하였다.
 
사진 제공. 레드리본사회적협동조합
사진 제공. 레드리본사회적협동조합

이미 대다수의 보험회사들은 유병자용 간편고지 보험상품을 통하여 당뇨병, 고혈압이 있더라도 최근 3개월 이내 추가검사 소견만 없다면 보험 가입을 허용하고 있다. 보험회사는 과거 HIV 감염인에 대하여 보험 인수를 거절하며 주된 이유로 들었던 내용이 비감염인에 비하여 기대 수명이 현저히 낮고, 당뇨병, 고혈압 환자 수준의 위험도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제는 진화를 거듭하고 있으며 셰계보건기구는 2017년 보고서에서 ‘에이즈가 약물 개발로 인해 당뇨병과 같은 관리 가능한 만성 질환으로 전환됐다’라고 밝혔다.

질병보험 표준약관에서는 민법을 준용하여 사기에 의한 계약에 대해 규정하고 있다. 그 내용은 청약일 이전에 암 또는 HIV 감염의 진단 확정을 받은 후 이를 숨기고 가입하는 등 사기에 의하여 계약이 성립되었음을 회사가 증명하는 경우에는 계약일로부터 5년 이내에 계약을 취소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고지의무를 위반한 경우 보험회사는 계약일로부터 3년 이내에만 해지권을 행사할 수 있으나, HIV 감염인에게는 ‘사기’라는 범죄가 연상되는 단어를 굳이 언급하며 5년까지 취소권을 부여하고 있다.

보험회사 입장에서는 3년 이내의 해지권 행사에만 제한을 둘 경우 HIV 감염 사실을 숨기고 보험가입 후 3년이 경과한 시점에서 사망의 원인이 HIV 감염과 인과관계가 없다면 보험금을 지급해야 하므로 어쩔 수 없는 조치라고 강변하겠지만 백혈병, 심근경색, 뇌졸중증 같은 10대 질병도 제외한 범주에 HIV 감염에 대해 별도로 더 엄격하게 적용하는 것은 감염인에 대한 차별이다.
 
 
 
장애인차별금지법 17조는 ‘금융상품과 서비스 제공에 있어서 정당한 사유 없이 장애인을 배제하거나 가입을 거부해서는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보험회사는 형식적으로 장애인차별 신고센터까지 운영하고 있지만 이는 말 뿐인 허울에 불과하다. 외관상 신체적 장애가 있는지 여부를 고지하도록 하여 그 자료를 바탕으로 명확한 사유나 기준을 밝히지 않은 채 꾸준히 보험 가입 거절이 이루어지고 있다. HIV 감염인은 보건소에 실명 등록을 하면, 관련 치료를 받을 때 전액 국가에서 지원해준다. 본인이 실제 지출한 의료비를 보상해주는 실손보험에서 애초에 HIV 관련하여 보상받을 일이 없다.

HIV 감염인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표준체로 질병 보험을 인수하는 보험회사는 전무하다. 당뇨병, 고혈압 환자에게 개방된 간편고지 상품도 2/3에 해당하는 보험회사들이 가입을 거절하고 있는 실정이다. 직업, 직무에 따른 위험도에 따른 상해급수를 나누고 있는 상해 관련 보험가입의 처지도 다르지 않다. 감염인이 비감염인에 대한 교통사고, 상해사고의 위험이 높아 보험회사의 손해율을 악화시켰다는 근거도 없이 운전자보험, 상해보험도 제한적으로 가입을 허용하고 있을 뿐이다.  

일부 중증 질환을 제외하고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이 그리 높지 않은 상황에서 사보험의 진입이 막혀 있는 HIV 감염인은 다른 고위험 질병과 사고에 대한 모든 치료비를 고스란히 개인의 부담으로 떠안아야 하는 상황이다. 이는 필연적으로 진료 포기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이제는 우리 사회가 감염인과 비감염인의 동행을 위한 사회적 논의가 본격화되어야 하며 그 출발점이 보험 가입에서 차별과 배제를 시정하는 것이다. 해묵은 보험회사의 고지의무 질문표와 표준약관의 개정을 통해 감염인에 대한 낙인을 없애는 것이 시급하다.
 
[기고] 천승환 / 손해사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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