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투에 그려진 윤석열과 이승만 두 전직 대통령. 앞에 한미일 국기를 든 일본 무사가 서 있다. 또 다른 그림에는 수술대에 오른 한 남성의 해부된 신체가 보인다. 손바닥에 왕(王)자가 적혀 있고, 천공의 얼굴이 합성돼 있다. 청와대 봉황 무늬와 함께 술병이 곳곳에 배치됐고, '시방 도처에 의료대란이로다'라는 글이 적혔다. 수술을 받는 남자 주변에는 고통에 시달리는 민중들과 무당들의 모습이 한가득이다.
민중화가로 알려진 홍성담(69) 작가의 최근 작품들이다. 홍 작가는 현 시국에 맞춰 정치적 비판을 해학성 있게 그리는 작가로 유명하다. 그 탓에 예술가임에도 불구하고 늘 정치적 시시비비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번엔 대구에서 문제가 불거졌다. 윤 전 대통령 모습을 담은 그림 2점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윤석열 비판' 작품이 전시된 봉산문화회관의 전시실을 대구 중구청이 폐쇄해 논란이다.
중구청은 "정치적인 작품은 전시할 수 없다"며 문제의 홍 작가의 작품을 철거하라고 요구했다. 철거하지 않으면 전시실을 폐쇄하겠다는 경고에도 주최 측은 중구청 요구를 거부하고 전시를 진행했다. 그러자 중구청은 전시 첫날 전시실을 폐쇄했다. 작가들은 "표현의 자유 침해", "부당한 예술 검열"이라며 반발했다.
중구청과 봉산문화예술회관 예술계 인사들의 말을 24일 종합한 결과, 대경미술연구원은 오늘(9월 24일)부터 오는 10월 2일까지 중구 봉산문화회관에서 '내일을 여는 미술, 대구, 미술, 시대정신에 대답하라'를 주제를 특별기획전시를 열기로 했다. 강윤정, 김미련(로컬포스트&친구들), 백승현(간질간질간질), 임현숙, 정자윤, 홍성담 등 작가 19명의 작품을 전시하기로했다. 1~3 전시실에서 50~60점을 선보이기로 하고 23일 설치를 마쳤다.
문제는 전시회 첫날인 24일 발생했다. 홍 작가의 작품 3점 중 2점에 대해 회관 측이 "전시가 어렵다"고 통보했다. 윤석열 전 정부의 의료대란을 비판한 '동학의국', 윤석열·김건희 두 사람을 비판한 '똥광', 이승만을 비판한 '팔광' 등 홍 작가의 작품 3점 중 '동학의국'과 '똥광'에 대해 "정치적이라 전시할 수 없다"며 "철거하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대경미술연구원 측은 "철거할 수 없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그러자 회관은 문제의 작품들이 전시된 1전시실 전체를 폐쇄 조치했다. '대구광역시 중구 봉산문화회관 운영 조례'(제5조) 상 '종교행사나 정치적 목적의 홍보 또는 행사를 이용한 상품 선전과 판매 등 상업성이 있다고 인정될 때' 관장은 회관 사용을 허가하지 않을 수 있다. 홍 작가의 작품들 이외에 1전시실에 전시된 다른 작가의 작품들도 함께 폐쇄됐다. 반면 2~3전시실은 정상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 같은 폐쇄 조치는 류규하(69.국민의힘) 중구청장이 최종적으로 내렸다. 류 구청장은 2점의 작품을 철거하지 않으면 전시실 폐쇄하라고 회관에 이날 지시했다. 봉산문화회관은 대구 중구청 산하기관이다.
류규하 구청장은 24일 평화뉴스와 통화에서 "공공미술관에 과격한 정치 작품이 걸리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표현의 자유도 중요하지만, 아이들이 와서 보는 곳인데 그런 작품은 곤란하다"고 말했다. 또 "우리가 그 작품을 걸면, 극우에서도 들고 일어나 양쪽이 시끄러워진다"면서 "불가피한 조치"라고 덧붙였다.
봉산문화회관 관리운영팀장도 "앞서 (홍 작가의 작품이) 너무 예민한 내용이라 이미 다른 작품으로 변경을 요구했다"며 "그러자 사전에 협의도 없이 다른 작품 2점을 가져왔는데, 그것이 너무 정치적고 선정적이라 관련 조례에 맞춰 전시실 폐쇄 조치를 한 것이다. 이해해달라"고 설명했다.
반면 예술계 인사들은 반발했다. "정치를 핑계로 한 예술 검열"이라며 중구청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다"는 것이다. 해당 기획전에 참여한 작가들을 중심으로 '보이콧'을 검토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해당 전시에 참여 중인 로컬포스트 대표 김미련 작가는 "시대정신이라는 기획전에서 정치적이라는 이유로 전시실을 폐쇄하는 것은 예술 작품에 대한 부당한 검열이자 표현의 자유 침해"라며 "세금을 들인 공공전시에서 작가들의 작품을 검열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보이콧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수환(화가) 전 대구민예총 대표는 "세상에 정치적이지 않은 작품은 없다"며 "게다가 시대정신을 주제로 한 전시에 정치적이라는 이유로 작가의 작품을 검열하고 전시실을 폐쇄하는 것은 그냥 화가들에게 그림을 그리지 말라는 이야기다. 그러한 권리는 중구청이나 봉산문화회관에 없다"고 지적했다.
한편, 대구문화예술회관은 지난해 홍준표 전 시장 비판 그림을 전시한 이유로 전시실을 폐쇄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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