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대통령을 비판한 작품들이 결국 대구 봉산문화회관 전시실에서 모두 철거됐다.
"정치적"이라며 대구 중구청이 전시실을 폐쇄한지 닷새만이다.
논란의 그림들이 모조리 내려가고서야 겨우 닫혔던 전시실 문이 열렸다.
일부 예술가들은 "정치에 훼손된 예술"이라며 보이콧, 관람거부 등 반발하고 있다.
대구 중구청과 대경미술연구원에 29일 확인한 결과, '내일을 여는 미술, 대구 미술, 시대정신에 대답하라'를 주제로 대구 중구 봉산문화회관에서 지난 24일부터 열린 특별기획전시에 걸렸던 민중화가 홍성담(69) 작가의 '동학의국'과 '똥광', '팔광' 등 회화 작품 3점이 지난 28일자로 모두 철거됐다.
당초 회관 측은 '동학의국', '똥광' 2점을 철거해달라고 요청했지만, 홍 작가는 회관의 결정에 반발해 작품 3점을 모두 내렸다. 회관은 홍 작가가 그림을 내리자 닫았던 1전시실 문을 28일부터 재개방했다.
문제의 그림인 '동학의국'은 수술대에 오른 한 남성의 해부된 신체를 둘러싼 그림으로, 윤석열 정부의 의료대란을 비판했다는 게 작가 설명이다. '똥광'은 윤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 '팔광'은 이승만 전 대통령을 풍자했다. 전반적으로 윤석열 정부를 비판하거나, 풍자하는 내용의 그림들이다. 전시회 첫날인 지난 24일 회관 측은 홍 작가의 작품 2점에 대해 "정치적이라 전시가 불가하다"고 통보했다. '정치적 목적이 인정될 때 불허 할 수 있다'는 조례(대구광역시 중구 봉산문화회관 운영 조례)를 근거로 들었다.
대경미술연구원 측은 "철거할 수 없다"고 했고, 회관 측은 "전시실 폐쇄"를 경고했다. 홍 작가 이외에 해당 전시회에 그림을 건 다른 작가들이 "예술, 표현의 자유 침해"라며 거듭 거부하자, 이번엔 류규하 중구청장이 직접 "1전시실 폐쇄"를 명령했다. 봉산문화회관은 중구청 산하기관이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거센 논란이 일었다. "과도한 예술 검열"이라는 비판과 함께 "그림이 지나치게 정치적"이라는 정반대의 지적도 나왔다. 이 같은 논란에도 전시를 주최한 대경미술연구원 측은 "공공미술에 대한 행정의 과도한 검열"이라며 전시실이 폐쇄되어도 그림을 내릴 수 없다고 맞섰다.
하지만 대경미술연구원은 다시 내부 회의를 열어 이 같은 결정을 철회하고, 중구청 요청을 수용했다. 이들 단체는 선언문을 내고 "지난 28일부터 모든 전시실 작품이 정상적으로 감상할 수 있게 홍 작가 작품을 내리기로 했다"며 "전시실을 폐쇄한 중구청에 부득이 협조하게 됐다"는 입장을 밝혔다.
연구원은 "폐쇄된 1전시실에는 홍 작가 작품뿐 아니라 다른 작가들 작품도 있어 죄송할 따름"이라며 "예술이 정치적 목적에 희생되어선 안되기 때문에 문을 열 방법을 찾고자 노력했지만, 정치적 가십거리가 아닌 미술인이 관찰하고 형상화한 시대정신을 제대로 관람할 수 있도록 철거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예술전문단체로 행정기관의 이번 처사에 큰 실망"이라며 "우리가 처한 '1전시실 폐쇄'는 예술의 자율성이 심각하게 훼손된 상태"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번 사태에 대한 편중된 언론 보도에 대해 대단히 실망스럽다"면서 "정치적 압력에 굴복하거나 경제적 여건에 종속되지 않고 예술의 자율성을 해치지 않기를 바란다. 이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향후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작품 철거 소식이 알려지자 일부 작가들은 "예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특별기획전에 참여한 김미련(55.로컬포스트&친구들) 작가는 3전시실에 전시한 자신의 작품을 자진 철거하는 '보이콧'에 나섰다. 다른 작가들도 보이콧을 검토 중이다. 김 작가는 일본 외국인투자기업 니토덴코 '부당해고'에 맞서 600일 넘게 고공농성을 한 한국옵티칼하이테크 여성 해고노동자들 투쟁을 담은 영상, 설치, 드로잉, 사진 등 10여점을 전시했다가, 홍 작가 작품 철거에 반발해 자신의 작품도 함께 철거했다.
김미련 작가는 29일 평화뉴스와 통화에서 "행정이 입맛대로 예술 작품에 개입할 수 있다는 선례를 남기면 안되는 생각에 보이콧했다"며 "구청의 조례보다 상위에 있는 게 표현의 자유를 허용한 헌법인데, 예술가의 자유로운 창작을 정치적 의도로 탄압하다니 처참하다"고 비판했다. 이어 "대구에서 가장 정치적인 미술은 동대구역 박정희 동상"이라며 "가장 정치적인 예술 행위이자 프로파간다 그 자체인데, 단지 그 반대에 윤석열을 비판했다고 폭력적으로 작품을 금지시키고 폐쇄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시대정신 특별기획전 '관람거부'를 선언한 작가도 나왔다. 부산의 이동근(59)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는 2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내일이 없는 미술, 대구, 미술, 시대정신에 침묵하라"는 포스터를 만들어 게시하며 "관람거부" 표시를 달았다. 그는 "시대를 역행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며 "표현의 자유와 예술 창작의 자유가 심각히 제한되고 있다. 검열이라는 단어에서 스멀 독재의 악취가 올라온다"고 지적했다.
반면, 대구 중구청 관계자는 "우리의 철거 요청을 연구원이 수용해 그림을 내려, 닫았던 1전시실 문을 다시 열었다"며 "잘 마무리되었다. 이번 일을 논란이나 문제, 사태 등으로 표현하지는 말아달라"고 했다. 작가들의 보이콧, 관람거부 등 반발 움직임에 대해서는 "예술가들은 그렇게 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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