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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대포장 되기 쉬운 인터뷰기사
<농사꾼 철학자> 천규석 / "인터뷰에 응해 준 사람에 대한 예의와 원칙"
2010년 11월 29일 (월) 18:35:17 평화뉴스 pnnews@pn.or.kr


  인터뷰기사란, 경험 있는 사람들이라면 모두 잘 알고 있듯이 잘해야 과대포장 되어 난처하고, 아니면 자기의 말이나 생각이 잘못 표현 되거나 왜곡되어 기분이 언짢아 지는 것 중의 하나다. 그래서 모르면 모르되 알고는 기자와의 인터뷰가 썩 내키는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런 인터뷰 요청은 거의가 딱 잘라 거절하기 어려운 지인의 소개로 들어온다. <박창원의 인(人)>과 나의 인터뷰도 김용락시인의 부탁으로 마지못해 응했다.
 
  일찍부터 문인 친구들을 통해 잘 알고 있던 김용락이 대구지역에서 나왔던 몇 가지의 간행물에 게재할 인터뷰 요청을 오래전에 해 왔을 때 위와 같은 이유들로 거절한 적이 있었다. 그게 얼마나 섭섭했든지 그가 쓰는 글의 여러 군데서 내가 다른 매체와의 인터뷰나 스스로는 여러 권의 단행본을 내면서도 김용락 자신의 면담 청탁에는 거절한 것에 대한 섭섭함과 부당함을 토로하고 있었다.

  세월이 한참 흐른 뒤에 김용락은 자신이 편집 발행하는 계간문예지 《사람의 문학》에 인터뷰를 다시 요청해왔다. 또 다시 거절했다가는 아마 영원히 욕먹을 원수가 될지 모르겠다는 걱정 때문에 내키지는 않았지만 겉으로는 기꺼이 응했다. 그런데 공식 인터뷰가 끝난 뒤 여담으로 나보다 앞서 같은 잡지에 인터뷰한 백낙청교수의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및보상에 관한 의문점을 물어본 것을 김용락이 인터뷰기사에 함께 실었다. 이 때문에 나는 친구들로부터 동지를 이해하고 보호해주지는 못할망정 없는 사실을 지어내 중상모략한 배신자로 비난받게 되었다. 그에 대한 변명으로 내가 쓴 글이 《천규석의 윤리적소비》뒤쪽에 실린 ‘《나의스승, 시대의 스승》을 읽고’였다.

   
▲ 천규석(72)님

  그런 김용락이 내게 다시 박창원과 인터뷰를 부탁했다. 거절 못할 부탁으로 인터뷰를 오래전에 하긴 했지만 그때 내가 듣기로는 박창원의 그 매체가 지역단파방송인줄 알고 있었고 지금은 그 인터뷰한 사실조차 잊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가 언제인데 느닷없이 박창원씨로부터 그 기사가 《평화뉴스》에 실렸다는 전화를 하며 그 편집담당자로부터 인터뷰 기사를 싣게 해줘서 고맙다는 인사전화가 올 것이라고 해서 그런 줄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편집자의 전화는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그런 기사 뒤에는 인터뷰 당사자의 소감이나 거기서 못 다한 말을 보충하는 글을 쓰는 것이 관례라며 그 원고를 청탁하는 전화였다. 속마음은 거절하고 싶었지만, 그러자니 김용락시인과 잘은 모르지만 음지에서 뜻있는 일을 하고 있는 박창원님의 얼굴들이 줄줄이 떠올라서 차마 거절 못하고 또 승낙하고 말았다.

  그래서 《평화뉴스》의 내 기사를 찾아 읽어 보았다. 혹시나는 역시나였다. 과거 다른 인터뷰 기사처럼 내말과 생각의 과장 아니면 왜곡 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도 제대로 표현되지 않아 몇 번이나 고쳐 쓰고 하는 것이 글과 말인데 어찌 남이 한말을 한번만 듣고 그 핵심을 잡아 정확하게 전달해주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그 기사는 5회에 걸쳐 써서 긴 인터뷰 기사로 느껴지게 하지만, 그러나 내 70평생의 긴 삶을 압축해서 담기에는 너무나 짧은 기사였다. 그래서 압축, 과장, 아니면 왜곡일 수밖에 없었다. 또 그래서 이것을 바로 잡자면 내 스스로 나의 자서전을 별도로 한권 써도 모자랄 것이다. 그래서 다른 것은 다 그만두고 내가 한 말의 부정확성 때문에 관련된 타인들까지 피해를 볼 수 있는 오자 두어가지만 지적하여 수정하는 것으로 이글을 끝내겠다.

  《평화뉴스》2010년11월3일자 세 번째 기사 중에는 내가 서라벌예술대학 재학시절 때의 교수들 중에 “인간만송정으로 불렸던 교수들이 여럿 있었다”고한 문장이 있다. 이중에서 ‘인간 만송정’은 ‘인간만송족인(人間晩松族)’의 오기다. 인간 만송족이란 당시 이승만 대통령에게 제 아들을 양자로 들이고 자신은 이승만의 후계 대통령으로 지명 받고 부통령선거에서 장면에게 낙선한 만송 이기붕을, 훌륭한 인간성의 소유자라며 극찬하고 아부하는 글을 쓴 일부의 글쟁이들을 뜻한다. 지금도 그런 글쟁이들이 ‘문인’행세를 한다.

  2010년 11월 10일자 네 번째의 기사 중의 ‘그즈음 서울에서 사업에 실패하고 고향인 창녕에 내려온 선배’는 ‘사업하다 6.25전쟁으로 귀향한 선배’가 잘못 전달된 것이다. 또 이 기사 바로 앞의 “그리고 가전농민회를 만들어 농사동지 일곱 명과 함께 양파 채종에 손댑니다”에서 ‘가전농민회’는 ‘가톨릭 농민회’의 오식이다. 그리고 당시 창녕의 가톨릭 농민회 동지가 7명이었다는 것이지 이들만이 양파채종을 한 것도 아니고 또 양파채종을 하기위해 가톨릭농민회를 만든 것도 아니다. 가톨릭농민회 창녕본회는 1979년에야 만들어졌고, 그 훨씬 전인 1960년대부터 창녕에서 양파채종은 이미 상당규모로 하고 있었고 우리도 그들 중의 일부였다.

  내 인터뷰 기사를 쓴 박창원과 그것을 실은 편집자에게 고맙다는 덕담 대신 틀린 부분만 꼬집어 이글을 쓰는 내 마음도 편할 리 없다. 하지만 거듭 말하지만 1회용 방송인터뷰 아닌 인쇄매체나 인터넷에 올리는 인터뷰 기사는 상당 기간 남을 수도 있다. 그래서 기사를 작성한 뒤 당사자에게 한번 보여 과장이나 왜곡, 오류를 바로잡게 해주는 것이 인터뷰에 응해준 사람에 대한 예의이고 원칙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을 전한다.

* 글을 주신 천규석(72)님께 감사드립니다. 또한, 연재 과정의 오류에 대해 선생님과 독자들께 사과드립니다. 잘못된 곳은 지적하신대로 고쳤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과 조언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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