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후원금'...대구 해임교사의 마지막 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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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산초등 박성애 교사 "너희들이 30살 되면..." / "정치적 해임..분명 복직된다"


"너희들이 30살 되는 2032년, 1월 3일 오후 1시30분 학교 놀이터에서 반갑게 만나자. 안녕!"

대구 옥산초등학교 1학년 3반 박성애 교사는 "2023년은 너희가 30살 되는 해"라고 설명하며 아이들에게 직접 쓴 편지를 통해 "2032년 1월 3일 오후 1시30분 학교 놀이터에서 반갑게 만나자"고 말했다. 박 교사는 '1학년 3반'의 인연을 이렇게 새겼다.

박 교사는 4교시가 끝날 무렵 22명의 학생에게 각자 칭찬과 당부의 말을 손수 적은 편지와 선물을 나눠주며 눈물을 보였다. 이제 진짜 아이들을 볼 수 없다는 생각에 감정이 북받쳐 오른 것 같았다. 한 학생이 "어, 선생님 운다"고 소리치자 아이들의 시선이 한 순간 박 교사에게 쏠렸다.

박성애 교사가 편지를 나눠준 뒤 눈물을 닦고 있다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박성애 교사가 편지를 나눠준 뒤 눈물을 닦고 있다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대구시교육청은 12월 16일 정당 후원금을 냈다는 이유로 해임 조치 된 교사 2명에 대해 30일자로 징계를 집행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21일 방학식을 갖는 옥산초등학교 박성애 교사는 20일 오전 마지막 수업을 갖고 학생들과 작별의 인사를 나눴다. 교육청은 이날 오후 공문을 통해 해임통보서를 해당 교사들에게 전달했다.

공개수업으로 진행된 이날 3교시와 4교시에 지난 11월 12일 먼저 해임된 김천 위례초등학교 김호일 교사와 전교조 임전수 대구지부장을 비롯한 회원 5명과 학부모 5명이 참관했다.

박성애 교사가 4교시 수업이 끝날 무렵 학생들에게 직접 쓴 편지와 선물을 나눠주고 있다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박성애 교사가 4교시 수업이 끝날 무렵 학생들에게 직접 쓴 편지와 선물을 나눠주고 있다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박성애 교사는 이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지난주부터 시작한 '상상의 책 만들기' 수업을 진행했다. 이 수업은 그림동화 '무지개물고기(마르쿠스 피스터)'를 읽고 아이들이 각자 내용을 상상해 직접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 책을 만드는 수업이다. 박 교사는 지난 학기 초부터 읽기 시간에 위인전과 역사책, 그림동화 등 교과서 외 분야의 책을 아이들과 함께 읽고 토론하는 창의력 위주의 수업을 진행 해 왔다. 이날 '상상의 책 만들기' 수업은 그동안 배웠던 내용을 총 정리하는 시간이었다. 

박 교사는 수업 내내 교실을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학생들이 직접 만든 책을 하나하나 봐주며 끝까지 책임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아이들도 선생님의 손을 이끌며 서로 자신의 책을 봐달라고 졸라댔다.

박성애 교사가 아이들의 '상상의 책 만들기' 수업을 지도하고 있다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박성애 교사가 아이들의 '상상의 책 만들기' 수업을 지도하고 있다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상상의 책'이 완성된 뒤 박 교사가 "책 읽어 볼 사람?"하며 묻자, 교실 곳곳에서 "저요!", "제가 읽을래요!"하며 아이들이 서로 손을 들었다. 한 아이에게 박 교사가 "책을 읽어 달라"고 하자 "선생님이 읽어주세요"라며 책을 건넸다. 박 교사는 아이가 손수 만든 책을 큰 소리로 읽은 뒤 "내용이 너무 좋아 100편까지 써도 되겠다"며 칭찬했다.

이날 수업을 참관한 한 학부모는 "아이들에게 공평한 기회를 주는 선생님"이라며 "아이들이 선생님을 정말 좋아 한다"고 밝혔다. 또 다른 학부모는 "아이들이 방학보다 학교 가는 것을 좋아 한다"며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좋은 선생님"이라고 말했다. 이어 "더 이상 아이들과 함께 하지 못해 안타깝다"고 밝혔다.

수업이 끝난 뒤 선생님과의 작별이 아쉬운 듯, 한 아이가 엄마 품에 안겨 울음을 터트렸다. 아이의 학부모는 "아이가 선생님을 정말 좋아하고 잘 따랐다"며 "조금 전 선생님이 눈물을 보여 더 슬퍼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른 아이들도 "선생님이 떠나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선생님을 다시 못 뵈서 섭섭하지 않냐"는 기자의 질문에 "몰라요"라며 대답을 피했다.

아이들에게 편지를 읽고 있는 박성애 교사
아이들에게 편지를 읽고 있는 박성애 교사
박 교사는 "아이들에게 가족과 함께 미국에 간다고 설명했다"며 "아이들이 해임 이유를 알면 어린시기에 국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생길까봐 일부러 밝히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 "오래전부터 마음의 준비를 해왔기에 평소와 똑같이 수업 진행 할 수 있었다"며 "하지만 아이들에게 카드를 나눠줄 때 나도 모르게 감정이 북 받쳐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박성애 교사는 "큰 딸이 올해 수능을 친 고3 수험생"이라며 "당분간 아이의 대학입시를 도우며 지낼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해임 결정 뒤 바쁘게 보내는 바람에 가족들을 제대로 안심시키지 못했다"며 "이제 가족들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시간을 갖겠다"고 말했다.   

 

박 교사는 해임 결정에 대해 "정치적 사안에 의한 해임이기 때문에 시간이 다소 걸리더라도 분명 복직 된다"며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또 "시간을 갖고 좀 더 큰 안목으로 멀리 내다 볼 수 있는 기회로 삼겠다"고 말했다.

12월 20일 오전, 정당 후원금을 냈다는 이유로 해임된 대구 옥산초등학교 박성애 교사의 마지막 수업이 열렸다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12월 20일 오전, 정당 후원금을 냈다는 이유로 해임된 대구 옥산초등학교 박성애 교사의 마지막 수업이 열렸다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전교조 교사 해임.정직 등 징계는 지방선거와 교육감 선거 기간인 지난 5월 23일 교육과학기술부와 행정안전부가 정치활동 관련 기소된 교사 169명과 공무원 89명에 대해 파면.해임 등 중징계 방안을 발표하며 시작됐다. 이후 각 시도가 징계절차를 사법부의 판결 뒤로 미뤘으나, 지난 10월 교과부가 '법원의 판결과 상관없이 징계하라'는 취지의 방침에 따라 대구시교육청이 11월 1일 징계위원회를 열어 정당 후원금을 낸 이유로 기소된 교사 8명 가운데 2명을 해임, 5명을 정직처분, 1명을 1개월 감봉조치 했다. 또 경북도교육청도 교사 1명을 해임했다.

한편, 박성애 교사와 함께 해임 통보를 받은 대구 강동중학교 김병하 교사도 12월 24일 학생들과 마지막 수업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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