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의 실마리는 이미 드러나
4자성어의 묘미는 함축적인 데 있다. 저무는 2010년을 정리하면서 교수들이 뽑은 4자성어는 ‘장두노미(藏頭露尾)’(교수신문 12월 20일치). ‘진실을 숨겨두려고 하지만 거짓의 실마리는 이미 드러나 있다’는 뜻. 이날 교수신문에 함께 실린 ‘덮을수록 덧나는 의혹…어두운 시대의 징표 걷어내야’ 제목의 칼럼 필자는 ‘2010년 대한민국의 정치는 17세기 갈릴레이의 시대로 후퇴했다’면서 ‘갈릴레이가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고 했던 것처럼, 진실은 영원히 덮어둘 수 없다’고 했다. 2010년 세미 대구 경북의 언론은 어떤가?
이보다 더 못할 수는 없는 예산안 날치기처리
필자는 ‘미디어창’ 12월 7일치에서 ‘팔공산불교테마파크’를 겨냥한 개신교 일각의 공격, 이에 대응하는 양상의 ‘대구 불교총연합회 창립’ 보도 사이의 행간에서 정작 보도의 중심에 있어야 할 민족 문화(불교문화재)에 대한 관심은 실종되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런데 막가는 의회정치도 이보다 더 못할 수는 없는 MB정부-한나라당의 2011년도 대한민국 예산안 날치기처리는 테러가 난무하던 해방공간의 ‘삐라’ 수준이다. 상임위도 안 거친 법안까지 절차․협상을 팽개치고 날치기했기 때문이다.
불교계(조계종)는 ‘천박한 정부’라고 질타했고(경향신문 12월 18일치 2면) 한겨레신문은 ‘국회권능 말살한 의회쿠데타’(12월 10일치 사설)라고 규정했다. 경향신문은 ‘나라살림의 사유화’(12월 14일치 오피니언)라고 했다. 그리고 그 권력사유화 논란의 핵에 ‘형님’이 있다(경향신문 12월 20일치 6면)고 했다.
그런가하면 수구언론 조선일보는 예산안 강행처리 후폭풍을 강조하면서 ‘친서민’예산이 날치기 처리에서 빠지고 불교계에 약속한 예산이 빠져 공약(空約)이 돼버린 점을 부각했다. 그리고 이 같은 공약(空約) 사태를 ‘사고’라고 규정했다(12월 11일치 A3면). 예산안 날치기 처리와 관련, 사태의 심각성을 왜곡한 수구언론의 보도 태도를 점검해본다.
보수언론 시각 왜곡-한나라당 구하기 주력
예산안 날치기 처리 사태를 다룬 보도에서 주목되는 것은 조선일보와 같은 수구언론은 날치기 처리에 대한 시각을 왜곡하는데 주력한다는 점이다. 날치기 처리가 나쁘긴 나쁘므로 ‘여론이 좋지 않다’는 정도로 은근슬쩍 넘어가면서 기사 대부분을 영유아양육수당이 빠져 쑥스러워졌느니, 그래서 복지예산이 공약(空約)이 되었느니, 이제야 당내에서 70% 복지예산은 불가능한 공약이란 지적이 나온다느니 하는 잡다한 ‘타령’들을 늘어놓는다. 그러면서 날치기 처리로도 경황이 없어서 못 챙긴 예산을 ‘“어떤 방법으로든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게 하겠다”’는 그 당 대표의 변명을 전달해 성난 여론의 화살로부터 한나라당 구하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매일신문, 양비론․역공보도 ‘온힘’
그러면 대구 경북 신문 방송의 보도 내용은 어떤가?
예산안 날치기 다음날인 12월 10일치 매일신문(4면)을 보자. '예산안 처리, 만만찮은 뒤탈'이란 큰 제목 아래 <민주당 장외 투쟁 / 템플스테이 예산 삭감 / 실세들은 다 챙겼는데...>라고 제목을 달아 독자 눈 흐리기, 양비론 펴기로 일관했다. 16일에는 1면 머리로 올려 지역감정을 자극했고(‘“野 공세 적반하장” 포항 뿔났다’ 큰 제목 아래 ‘“민주당도 챙길 것 다 챙겨” 형님예산 매도에 반박/청와대.한나라당도 저급한 정치놀음 중단 촉구’) 그리고 ‘형님’ 예산으로 질타 받는 사실에 대해서는 ‘지역균형발전예산에 왜 시비를 거는가’(12월 17일치 사설)라면서 이 같은 여론의 질타를 저급한 정치공세로 몰아붙였다.
영남일보, 원색적인 지역감정 자극
영남일보라고 다를 바 없다. ‘‘형님예산’ 매도는 정치적 공세에 불과’라는 사설(13일치)은 내용 면에서 매일신문의 원조이다. 그것도 모자라 ‘이병석 의원 “포항예산 특혜 호도 말라”(13일치 5면) ‘뿔난 포항시민들’(16일치 5면) 기사로 여론 화살을 지역민의 고향사랑 감정을 동원해 원색적으로 역공하려는 태도를 보였다. 또 “걸핏하면 특혜 운운/정치적 딴죽에 제동”(14일치 4면) 제목 기사에서는 공기(公器)여야 할 지면을 ‘형님예산’ 논란에 애가 타는 김관용 지사의 변명을 위한 자리로 만들었다. 이 신문 16일치 ‘여 “민주당 ’쪽지예산 다 챙겨놓고 양심있나”(5면) 기사는 그야말로 양비론으로 물 타는 기사는 어떻게 쓰는지 본보기 기사 같은 인상을 준다.
외양은 균형 ‘구색 갖추기’
다음은 방송을 보자.
KBS대구는 ‘‘형님 예산’ 논란 확산’(16일 뉴스9)은 '이른바 형님 예산 논란이 커지자 동해안 자치단체장들이 지역 예산 배정에 대한 당위성을 직접 설명하고 나섰습니다. 국토 균형 개발을 위한 250만 주민들의 숙원 사업이 정쟁의 제물이 됐다며 심각한 유감을 표시했'다면서 박승호 포항시장의 인터뷰를 내보냈고, ‘감사원이 타당성 재조사를 요구한 사업에 예산이 배정된 것은 기준과 원칙이 없다‘는 허대만 민주당 경북지부장의 인터뷰를 내보내 외양으로는 균형보도 자세를 취했다.
어디를 봐도 균형보도와는 별무관계
TBC의 ‘‘형님예산’ 반발확산’ 보도(16일치 프라임뉴스)는 화면, 멘트 할 것 없이 ‘반발’에 모든 초점을 맞췄다. ‘국토균형개발 국책사업 예산 증액 관련 동해안권 지역폄훼 중단 촉구 성명서 발표’란 현장 화면을 중앙에 올려 ‘형님예산’ 비판 여론이 동해안권 지역을 ‘폄훼’하는 것이란 간접 메시지를 깔고는 포항시장, 울산 남구청장, 영덕군수, 삼척시장 등 동해안권 자치단체장의 목소리를 전했다.
그 어디에도 반론 또는 반대 측의 목소리는 없었다. 보도라기보다는 ‘확성기’란 표현이 더 적절할 만큼 일방적이었다. 어디를 보아도 균형보도와는 거리가 먼 이날 보도는 호남, 충청 등 타지의 예산 내역을 인용, ‘지역감정’에 호소했다. (TBC는 지난여름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사찰과 관련, 여론이 빗발쳤을 때도 ‘포항시의회, ‘영포회’ 공세 중단촉구’ 보도(7월 9일 프라임뉴스)를 내보낸 바 있다.)
대구MBC는 ‘동해안 11개 자치단체장 ‘형님예산’ 정치공세 중단 촉구’ 제목으로 경북과 강원, 울산 등 동해안 11개 시·군 단체장들이 정치 공세 중단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한 사실을 주장을 곁들여 단신으로 보도했다(16일 뉴스데스크). 사실보도만 한 셈이다.
빠뜨릴 수 없는 보도 전제-절차 적합성 따지기
예산안 날치기 처리 사태와 관련, 보도 매체의 제호가 다르고 채널이 다른 만큼 시각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거기에는 빠뜨릴 수 없는 전제가 있다. 양비론, 타령 등 다양한 보도 수법을 동원한다손 치더라도 그 보도의 중심에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 정상적인 토론과 협의라는 절차를 거쳤느냐 하는 절차적 적합성을 따지는 문제이다. 그것은 비판이고 비판은 보도의 생명이기 때문이다.
통법부 전락 국회상 읽게 해
이와 관련, 앞서 조선일보가 ‘일부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이 예산안을 9일까지는 통과시켜달라니까 그 메시지에만 충실해 무리하면서, 제대로 ‘물건’이 들어 있는지 확인도 않고 껍데기만 전달하는 어마어마한 배달사고를 친 것"이라며 “171석 거대 여당의 무능이 한순간에 드러났다”고 했다.’라고 한 보도는 매우 시사적이다. 국민으로 하여금 한나라당의 무능과 함께 국회가 이미 자율성을 포기하고 박정희 시대의 통법부로 스스로 전락한 점을 행간에서 읽게 했기 때문이다.
국민무시 보도 만연
이 시대 대한민국 국민이 예산에 거는 기대는 국민이 바라는 예산이 제대로 된 절차를 거쳐 확정되는 것이다. 우리 시대 정치사(헌정사라고도 할 수 있다)가 후진적이다 못해 차라리 정치파탄이라고 해야 할 정도로 국민과 동떨어졌고 국민을 깔아뭉개왔기 때문에 그런 기대는 더 절실하다. 그런데도 예산안 날치기 처리 사태를 다룬 대다수 매체는 서울 대구를 가릴 것 없이 정파성에 목을 매고 ‘꽈배기 보도’를 일삼아 독자․시청자들의 눈을 흐리고 있다.
악성적인 지역감정까지…
게다가 대구의 일부 자칭 메이저 매체들의 보도 태도는 서울의 정파성 보도에 더해 악성적인 지역감정까지 부추기거나 아예 균형보도의 흔적조차 사라진 모습을 보여준다. KBS대구는 관련 보도 맨 끝에서 ‘정치 논란이 확산되면서 망국적 지역감정만 부추기는 게 아닌가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습니다.’고 했지만 보도의 중심은 총론은 간 곳 없이 각론만 늘어놓아 시청자들의 시선을 흩어놓는 보도에서 맴돌았다.
보도 혁신 없이 대구미래 기대 못해
‘장두노미(藏頭露尾)’
해 저무는 2010년의 4자성어는 대구지방 언론이 짐짓 언론 본연의 노력을 다하는 양 뽐내지만 실상은 지역감정, 정파성 보도에서 맴돌고 있는(어두운 시대로 회귀하는) 것을 의미심장하게 일깨우고 있다. 본색은 감출 수 없다고…. 그래서 ‘퇴영적 대구의 보수성’을 언제 벗겠느냐고. 지금의 보도체제가 이어진다면 대구의 미래는 기대할 수 없다고 말이다.
[평화뉴스 - 미디어 창 113]
여은경 / 대구경북민주언론시민협의회 사무처장. 전 대구일보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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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뿔, 반발, '형님' 매도...지역감정 자극 보도, 대구 미래 기대 못해